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철도 보안...전쟁 테러 나면 어찌하려고
[뻥뚫린 철도 안보③] 한강철교 등 가급 2곳·나급 13곳·다급 2곳
합참도 '문제' 개선 권고…"국가중요시설 안보등급 엄격 적용을"
[편집자주]한 나라의 철도는 국가기간시설로 평소에는 '국민의 발'이란 역할을 하지만 전시에는 물자와 병력을 나르는 가장 중요한 국가 인프라 중 하나다. 이같은 국가중요시설 지킴이가 개인 화기 하나 조차 구비하지 않은채 테러와 맞서고 있다면 어떨까. 뉴스1이 점검에 나섰다. 철도 보안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대한민국의 국가기반시설이자 전시 상황에서 물자와 화기, 병력을 수송할 철도 거점들의 보안이, 상당히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강철교는 국가중요시설로 청와대와 동급인 '가'급으로 설정돼 있다. 그만큼 전시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철도는 한국전쟁에서 전술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수많은 피난민을 실어 나르며 소중한 생명을 구했고, 병력을 전방으로 옮기는 것은 물론, 각종 무기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수물자를 운송했다.
한국전쟁 당시 1만9000여명에 달하는 철도 관련 인력이 군 병력과 전쟁 물자 수송 작전에 참가했으며 군인과 경찰 다음으로 많은 인원이 순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시 상황에서 철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한강철교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의 보루와도 같았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의 한강 이남과 이북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던 한강대교는 북한군의 남침을 늦추기 위해 강제로 폭파됐다. 당시 이승만 정권의 비겁한 조기 폭파로 서울 방어에 참가했던 아군(3개 사단)의 퇴로가 끊겼고 피란민 역시 발이 묶이기도 했다.
이 같은 이유로 한강철교는 지금도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돼 있다. 현대전에서의 철도의 역할이 많이 줄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강철교는 전후방 어디에서든 전쟁이 발생하면 대규모 병력과 물자를 이동시킬 가장 손쉬운 통로다. 따라서 한강철교는 언제든지 테러나 집중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국가철도공단은 이 같은 국가중요시설에 무기소유도 할 수 없는 방호원을 배치해 경비 업무를 담당하게 하고 있다. 방호원들은 우회로가 없는 중요 시설에 배치돼 있어 테러 등의 상황이 일어나면 국가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지금도 전방에 이동하는 군수 물자 혹은 화기, 전차는 철도를 통해 이동하기도 하며 폭발성이 있는 각종 화학품도 철도를 이용해 이동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단은 "철도 분야 국가중요시설은 원자력 발전소나 비행장 등과 다르게 전시 등 비상시에 적이 침투한다고 해서 즉시 폭파할 수 있는 구조물이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대비해야 할 국가중요시설을 담당해야 하는 입장에서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해명이다.
조지훈 국가철도공단 노조 방호 지부장도 "철도라는 것이 철로가 조금만 휘어져도 수백 명이 타고 있는 열차가 탈선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인력, 물자 수송에 큰 타격이 올 수 있다"라며 공단 측이 안보적인 차원에서 너무 안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에서도 공단의 방호원 운영이 안보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개선을 권고한 상태다.
양욱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 교수는 "합참에서 관련 사항을 지적했다면 공단에서도 개선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특수 경비가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라면 원전 시설과 같이 평시에도 비슷한 보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꼭 전시 상황이 아니더라도 국가중요시설은 전시에 준하는 재난 상황에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18년 국가 재난에 준하는 통신 대란을 일으킨 서울 KT 아현지사 화재가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 KT 혜화타워도 특별한 검문 절차 없이 누구나 손쉽게 드나들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혜화타워에는 차세대 통신망 핵심시설과 경찰청 데이터 송수신망 등이 총망라돼 있어 A급 통신시설로 분류됐다.
같은 해 충북 오송역 역내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서울로 향하던 KTX가 멈춰 선 것도 비슷한 사고다. 당시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3시간 넘게 어둠과 싸워야 했으며 이 열차의 사고로 일부 노선의 철도 운행이 중단되는 등 적지 않은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만약 전시 상황에서 이 같은 상황이 발생했으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8년에는 또 다른 중요 시설인 경기 고양의 저유소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 사고가 일어났을 때 역시 중요 시설에 대한 보안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이 사고들의 공통점이 허술한 보안 시스템과 중요 시설에 걸맞지 않은 인력이 운영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KT 아현지사는 중요 거점인데도 불구하고 당시 주말 출근자는 2명에 불과했고 저유소 화재 당시 근무자는 4명밖에 없었다. 특히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통제실에서 근무한 1명은 다른 업무를 하느라 불이 난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시설들의 꼼수가 작용한 결과인데, 현재 철도공단이 청원경찰의 고용을 피하기 위해 방호원에게 한강철교 경비 업무를 맡기고 있는 상황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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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철도공단이 관리하고 있는 국가중요시설은 한강철교만이 아니다. 공단은 한강철교를 포함해 국가중요시설 17개를 관리하고 있는데 '가'급이 2곳, '나'급은 13곳, '다'급은 2곳이다.
국가중요시설, 특히 안보와 직결된 사안을 담당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법을 좀 더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양욱 교수는 "지금까지 국가중요시설을 지정하면서 명확한 평가 없이 관습적으로 지정해 온 측면이 있다"며 "중요한 시설이 낮은 보안등급을 받은 경우도 있고 비교적 낮은 보안이 필요한 수준의 시설이 높은 등급을 받은 경우도 있어 전반적으로 보안 수준 조사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양새롬 박동해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박상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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