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링 금탑산업훈장 수상 토목계의 산 증인 성백전 회장
㈜KCI 성백전 회장
우리나라 토목건설기술의 출발은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당시는 말 그대로 무(無)의 상황이었으며, 그 열악한 상황에서 유(有)를 창조해낸 사람들이 있다. ㈜KCI 성백전 회장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1955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도로설계 분야에서 약 66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헌신해왔다. 가히 ‘대한민국 엔지니어링 최초의 시작을 알리는 엔지니어링 기술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성백전 회장은 ‘한국 엔지니어링 업계의 거목’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국토의 균형발전과 토목 엔지니어링의 해외 기술 전수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위 선양과 발전에 기여해왔다.
춘천댐, 인천항, 양화대교, 한남대교 건설
지난 6월 4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 센터에서는 ‘2021 엔지니어링의 날 기념 정부포상 전수식’이 온·오프라인으로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엔지니어링산업 발전을 이끈 유공자 41명에게 정부포상이 이루어졌으며, 영예의 금탑산업훈장은 성백전 회장이 수상했다. 서울대학교 공대 토목학과를 졸업한 그의 한평생은 우리나라 토목 산업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받은 상이니 성 회장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엔지니어링 회사를 해오면서 이제껏 받은 상 중에서 가장 보람 있는 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많은 애를 써왔으며 이 영광을 직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또 최근에는 우리 업계의 회사가 3개나 상장이 되는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수천 개의 이르는 회사 중에 3개라면 작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토목건설산업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개척한 길에서 후배들이 이처럼 잘해주니, 그것도 더할 나위 없이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1955년 충청남도 내무국 건설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내무부 토목국, 건설부 울산특별건설국, 수자원국 동력과, 개발과, 인천항 축항 사무소장, 인천항건설사무소장, 수자원 국장 등 수많은 요직을 거쳤으며 1980년도에 한국해외건설(주)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해 1991년까지 업무를 수행했으며 그 후 지금의 회사인 ㈜케이씨아이를 설립했다. 이러한 이력을 쌓는 사이에 기술고등고시를 패스하고, 미국 국무성의 초청으로 건설 분야 연구차 파견을 가서 선진기술을 습득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한국엔지니어링진흥협회의 9, 10, 11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건설컨설턴트협회 회장을 거치면서 업계의 발전을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간 대통령으로부터 홍조근정훈장(1974년)과 동탑산업훈장(1994년)을 받았으며, 이번 금탑산업훈장은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3번째 상이다.
“공공기관에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은 춘천댐, 안동댐, 대청댐, 포항항, 그리고 인천항 건설을 책임자로 수행해낸 것입니다. 또 제2한강교를 설계하고, 제3한강교 기본계획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국가에서 건설산업이 시작되면 제일 먼저 뽑혀 전국을 다니면서 열심히 일했던 과거가 눈에 선합니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어서 정말로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측량을 하고 밤을 새워 손으로 설계도면을 그렸습니다. 측량기도 지금처럼 잘 발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막상 현장에 건설을 위해 내려가면 오차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식은땀을 흘렸던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해외로 진출한 최초의 엔지니어링 회사
서울 시민이라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양화대교(제2한강교)와 한남대교(제3한강교)도 그의 작품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댐인 춘천댐의 건설계획 및 총감독을 한 것도 역시 성 회장이었다. 1960년대 국토 개발 초기 수자원의 이용과 개발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홍수의 예방을 위한 댐 건설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그는 총감독을 맡아 1961년 9월 착공을 해 1965년 2월에 완공했다. 춘천댐은 이후 수자원의 이용 개발 및 국도이용을 통한 국가 교통인프라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
여러 사업 중에서도 인천항을 총감독으로 완공하는 것은 가장 빛나는 업적이기도 하다. 인천항은 동북아시아의 물류 중심지로 대한민국의 산업과 경제가 집중된 수도권 관문항의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갑문은 최대 10m에 이르는 조수 간만의 차를 극복해 하루 24시간 내내 선박이 입출항 할 수 있도록 한 동양 최대 규모의 수문식 도크(dock)이다. 성 회장은 바로 이러한 국제적인 항구의 마중물 공사를 하여 국가 SOC 산업의 발전에 기여했다. 당시 인천항은 대통령도 관심을 가지고 직접 시찰을 했을 정도다. 또 그는 우리나라 최초 산업단지의 출발을 시작한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 건설계획 및 총감독을 역임했다. 성백전 회장이 최초 계획한 이 단지의 특성은 석유화학공업의 계열화 및 단지화를 들 수 있으며, 전체의 부지를 완전히 구획 정리하고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한 가장 효율적인 공장 배치로 석유화학공업을 단지화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국가 산업단지의 건설로 인한 산업인프라의 초석을 쌓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공공기관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한 후 그는 해외건설주식회사(KOCC)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해외건설을 필요로 하는 국가가 지원해서 만든 회사였기 때문에 해외의 여러 건설현장을 다니다 보니 그가 꼭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현재 회사인 KCI의 설립이었다. 이 회사는 처음부터 해외 진출을 목표로 했으며 그 이름 역시 ‘KOREA CONSULTANT INTERNATIONAL’의 약자였다.
“KCI는 우리나라 엔지니어링 역사에서 최초로 해외에 진출한 회사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애초부터 그것을 목표로 설립되었고 해외진출에 가장 앞선 선두주자였으니 그 부분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 이후 저를 롤모델로 해서 많은 기업이 해외로 진출했고, 그 노하우를 전달했습니다.”
그는 동남아 10개국에 진출해서 수많은 사업을 진행했다. 파키스탄,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에서 활약을 했다. 특히 2007년 사우디의 주택단지사업 총사업비 10억불 공사 및 이라크의 10억불 철도공사 실시설계 및 설계감리 용역을 땄고, 같은 해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27억 원 규모의 상수도 설계 및 감리용역을 수주했다. 무엇보다 이 용역은 하루 4만 2000t의 취수시설과 4만t 처리능력의 정수처리시설 및 상수도 관로 38km를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미국과 인도, 호주 업체들과 경쟁한 끝에 1위를 차지한 것으로, KCI의 기술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수주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많은 해외 활동 중에서도 성 회장은 국내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한 기부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에 발전기금을 기탁했다. 또 서울공대 이공계 꿈나무 장학금, 특지 장학금 등을 지급했다.
자식 농사에서도 큰 성공
이번 금탑산업훈장은 성 회장에게 또 한 번 큰 도약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이며,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도 직원들과 후배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성 회장은 직원들과 후배들에게 이런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엔지니어링 회사는 머리로 하는 사업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업의 덩어리가 크지 않고 회사 자체가 크게 발전하기는 힘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1등은 되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며 이 사회와 회사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토목건설산업은 영원할 것입니다. 후배들이 앞장서서 이 업계를 발전시키고 더 나은 대한민국의 국토개발을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성 회장은 ‘자식 농사’도 무척 잘 지었다. 서울대학교 화공과 2년 후배인 김안순 여사와 결혼한 후 딸과 아들을 각각 하나씩 두었다. 아들 역시 아버지를 따라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 나사(NASA)에 근무하고 현재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 중이다. 며느리 역시 현재 동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친손자들도 모두 박사 학위까지 받고 로스쿨을 졸업했다. 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과대학의 교수이며, 사위 역시 의사이다.
자신의 삶에서도 성공적인 궤적을 그려왔으며 자식 농사도 훌륭하게 지은 성백전 회장. 앞으로도 회사를 통해 더욱 국가 발전에 헌신해주기를 마음 속 깊이 응원해 본다.
출처 : 종합시사매거진(http://www.sisanews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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