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도 경험 중심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김종훈 삼성물산 스마트 컨스트럭션팀 마스터
일취월장하는
BIM(빌딩정보모델링·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기술
“건설업도 경험 중심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BIM(빌딩정보모델링·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기술 덕분이죠. 현장에 필요한 철근의 크기와 조립 순서, 운송 방법까지 시뮬레이션해 공기를 단축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겁니다.”
김종훈(사진) 삼성물산 스마트 컨스트럭션팀 마스터는 삼성물산에 두 번 입사한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첫 입사는 대학원 졸업 이후인 1995년. 신입사원으로 3년여간 근무하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건설시공관리(CEM), 세부 분야로 BIM을 공부하며 박사학위를 받았고, 졸업 이후 미국 DPR건설에서 수석 BIM 관리자로 일했다.
2014년 한국으로 돌아오며 제일모직 건설사업부 BIM추진파트장을 맡은 그는 이듬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삼성물산에 두 번째 입사를 하게 됐다.
김 마스터는 스마트 컨스트럭션팀에서 삼성물산의 BIM 업무를 이끌고 있다. 동남아시아 최고 높이의 말레이시아 ‘KL118’ 타워와 독특한 설계의 말레이시아 ‘스타 레지던스’ 빌딩 프로젝트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이선균 분)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3차원 그래픽을 보며 건축물 구조를 진단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그의 모습과 비슷하다.
― 건설 현장에서 BIM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사전에 가상 공간에서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해봄으로써 실제 시공 과정에서 당면할 수 있는 설계·시공계획의 오류와 리스크를 사전에 효과적으로 파악하는 역할이다.
건설에는 여러 이해당사자가 참여하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 차이가 여럿 생긴다. 이로 인한 소모적인 업무가 자주 발생한다. BIM을 잘 적용하는 프로젝트일수록 소모적 업무가 줄어들고 생산성이 높아진다.
두 번째는 건설산업 디지털화의 근간으로서의 역할이다. BIM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드론, 로봇 등의 다양한 기술이 연결된다. BIM이 경험 중심에서 데이터 중심으로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다.
과거 설계 프로세스는 구조와 설비, 전기, 인테리어 등 각각의 시스템 담당자와 설계 정보가 분리됐다. 선형적인 프로세스였다.
BIM은 통합된 정보를 바탕으로 설계를 완성하고 도면, 물량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는 프로세스다. 기존 방식 대비 커뮤니케이션 속도가 비약적으로 개선되고, 분리된 데이터로는 확인하기 어려웠던 설계나 계획상의 문제점이 더 잘 보인다. 도면과 물량 등 정보의 정확성이 높아지며 데이터의 활용 범위도 확장된다.”
― 현장에서 BIM이 힘을 발휘한 예를 들자면
“말레이시아 스타 레지던스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일이다. 스타 레지던스는 3개의 57개층 타워에 아파트, 호텔, 상업시설 등을 조성하는 대형 복합 개발 프로젝트였다. 지상 6층까지 상업 및 주차 시설이 들어서고, 그 위 트랜스퍼(Transfer) 층을 기준으로 8층부터 3개의 타워가 각각 올라가는 독특한 설계였다.
트랜스퍼층이 3개 타워의 하중을 받아야 해 구조물이 굉장히 컸다. 계획대로 시공할 수 있도록 현장에 필요한 철근의 크기와 조립 순서, 운송 방법까지 시뮬레이션했다. 철근 하나하나까지 BIM으로 그려서 검토했다. BIM으로 공법 적절성을 검토하고 공사 계획을 도출한 결과, 당초 계획 대비 공기를 약 2주 단축했다.
말레이시아 KL118타워 프로젝트에서도 BIM이 유용하게 쓰였다. KL118 프로젝트는 지하 5층~지상 118층의 초고층 복합개발 시설물이다. 이중 첨탑(Spire) 공사는 556m 높이에서 첨탑을 시공해야 했다.
구조체를 지상에서 조립한 후 들어 올려 설치하는 리프트업(Lift-up) 공법을 적용했는데, 잭업(Jack Up·들어 올리는 장비) 길이만 62m, 240톤(t)에 달했다. 복잡한 공정의 연속이었지만, BIM을 기반으로 사전 검토를 수행해 시공 순서를 개선하고 안전시설 보강방안을 도출했다.
난이도가 높은 프로젝트 공사가 끝난 후 현장소장으로부터 ‘이 프로젝트는 BIM이 없었다면 제시간에 성공적으로 마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고 큰 성취감을 느꼈다.”
