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DDP는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게 아닌가요?
[한은화의 생활건축] 서울식물원의 온실, 누가 디자인했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게 아니네요?’
이 난데없는 논쟁으로 건축계가 시끌시끌하다.
서울 동대문 쇼핑타운의 랜드마크인 DDP는 작고한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자하 하디드는 창의적인 디자인이 담긴 기본설계를, 이를 구현할 공사도면을 그리는 실시설계는 국내 사무소인 삼우종합설계사무소에서 맡았다. 대형 프로젝트가 많은 해외에서는 흔히 역할을 나눈다. 물론 디자인의 저작권은 이를 디자인한 건축가에 있다.
한국도 해외 건축가와 협업할 때 이렇게 한다. 아모레 퍼시픽의 용산 신사옥의 기본설계는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했다. 실시설계는 국내 설계사무소인 해안건축이 맡았다.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데이비드 치퍼필드라고 공표됐고, 서울시 건축상도 ‘데이비드 치퍼필드+해안 건축’으로 받았다.
최근 발생한 디자인 저작권 논쟁의 근원지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 서울식물원이다. 엄밀히 서울식물원의 랜드마크인 온실의 디자인을 누가 했느냐는 논란이다. 서울식물원은 조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7년 워터프론트로 지으려다 시장이 바뀌면서 식물원으로 프로그램이 변경됐다. 애초 워터프론트 국제 설계 공모전에서 당선됐던 삼우가 계약을 유지해 식물원 프로젝트를 맡았다. 한데 식물원의 랜드마크가 될 온실 디자인이 문제였다. 서울식물원의 총괄계획가(MP)를 맡은 조경진 서울대 환경조경학과 교수는 “자문단 회의를 거쳐 온실은 특별한 프로젝트이니 김찬중 건축가(더 시스템 랩 대표)한테 설계를 맡기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김찬중의 설계로 온실이 탄생했다. 흔히 보던 가운데가 볼록 솟은 형태의 온실이 아니라 천장 가운데가 푹 들어간, 접시 형태의 온실이다. 관람객의 시선이 가운데로 몰리는 것을 디자인으로 뒤집었다. 서울식물원의 온실은 가장자리가 높아서 시선이 밖으로 향한다. 건축가는 “시간이 흘러 밖의 나무가 자라날 테고 시선이 밖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온실의 실시설계는 삼우가 맡았다. 하지만 홈페이지에서 이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김찬중과의 협업을 밝히지 않았다. DDP의 경우 자하 하디드와 협업했다고 적시했음에도 말이다. 더 나아가 최근 회사 유튜브 채널에서 서울식물원의 온실 디자인을 설명하면서 저작권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김찬중은 “대형설계사무소와 협업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만큼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훌륭한 디자인 없이 좋은 건축물이 나올 수 없다. 물론 잘 지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디자인도 소용없다. 그러니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잡아먹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인정하며 협업해야 좋은 건축물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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