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창고 `5대 안전불감증`] 이천 쿠팡물류센터 화재로 본 사고 원인 및 대책

 

   물류센터 대형 화재가 2008년, 2020년에 이어 또다시 이천 쿠팡물류센터에서 발생해 종사자와 인근 주민들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로 일상이 된 '비대면 쇼핑'과 이를 뒷받침하는 물류센터 시스템의 민낯이 드러난 결과라고 지적한다.

 

 

20일 물류 및 유통업계에 따르면 물류센터를 둘러싼 사건·사고의 첫 번째 원인으로는 이커머스업체들의 무한 속도 경쟁이 꼽힌다. 기존 택배업체를 통해 주문 후 평균 2~3일가량 소요됐던 온라인 쇼핑 물품의 배송 기간은 쿠팡의 로켓배송, 마켓컬리의 샛별배송(새벽배송) 등이 도입되면서 비약적으로 짧아졌다.

 

 

두 업체를 필두로 주요 유통업체들이 줄줄이 배송서비스 개선에 힘을 쏟으면서 이제 소비자들은 주문한 지 최소 반나절 안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를 위한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투자와 업체 간 경쟁이 격화됐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쇼핑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물류센터를 확충하고 근무 인력을 최대로 가동해 물류 속도를 높이는 게 업계의 지상과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안전 등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사안은 도외시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번 화재는 운영 과정에서 발생했지만 물류센터 건설 과정에서도 업체들이 '빨리빨리'를 요구하면서 적지 않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 경기 이천에서는 이번 사건 전에도 냉동창고 건설 현장 화재로 2008년 1월 50명, 2020년 4월 4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공사 기간 단축'이 화를 불렀다. 냉동·물류 창고의 평균 공사 기간은 13~15개월인데 이는 동일 공사금액 타 건설 현장에 비해 20~30%가량 짧다. 지난해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 공사 화재는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여러 공정을 무리하게 수행하면서 발생했다.

 

공사상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잦은 설계 변경과 열에 약한 값싼 단열 소재를 선호하는 현상도 피해를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1998년부터 작년까지 공장, 주상복합, 물류창고 등에서 발생한 10여 건의 화재가 우레탄폼에 착화해 대형 인명 피해를 냈다. 난연성 단열재보다 저렴한 샌드위치 패널과 우레탄폼은 초기에는 연소가 서서히 진행되지만 나중에는 산소가 고갈될 때까지 화재가 빠르게 진행된다. 특히 물류센터 건설 현장에서는 건설비 절약을 위해 조립식 자재인 샌드위치 패널로 칸막이 벽체를 형성하고 우레탄폼으로 일정 두께로 덧대는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

 

 

작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에서는 대피로를 폐쇄하는 등 불법 설계 변경까지 확인됐다. 안전보건공단 중앙사고조사단은 "냉동·물류 창고는 발주자가 상온창고나 냉장창고 부분을 갑자기 냉동창고로 변경해 달라는 등의 설계 변경이 많은 편이고, 이로 인해 대부분 1~2개월의 공기 연장이 발생하고 있으며 건설업체에서는 계약 기간 미준수에 따른 지체상금을 내지 않기 위해 기계 설비 용접, 우레탄폼 등 화재 위험을 감수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후진적인 인력 관리도 문제다. 물류센터는 업무 특성상 대규모 인력을 단기간에 투입하는 인력 집약적인 형태로 운영된다. 특히 센터에서 분류 작업 등을 맡는 인력의 경우 대부분 아르바이트 등 일용직으로 구성된다. 한 근로자가 하루에 2곳 이상의 물류센터를 돌며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물류업계의 고질적인 속도 경쟁까지 더해지다 보니 상황에 맞는 충분한 안전교육 등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 설명이다.

 

 

이를 제대로 관할해야 할 사측의 감독·안전의식 부재도 사안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번 이천 화재의 경우 쿠팡 노조 등은 평소 현장에 먼지가 많이 쌓여 누전·합선 우려를 사측에 제기했지만 무시돼 왔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사측이 근무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작업장에 휴대폰 반입을 금지한 것도 초기 신고를 막아 문제를 키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근거 없는 억측, 허위사실 유포"라고 맞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물류·유통 업체들이 최근 확산되는 ESG(환경·책임·투명경영) 열풍에 맞춰 안전 관리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경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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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 미비에 따른 지자체의 감독 공백도 원인이다. 정부는 지난해 4월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 공사 화재 참사가 발생하자 지난해 6월 '건설 현장 화재 안전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법률 개정안은 이천 물류창고 참사 후 1년이 지난 4월이 돼서야 국회를 통과했고, 그마저도 오는 1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김찬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명예교수는 "물류창고는 안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사람이 거주하거나 생활 가능성이 낮다며 안전에 대한 규제 수준도 일반 건축물에 비해 낮다"고 지적했다.

[지홍구 기자 / 김태성 기자 / 최현재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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