― 늘 잘 굴러가는 것만은 아닐텐데
“프로젝트에서 BIM이 잘 활용되기 위해선 설계사와 건설사, 협력사가 같이 BIM으로 일하는 방식을 갖춰야 한다. BIM은 일부 전문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시공 등 건설업에 참여하는 모든 참여자가 사용해야만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고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한데, 건설 기술자들은 타 산업에 비해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적 성향이 강한 편이다. BIM 투자에 대해서도 소극적이다.
또 BIM 역량과 업무 체계가 기초체력으로 튼튼하게 갖춰져야 하는데 지역별, 국가별로 편차가 크고 아직 준비가 덜 된 곳이 많다는 점도 어려운 부분이다.”
― BIM이 반영하지 못하는 변수는 없나
“현장에 들어가는 모든 부재를 BIM에 담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방수, 코킹, 도어락과 같은 변수들이다. BIM을 수행할 땐 현장별로 목적 수준에 맞는 ‘BIM 상세 수준’을 정의하고 착수한다.
BIM에서 검토하고 그 검토 결과를 그대로 시공에 반영하는 ‘BIM 대로 시공’ 원칙이 지켜질 경우 BIM과 현장의 일치율은 현장 시공에서 발생하는 오차율 이내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차이는 사실상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시공 정밀도 측정을 위해 3D 레이저 스캐닝으로 공사가 완료된 구간을 측정하고 BIM과 통합해 시공 오차를 확인한다. 발생한 시공 오차를 모델에 업데이트하며 실제 현황과 동일하게 반영하고 있다.”
― BIM이 향후 소규모 현장까지 확대될까
“소규모 현장이라고 모두 설계가 단순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며, 소규모 현장일수록 설계사가 상세한 설계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건물 전체에 BIM을 적용하기보다는 문제가 예상되는 부분에 집중해서 BIM을 적용하면 적은 투입으로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싱가포르에서는 2015년부터 5000㎡ 이상 공공건축물에 BIM을 의무적용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서도 ‘BIM 기반 건설산업 디지털 전환 로드맵’을 통해 2030년 전분야 활용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경쟁력 강화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어 규모와 관계없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물산은 규모와 상관없이 올해부터 수주한 모든 프로젝트는 BIM을 100%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건설하고 있는 상품과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갈수록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과 성능에 대한 요구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설계도 복잡해지고 있다.
건설시장의 경쟁도 심화돼 세심하고 정확한 설계 및 시공 관리가 필요하다. BIM 기술이 바탕이 돼야 차질 없는 공사 수행이 가능하고,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BIM을 100% 적용하기로 했다. 삼성물산은 국내 건설사 최초로 BIM 국제표준(ISO 19650)을 획득해 국제적으로 글로벌 수준의 BIM 정보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 BIM 기술에서 최근 트렌드가 있다면
“설계 단계부터 3D 기반으로 설계하는 프로젝트가 확대되고 있다. 설계와 시공뿐 아니라 건물 사용 단계에서도 BIM 정보를 활용하는 추세다. 여러 건설사가 드론과 3D 스캔, 로보틱스 등 다양한 기술을 BIM과 연계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가상현실(VR)·혼합현실(MR) 등이 접목돼 메타버스로도 확장되고 있는 것이 최근 기술 트렌드다.
견적은 물론 계약할 때와 기성금을 청구할 때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건설사 내부적으로 콘크리트, 철골 등 주요 물량을 BIM으로 검증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최근에는 객관성 및 정확도에 대한 발주처의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BIM 모델과 BIM에서 산출한 물량을 제출하는 프로젝트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BIM에서 물량을 정확하고 용이하게 산출하는 기술 솔루션이 발전하고 있다.”
― 우리나라 건설업계의 BIM 기술은 글로벌 건설기업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가
“1999년 미국에서 4D를 현장에 적용한 사례를 본 적이 있다. 디즈니의 신규 테마파크 현장에서 공사계획을 4D로 구현하고, 현장 모든 관계자들이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2014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미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BIM 기술이 한국에서는 시범 단계에 있다고 느껴졌다.
현재는 우리도 글로벌 건설사에서 BIM을 활용하는 것과 동일한 모습으로 프로젝트에서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고,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수준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이 활발히 진행될 향후 5년이 우리에게는 기회의 시간이다. 지난 기간 빠르게 쫓아온 가속도를 잃지 않고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빠르게 도입하고 부지런히 발전시킨다면 선진사를 앞지를 수 있을 것이다.”
고성민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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