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에너지 대란은 풍력-태양광 과신 탓…4~5년 갈 듯”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요즘 국제금융시장의 핫 이슈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다.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2019년 12월 코로나 사태 발발 이후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푼 막대한 돈은 주식과 부동산, 원자재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며 주가와 집값,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렸다. 게다가 최근에는 전세계에 에너지 대란이 터지면서 천연가스와 석탄, 원유 가격이 치솟아 인플레이션 공포를 가중시키고 있다. 천연가스 가격은 올들어 120%, WTI(서부텍사스산) 원유 가격은 70%나 올랐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려 돈을 회수한다. 돈줄을 죄면 주가와 부동산 가격은 하락 압박을 받는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요인의 하나로 등장한 전세계 에너지 대란의 원인은 무엇일까? 언제나 해결될까? 이 문제에 대해 답을 듣기 위해 지난 13일 오후 3시 서울시 노원구 공릉로 232 번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창조관 504호 유승훈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유 교수는 대학 입학 이후 33년간 줄곧 에너지 정책을 다룬 에너지 정책 전문가이다. 그는 “유럽 국가들이 예상치 못한 기상이변으로 재생에너지 생산이 제대로 안 된 결과 천연가스 발전 등 화석연료를 다시 찾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국제 천연가스와 석탄, 원유 가격이 폭등했다”고 말했다. 이어 “탄소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보완책으로 화석연료와 원전의 중요성을 경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가을 교정에는 청명한 하늘 아래 낙엽과 도토리가 땅에 뒹굴고 있었다.
33년간 에너지 정책 전공
—국내의 대표적인 에너지 정책 전문가로 꼽힌다. 에너지 정책을 담당한지 얼마나 됐나?
“1988년 3월 대학에 입학한 이후부터이니 33년이나 됐다. 학사-석사-박사 등 모든 학위 과정에서 에너지 정책을 전공했고, 교수가 된 이후에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자문도 해왔다.”
—에너지에도 여러 세부 분야가 있을 텐데.
“석유, 석탄, 천연가스, 전기, 지역난방, 도시가스 등 모든 에너지 분야의 정책을 다룬다.”
에너지 대란의 3대 특징
①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인터뷰 주제인 세계 에너지 대란으로 곧바로 넘어갔다.
—세계 에너지 시장이 대혼란이다. 독자들을 위해 이번 에너지 대란 사태의 특징을 3가지로 요약한다면?
“첫째,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다. 친환경을 의미하는 녹색(Green)과 물가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이다. 둘째, 에너지 안보의 강화이다. 셋째, 여름과 겨울의 에너지 수요 폭발 현상이다.”
—첫 번째 특징부터 물어보자 그린플레이션이 무슨 뜻인가?
“그린플레이션은 올해 생긴 신조어이다. 친환경 녹색성장을 추진해 화석 연료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다가 오히려 화석 연료에 더 의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겨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에너지 대란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친환경 에너지 정책의 역설
—친환경을 추구하는데 화석 연료 수요가 더 늘어난 이유는?
“올해 1월과 2월에 북극 한파가 왔다. 미국 텍사스는 눈이 내리지 않는 지역인데 올해 초 영하로 떨어지면서 정전이 되고 난리가 났다. 또 여름에는 매우 더웠다. 그래서 올초 겨울과 지난 여름에 난방용 및 냉방용 전기 수요가 많았다. 이 수요에 맞추려면 그만큼 전기가 많이 생산되어야 한다. 하지만 올해 유럽 서쪽 북해 지역에 바람이 불지 않았다. 유럽 국가들은 친환경 전략의 하나로 북해에 수많은 해상풍력 발전소를 세웠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가동이 되지 않으니 전기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억제해오던 석탄이나 천연가스 발전을 늘려야 했다.
석탄보다는 천연가스가 탄소배출량이 적어 기후변화에 나쁜 영향을 덜 주기 때문에 천연가스 발전을 대폭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유럽에는 천연가스가 나지 않는다. 미국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그래서 천연가스 수입량이 폭증하다 보니 전세계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에너지 대란이 발생한 것이다.”
—친환경 발전을 선도하는 유럽 선진국에서 북해에 풍력 발전소를 세울 때 생산 가능한 전기량의 범위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뜻인가?
“이상 기후로 바람이 불지 않는 상황을 예측 못 한 것 같다. 한국의 바람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혹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다갔다 한다. 반면 북해의 바람은 한쪽 방향으로 분다. 그래서 풍력 발전에 유리하다.
우리나라는 풍력의 이용률이 24시간 중 25%인 6시간이다. 반면 영국이나 유럽은 50%나 된다. 우리나라보다 2배의 발전량을 낸다. 이렇게 풍력 발전을 하기 좋은 기후환경이니 풍력 발전에 대한 신뢰가 매우 컸던 것 같다. 그게 이번에 멈추면서 난리가 났다. 우리도 풍력 발전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태양광은 어떤가?
