제주에 살으리랏다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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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살으리랏다

2014.06.24


엊그제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문화예술인 마을에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조그만 저녁 모임이었는데 주인 내외를 포함한 12명 중 10명이 외지에서 온 예술가, 디자이너를 비롯한 전 현직 전문직업인이고 2명만 제주분들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이런 모임의 구성이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 그만큼 제주에는 새로운 삶을 위해 이주해 오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화예술인 마을은 1999년에 기획되어 계속 조성 중인 마을로 지금까지 3분의 1이 개발되어 있다 합니다. 현재 개발이 완료된 50여 필지의 반 정도에 집이 들어서 있습니다. 근사한 도립 현대미술관도 단지 안에 들어서 있고 김창열미술관도 건립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서울 근교의 헤이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공기가 다르고 풍광이 다를 것입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 중 어떤 분은 4년 전에 와서 정착했고 또 어떤 분들은 온 지 2년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 다들 제주 이주에 만족해하고 있었습니다. 특수한 목적으로 조성된 이 마을뿐이 아닙니다. 제주 전역에 이민자들이 늘고 있으며 사람뿐 아니라  다음, 넥슨같은 기업들의 이주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제주에 온 지 4년이 조금 넘는데, 저는 처음부터가 아니라 일자리를 따라와서 살다가 이주하기로 결정한 경우입니다. 살다가 보니 일이 끝나더라도 굳이 서울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한참 고민이 되긴 했습니다. 이때까지 죽 살던 곳, 친지가 모여 있는 곳, 다양성과 역동성에 고급문화가 있는 서울을 떠난다는 것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곳에 사는 것이 좋아서 일단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였습니다. 서울에 비하면 한적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을 통해 그간에 아는 사람도 생겨 어울려 살아가는 데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항공편도 많이 수월해져서 서울 내왕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포-제주 간 거의 10분 꼴로 비행기가 뜬다는 것을 아시면 다들 놀라실 것입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두 도시를 잇는 비행편이 가장 잦은 곳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주에 이주해 와서 사는 사람들의 성공담을 다룬 ‘거침없이 제주이민’이란 책이 나와 있을 만큼, 최근에 제주로 이주해 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귀농으로 오는 사람, 관광객 증대에 따른 소규모 관광업 종사자, 제 2의 삶을 보내기 위해서 오는 은퇴자, 새로운 삶의 공간과 함께 영감을 얻기 위해 오는 예술가들, 영어교육도시로 오는 학생, 학부모와 선생님들, 그리고 외국인 투자자와 이주자들입니다. 어제 초대를 해주신 분들은 미국에서 40년 살다가 귀국하면서 아예 제주에 정착하였는데, 궁리 끝에 한국에서 최적의 은퇴생활 대상지로 제주를 꼽았다고 합니다.

제주에 사는 장점은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장점은 다 알면서도 단점도 있을 테니 그래도 살던 곳에 살아야지, 하고 이주할 생각을 접은 분이 더 많을 것입니다. ‘제주살이’의 장점은 무엇보다 맑은 공기, 좋은 물을 비롯한 훌륭한 자연환경입니다. 거기다가 다른 도시에 비해 소위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적다고 하겠습니다. 제주시 일부를 제외하고는 어딜 가도 교통 체증이 없습니다. 이른바 슬로 라이프가 실현되는 곳이 제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은 70대 초에 말기 암 수술을 받고 후속 치료 없이 그냥 제주에 와 살면서 5년 만에 자연완치가 되었다 하니 이곳의 삶의 질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또 제주는 아이들 키우고 교육시키기도 좋다고 합니다. 길에서나 아파트 단지에서 아이 셋을 데리고 다니는 젊은 부모들을 보는 게 어렵지 않은 곳이 제주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시골이 다 슬로 라이프인데 유독 제주가 더 좋다는 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또 드실 겁니다. 그런데 제주는 흔히 말하는 시골이 아닙니다. 30만의 제주, 8만의 서귀포를 비롯하여 취락이 있는 크고 작은 마을들은 다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타원형의 섬 어디에서나 제주와 서귀포가 그리 멀지 않습니다. 저처럼 비교적 안쪽인 산 중에 살아도 서귀포 도심이 5분, 10분 거리밖에 안 됩니다. 즉 섬 어디에서 살아도 시내가 가까워 여느 시골처럼 생활의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대도시에 비해 문화가 빈약하고 먹고 즐길 데가 많지 않다는 것이 좀 아쉬운 점입니다만, 제주 전체로 봐서는 인구에 비해 문화가 왕성한 편인 데다 관광이 발전한 덕에 먹고 즐길 곳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은퇴자의 경우 병원 걱정도 이젠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미 있는 종합병원들도 괜찮은 수준이지만 이에 더해 의료 휴양단지들이 여러 곳 들어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특별한 치료를 위해 꼭 서울에 가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서울 내왕이 어렵지 않아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주 현상의 증가로 제주 인구가 작년 8월에 60만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금년 1~2월 중 유입 인구는 작년 동기에 비해 37. 7%나 증가했으며 이 추세대로라면 향후 5년 내에 인구 70만을 기록할 것이라 합니다. 대도시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인구입니다. 한편 제주도는 면적이 서울의 3배로, 섬 전체가 한라산을 중앙으로 하여 해안까지 완만하게 내려가는 지형이라서 해발 6백 미터까지 취락이 가능합니다. 살 수 있는 면적에 비추어 인구가 많지 않은 것은 그만큼 쾌적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지금과 크게 다름없이 쾌적한 환경에 살 수 있는 최대 인구는 2백만이라고 합니다.

맑은 공기, 좋은 물에다가 사방 산과 바다를 보면서 살 수 있는 곳이 제주라 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하늘과 구름과 별과 바람을 보면서 살 수 있는 곳이 제주라 할 수 있습니다. 근자에 제주 토지와 부동산 가격이 전국에서 세종시 다음으로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여전히 살 터전이 풍부하고 먹을거리, 볼거리가 풍요한 곳이 제주입니다. “살짜기 옵서예”라는 제주말은 다 아시겠지요. 이 말 외에 “혼저 옵서”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서 오시라는 뜻이지요. 제주가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청산이 바로 제주가 아닌가 싶습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이집트 대사를 역임했다. 현재 제주 소재 유엔국제훈련센터(UNITAR)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제주특별자치도의 외국인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외국인거주환경개선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나무를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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