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대한민국] 건설노조의 專橫...손 하나 못대는 정부
“기사 쓸 때 반드시 익명 처리해주셔야 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 회사 이름이 드러나면 우리 작업장은 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의 표적이 돼 초토화될 게 뻔합니다.”
건설현장 채용 개입과 공사 방해 등 건설노조의 부당행위를 호소하는 한 전문건설업체 A대표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익명보도를 여러 차례 요구했다. 노조에 찍힐 경우 그가 맡은 공사현장은 온갖 고소·고발 등 조직적인 ‘보복’이 가해져 공사를 접어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A대표는 “건설현장은 어디선가 찾아온 노조가 3일만 집회를 하면 하청(하도급받는 전문건설회사)이 날라 가고, 집회를 1주일 하면 공사현장이 쑥대밭이 되고, 3개월 지속하면 아예 원청(종합건설회사)까지 도산한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노조가 집어삼킨 건설현장
노조들의 도 넘는 요구는 먼저 건설현장 ‘들이닥치기’에서 시작한다. 전국의 건설현장 가운데 규모가 큰 곳을 찾아가 막무가내로 자기네 소속 노조원들을 건설현장 인력으로 넣어달라고 요구한다. 노조는 자기네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불법 외국인 노동자를 단속한다며 새벽부터 현장 출입을 가로막고, 출근하는 근로자를 불법으로 검문해 외국인을 색출한다.
외국인 중에서 취업비자가 말소됐거나 건설현장에서 일할 수 없는 무자격자를 가려내 출입국 관리사무소나 각 지방 고용노동청에 고소·고발하기도 한다. 현행법상 ‘외국인 고용 허가제’에 따른 허용 인원을 지키지 않았거나 건설업 취업이 금지된 외국인을 썼다가 적발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여기에 3년간 외국인 고용 제한 조치도 받는다. 이러한 법을 악용해 사업주 ‘길들이기’를 하는 것이다.
노조는 현장 노조 팀을 관리하면서 전임비(수수료) 명목으로 수백만원씩 챙기기도 한다. B골조업체 대표는 “한 노조가 자기네 노조원 채용 대가로 120만원의 전임비를 요구하는 게 일반적인데, 만약 5개 노조가 현장에 들어오면 600만원이 나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노조원을 채용함으로써 되려 비노조원에 비해 인건비만 상승하는 구조다.
최근 들어 건설 경기가 악화하면서 일자리 쟁탈을 위해 ‘불법고용 외국인’이 아닌 멀쩡히 일하고 있는 비노조 내국인을 내쫓는 경우도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 C사 대표는 “현장에 이미 근로자가 투입됐는데도 자기네 노조원 채용 강요로 기존에 열심히 일하고 있던 근로자를 내보내야 할 때도 있다”며 “비노조원이라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노조와의 고용 갈등을 일단락해도 건설현장의 생산성 저하는 더 큰 문제다. 단순작업을 하는 초보자와 목공·철근 등의 기능공은 숙련도가 엄연히 차이가 있지만, 이 같은 근로 경력도 사실상 노조원을 이끄는 팀장급이 멋대로 결정한다. 높은 일당을 요구하기 위해 초보자를 숙련공으로 둔갑시키기고, 고의적으로 느슨하게 일하면서 하루 일당만 챙겨가는 식이다. D건설업체 한 임원은 “노조의 횡포를 저지할 방법도 마땅치 않아 이들의 요구를 한없이 들어주다 보면 결국 사업 손실로 파산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전국의 건설 관련 노조는 국내 양대 조직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두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각 지역·분과별로 여러 노조가 결성돼 있다. 최근에는 이들 외에도 전국노총, 민주연합 등 신생 노조까지 우후죽순 생겨났다.
임금·단체협약 교섭을 요구할 정도로 ‘조직적 힘’을 가진 노조가 무려 11곳에 달한다. 기존 노조 운영에 불만을 갖고 갈라져 나와 새로 결성된 노조 일부는 사업주를 압박해 일자리를 얻어내고 각종 명목으로 금전을 뜯어내는 ‘악질 노조’로 변질했다는 지적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건설현장 일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빠르게 채워나가면서 노조의 활동이 일자리 쟁탈전으로 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자 범법자로 만드는 외국인 고용허가제
노조의 도 넘는 요구에도 사업주들이 신고할 수없는 이유는 현재 건설현장 여건상 외국인 불법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고선 제대로 돌아가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한건설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건설현장 전체 근로자는 약 120만명, 이 중 19.5%에 달하는 22만여명 외국인이다. 이 가운데 합법 외국인은 6만7000여명으로 약 16만명이 불법으로 현장에서 근로하고 있다는 애기다. 현재로선 이들을 고용하지 않으면 건설현장은 멈춰설 수밖에 없다.
건설사 입장에선 50~60대인 내국인 노조원보다 20~30대인 외국인 비노조원을 채용하는 게 훨씬 생산성이 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내국인들 사이에선 건설업을 3D 업종으로 보고 기피하는 현상이 심각하다.
C전문건설업체 대표는 “국내 건설현장은 3D 업종 기피 현상으로 자국민 근로자가 매년 줄어 이미 건설현장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워져 있다”며 “사실 외국인 고용 허용 숫자를 제대로 지키면서 운영하는 현장은 대한민국에서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털어놨다.
[이데일리 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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