“태양광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장마 기간 동안에 태양광 발전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 장마가 오면 대략 열흘 동안은 태양광 발전기가 거의 안 돌아간다. 그 때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면서 석탄 발전소와 원유 발전소를 줄였다. 천연가스 발전소도 더 짓지 말고 줄이라고 하고, 원자력 발전소도 탈원전 추세로 가고 있다. 이번에 유럽의 경우를 보니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에너지 공급이 불충분하다. 그래서 우리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재발 가능한 혹한과 폭염
—올해에도 혹한과 폭염이 재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올해 겨울에 다시 혹한이 찾아올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각국이 화석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난리이다. 천연가스와 석탄 가격은 올해 초보다 배가 넘었다. WTI 유가가 현재 배럴당 80달러 수준인데, 100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유럽이 적극적으로 친환경 에너지를 추진해 간 것은 환경론자들 때문인데, 이번 에너지 사태에 대해 환경론자들은 어떻게 설명하나?
“화석연료 사용 때문에 기후변화가 와서 북해에 바람이 불지 않은 것이니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속도를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 교수의 의견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세계가 가고 있다. 그러니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에너지 비상 사태에 대비해 화석연료 발전소를 충분히 갖고 있어야 한다. 유럽의 경우에도 화석연료 발전소를 갖고 있었던 곳은 큰 문제가 없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사례
—미국의 경우는?
“올 여름에 정전이 많이 발생한 캘리포니아주는 원래 천연가스 발전소가 많았는데 환경단체들이 없애라고 해서 없앴다. 대신 태양광 발전을 많이 늘렸다. 그런데 태양광은 6시가 넘으면 전기 생산이 안된다. 이에 반해 폭염이 찾아와 전기 수요량이 폭증하면서 정전 사태가 났다. 다른 주에도 폭염이 찾아왔지만 석탄과 천연가스 발전소를 갖고 있어서 큰 위기를 맞지는 않았다.”
—캘리포니아주가 전력 설계를 제대로 못했다는 뜻인가?
“그렇다. 태양광 발전을 늘리더라도 저녁에는 천연가스 발전소를 가동할 수 있도록 해야 했는데, 아예 폐지를 한 것이 문제였다. 그린플레이션 현상은 올해 처음 나타났다. 미국과 유럽에서 친환경 정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너무 경시한 결과 생겨난 역설이다.”
에너지 대란의 3대 특징
② 에너지 안보
—두번째 특징인 에너지 안보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각 국가의 에너지 안보는 항상 중요한 이슈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 에너지 대란 사태를 겪으면서 더욱 중요해졌다. 이번에 에너지 안보 이슈의 출발점은 중국이다. 중국은 석탄 발전의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높았다. 중국은 그동안 발전 원료인 석탄을 호주에서 주로 수입해 왔는데, 호주가 코로나 사태의 발생 원인 조사를 중국에 요구하며 두 나라가 외교 마찰을 빚자 중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끊었다.
그래서 중국에 전력 대란이 일어났다. 정전이 발생하고 공장 가동이 안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도 발전용 및 난방용 천연가스가 필요해 수입량을 대폭 늘리면서 전세계 에너지 대란을 증폭시켰다. 에너지 확보가 안 된 상태에서 외교적으로 몽니를 부리다가 중국이 당한 사례이다.”
—유럽의 경우에도 에너지 안보가 문제가 되나?
“앞에서 이야기를 했지만 유럽도 에너지 안보를 지키지 못한 셈이다. 영국의 경우 탄소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쓰면서 최근 석탄 발전소를 많이 없앴다. 대신 북해의 해상풍력 발전으로 대체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 기후로 바람이 불지 않았다. 허겁지겁 천연가스 발전을 늘려야 했는데 영국에는 천연가스가 나지 않는다. 수입해야 했다. 에너지 안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이다.”
—다른 나라 사례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70%에 달하는 스웨덴도 마찬가지이다. 육상에 풍력 발전소와 태양광 발전소를 잔뜩 깔아놨는데 풍력 발전소가 돌아가지 않으니 과거에 폐쇄했던 중유발전소를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유럽 국가들은 재생에너지라는 국산 에너지에 의존해 탄소중립화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가 제 역할을 못하니 다시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동안 등한시되던 에너지 안보가 다시 중요해졌다.”
천연가스 수입하는 유럽-한국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천연가스를 어떻게 확보하나?
