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에서도 주목하는 상변화(phase change) 물질
에너지 효율 좋은 주택, ‘상변화’ 물질로 만든다
에너지 방출 및 흡수하는 성질로 난방 및 냉방 효율 극대화
상변화(phase change)라는 말이 있다. 어떤 물질이 온도나 압력, 또는 자기장 등의 영향에 의해 원래 유지하고 있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바뀌는 현상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상변화 물질로는 물을 들 수 있다.
물은 상온에서는 액체 상태이지만, 0℃ 이하가 되면, 고체 상태인 얼음으로 변한다. 또한, 열이 가해지면 일정한 온도에서부터는 기체 상태로 변해 수증기가 된다. 액체가 고체가 되었다가, 기체로도 변하는 것이다.
이렇게 외부의 어떤 요인에 의해 상(相)이 변하면서 부피나 밀도 같은 물리적 성질이 변하게 될 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과정도 일어나기 때문에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상변화 현상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미국의 과학자들이 이와 같은 상변화 물질을 활용하여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건축물을 짓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건축에 사용하는 소재의 에너지 효율이 뛰어나면 별다른 에너지 공급을 하지 않아도 뛰어난 냉방이나 난방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건설업계에서 눈독 들이는 상변화 물질로 만든 소재
상변화에 대한 개념이 본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로 ‘상변화 물질(PCM)’은 과학계 외에도 건설업계의 관심 대상이었다. 에너지 효율이 뛰어난 건축물은 모든 건설업체들이 바라는 성과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 40여 년 동안 상변화 물질의 잠재적 재료로 염수화물(salt hydrates)과 파라핀 왁스, 그리고 유무기 화합물의 공융혼합물(eutectics) 등이 사용되었지만, 상용화된 PCM 재료는 매우 드문 것이 현실이다.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상변화 물질로 만든 소재는 뛰어난 에너지 저장률과 높은 열전도도, 그리고 화학적 안정성 및 무독성, 무부식성, 경제성 등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특히 건설업체가 관심을 기울이는 상변화 물질 소재의 특징으로는 열을 방출하고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면서도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변화 물질이 미래의 건축소재로 검토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 텍사스대 연구진은 최근 들어 합성수지(resin) 기반의 상변화 물질 소재를 직접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방법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텍사스대 연구진이 선택한 3D 프린팅 소재는 광반응성 수지에 강력한 자외선을 발사하여 출력하는 직접쓰기(Direct Ink Writing) 방식으로 제조되었다. 3D 프린터로 원하는 모양의 건축소재를 출력하면 내부의 수지 부분은 상변화 성질을 계속 유지해서 특정 온도에서 녹았다가 다시 굳게 된다.
이 3D 프린팅 상변화 물질은 특정한 온도에서 액체가 되었다가 다시 고체로 변하는 성질 때문에 건물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어서 냉방비나 난방비를 절감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텍사스대 연구진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 상변화 물질의 상변화 사이클은 약 200회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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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변화 물질 활용하여 건물벽 열침투를 줄이는데 성공
텍사스대 연구진이 상변화 물질을 사용한 3D 프린터용 건축 소재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면, 국내에서는 한국과학기술원(KIST) 국가기반기술연구본부의 강상우 박사와 연구진이 상변화 물질을 활용해서 건물벽을 통한 열침투를 줄이는데 성공한 사례가 있다.
KIST 연구진이 개발한 상변화 물질 기반의 외벽 소재는 외부에서의 열 침투를 지연시켜 건물 실내 온도 상승을 더욱 낮출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요즘과 같이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연구진이 실험에 사용한 상변화 물질은 옥타데칸(octadecane)이다.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외벽에 옥타데칸을 적용하지 않은 외벽 소재보다 이 상변화 물질을 적용한 외벽 소재가 내부 온도를 2.5℃ 정도 낮춘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고체상태의 상변화 물질이 액체로 변하는 동안 주변의 열을 흡수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마치 양초의 원료인 파라핀 오일처럼, 주변의 온도가 상승하면 액체로 변하면서 열을 흡수하고 주변의 온도가 낮아지면 고체로 바뀌면서 열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건물에 적용하기 위해 인체에 무해하면서도 상변화 물질인 옥타데칸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실제 외벽 단열에 쓰이려면 싸고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하고, 독성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옥타데칸을 선정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옥타데칸은 건물 벽에서 액체로 변할 때, 건물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일정하게 녹지 않는 문제를 갖고 있는 물질이다. 바깥 부분부터 액체로 변한 부분은 위로 이동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아래로 이동하는데, 이렇게 되면 위쪽부터 녹고 아래쪽은 잘 녹지 않아서 이미 녹아버린 위쪽으로 열이 내부로 침투한다.
연구진은 이 같은 문제점을 기포를 주입해 해결했다고 밝혔다. 옥타데칸이 액체로 변하는 동안 아래에서 기포를 주입해 액체화된 옥타데칸을 골고루 순환시켰다. 그 결과 바깥쪽부터 옥타데칸이 균일하게 다 녹을 동안 건물벽 전체적으로 열침투가 중지되어 실내 온도상승을 지연시킬 수 있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강 박사는 “기포 발생장치를 이용하여 상변화 물질을 골고루 순환시킬 수 있었다”라고 밝히며 “앞으로 이같은 상변화 물질을 사용한 단열 벽체가 건물 냉난방 에너지 절감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김준래 객원기자 stime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