“미국은 천연가스가 많이 나니까 문제가 안된다. 캘리포니아가 문제가 된 것도 천연가스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천연가스 발전소를 없앴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천연가스를 러시아에서 가져온다. 러시아에서 독일로 2개의 천연가스 수송관이 운영되고 있고, 이번에 3번째 수송관을 건설중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 공사를 중단하고 미국산 천연가스를 쓰라고 유럽에 요구하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과 전쟁까지 불사하겠다고 하면서 수송관 건설을 추진했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모범국가이지만 천연가스 발전을 유지하고 있다. 천연가스를 확보하는 것이 국가의 흥망을 결정한다고까지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은 천연가스를 어디에서 수입하나?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은 주로 중동의 카타르와 오만에서 천연가스를 액화시켜 수입한다. 액화를 시키면 비용이 비싸지는데 규모가 600분의 1로 줄어들면서 수송이 편리해 액화천연가스 형태로 수입한다. 반면 독일은 천연가스 수송관을 사용해 러시아에서 수입하므로 액화시킬 필요가 없다.”
에너지 대란의 3대 특징
③ 폭발하는 에너지 수요
첫 번째와 두 번째 키워드인 그린플레이션과 에너지 안보에 대해 충분히 들었다. 세 번째 키워드인 여름철과 겨울철의 에너지 수요 폭발에 대해 질문을 했다.
—올해처럼 여름철과 겨울철의 에너지 수요가 폭발하는 현상이 매년 반복될 가능성도 있나?
“이상기후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폭염과 혹한이 매년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여름철과 겨울철의 에너지 수요가 상시적으로 폭발할 수 있다. 이 수요에 맞는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 각국 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전세계 국가가 당면한 큰 숙제이다.”
—세계 각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가스전, 유전, 석탄 광구 등 에너지원 확보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은 에너지 광구의 매물이 나오면 계속 사들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생산이 부족한 나라이기 때문에 비축량을 늘려야 한다. 저장 시설을 많이 늘려야 한다.”
—세계 각국이 모두 모여서 에너지 사용 방식에 대해 합의를 할 수는 없나?
“에너지원이 생명줄이다 보니 합의가 잘 안된다. 예컨대 세계에너지기구(IEA)에서는 석유에 대해서는 106일분을 비축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석탄과 천연가스는 각국의 사정에 맡기고 있다. 천연가스의 경우 러시아와 파이프라인이 연결된 유럽에서도 EU(유럽연합) 집행위의 권고에 따라 최소 18일분 이상을 비축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자국에 필요한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전쟁을 하고 있다.”
해외 에너지 확보 나섰던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해 해외 광산이나 유전 확보에 나서기도 했다. 지금 한국은 상황이 어떤가?
“이번에 전세계적인 문제가 된 천연가스는 9일치 밖에 비축을 안하고 있다. 천연가스는 카타르와 오만에서 수입하는데 호르무즈 해협에서 불안이 조성돼 천연가스 운반선이 9일간 국내에 못들어 오면 도시가스가 끊어지고 전기도 끊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 발전량 가운데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나?
“생산되는 전기의 4분의 1은 천연가스로 생산되고 있다. 그래서 천연가스 공급이 끊어지면 정전이 온다. 러시아에서 오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연결된 독일이나 천연가스가 풍부하게 생산되는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비축이 중요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4개 나라는 천연가스를 액화천연가스 형태로 수입해서 비축을 하는데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비축량이 적은 편이다. 그나마 7일치를 비축하다가 최근에 9일치로 늘렸다.”
천연가스 수입이 어려워지면
—천연가스가 안 들어 올 경우 원전이나 다른 발전으로 대체할 수 있는 여지는?
“원자력은 1년 내내 돌아간다. 원전 설비 용량이 역사상 올해 가장 많고, 실제 발전량도 역사상 올해 가장 많다. 원전은 이미 충분히 역할을 하고 있다. 천연가스가 안 들어 오면 석탄의 가동률을 올릴 수 밖에 없다. 석탄은 평소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최대한 사용을 억제하고 있으며, 발전용 석탄을 주문하면 국내에 들어오는데 3개월이 걸리므로 위기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국내 천연가스와 석탄 비축량을 늘려야 한다.”
—환경론자들은 석탄과 천연가스 발전소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환경론자들은 정전이 좀 발생해도 석기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니 어떻냐는 입장이다. 하지만 나와 같이 에너지 정책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입장이 다르다. 정전은 가정용 정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반도체 생산도 중단된다. 그러니 정전이 되면 기업의 생산이 차질을 빚고 일자리도 줄게 된다.”
—이런 위험을 무시하는 환경론자들이 많나?
“예전에는 환경론자들이 주로 NGO(비정부기구)에 있었는데 이번 정부 들어서는 청와대와 국회 등 제도권으로 그런 사람들이 대거 진출해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유 교수는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지난 10월 8일 내놓은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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