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보는 부동산 정책
인간은 항상 변화하는 세상을 예측하고 미래를 알고자 노력한다.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은 우리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코로나19는 모여야 살 수 있던 인간 사회를 반대로 모이면 위험한 사회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는 코로나19 사태로 기존 사회의 방향이 바뀐 것이 아니라, 방향은 유지한 채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대면화, 개인화, 파편화, 디지털화가 더욱더 강화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건축으로 세상을 조망하고 사유하는 인문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그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코로나19 사태로 도시가 해체될 것인가”였다. 그는 이 질문의 의미를 “집값이 너무 비싼 지금 도시에 집을 사야 하나, 외곽으로 이사를 가도 되나 궁금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신작 ‘공간의 미래’에서 내놓은 답은 ‘해체되지 않는다’이다. 5000년 넘는 인류 문명과 도시 역사에서 그 추론의 근거를 찾는다. 다만 온라인 쇼핑,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등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공간 디자인이 바뀔 것이고, 이렇게 바뀐 공간은 사회를 바꿀 것이라고 예측한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유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건축학 석사, 하버드대 건축학 석사학위를 갖고 있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리처드 마이어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근무했으며 2005년부터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3년 설립한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 2019년 설립한 스페이스컨설팅그룹 대표도 겸하고 있다. 2015년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시작으로 ‘어디서 살 것인가’ ‘공간이 만든 공간’ ‘공간의 미래’ 등의 저서를 펴냈으며 2017년 방영된 케이블TV방송 tvN ‘알쓸신잡2’에 출연해 날카로운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셜록 현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0년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 2017년 아시아건축사협의회 건축상, 2020년 국제건축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하나의 공간이 다양한 용도로 쓰일 미래 사회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 아이별 맞춤 교육 과정이 있는 학교, 분산된 거점 오피스로 나뉜 회사…. 코로나19 이후 우리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공간에 대한 미래 예측을 내놓았다. 얼마나 맞을까.
“미래 변화는 기술 발달, 감염병, 기후 변화 등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만 건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공간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해보고 싶었다. 건축가이다 보니 공간 구조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그 안에서 성립되는 권력 구조와 사회 시스템에 주목하게 되는데 코로나19는 사람들을 모일 수 없게 하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게 하며, 악수도 못 하게 함으로써 미세하게 사람들의 관계를 바꾸고 있다고 본다. 그런 변화를 일상 속 공간에 각각 접목해봤다. 그중 일부는 후대에 거짓으로 판명될 거다. 뭐, 앨빈 토플러도 틀리는 마당에 조금 틀리면 어떻겠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래학자로 평가받는 앨빈 토플러(1928~2016)는 1980년 저서 ‘제3의 물결’에서 “미래는 정보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래에 텔레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들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게 돼 도시를 떠나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게 된다는 것이다. 현실은 달랐다. 인터넷과 컴퓨터가 발전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무실로 출근하고 도시에 모여 살았다. 직장 상사는 부하 직원이 자신의 눈앞에서 일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토플러의 예측이 빗나간 이유로 인간의 권력 욕구라는 본능을 계산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공간적 변화가 확연히 드러나는 시점은?
“앞으로 몇 번의 전염병이 더 올 것이냐에 달렸다. 만약 지금 상태에서 코로나19 백신이 성공적인 예방 효과를 가져오면 많은 부분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5년 내 또 나타난다면 2030년 무렵에는 많은 풍경이 달라질 거다. 일반적으로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 감염증은 10년 주기로 온다고 한다. 10년 주기라면 변화는 그렇게 빠르게 일어나지 않을 테고, 더욱이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각국의 대처가 이번 같지는 않을 것이기에 변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주거문화와 관련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주거문화에는 가족 구성원의 수와 일자리 종류가 영향을 미친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자리냐, 사람을 대면해야 하는 일자리냐가 주거 환경에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바뀌지 않을 대세 흐름은 하나의 공간이 여러 개 공간으로 나뉘기보다 하나의 큰 공간이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쪽으로 갈 것이라는 점이다. 또 돈이 많을수록 발코니 같은 사적 외부 공간에 대한 욕구가 늘어날 거다. 1990년대 우리나라 최고 부자 아파트라고 했던 타워팰리스를 보면 발코니가 하나도 없지만, 지금은 초고가 빌라나 아파트의 경우 발코니와 옥상 정원 같은 곳이 마련돼 있다.”
같잖은 집이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현실
유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많이 냈다. 매년 경제성장을 목표로 움직여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하면 계속 뒤처지고, 월세로 사는 것은 내 부동산 자산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노동의 대가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월세는 21세기에 존재하는 새로운 형태의 소작농’이며, 청년의 주거를 임대주택 중심으로 공급하는 일은 정부와 정치가에게 의존하는 국민을 늘어나게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집값이 폭등하고 은행 대출 없이 집을 사야 하는 세상이 되면 대자본가와 정치가에게 좋은 일이라고도 했다. 자본가는 자본의 집중을 얻게 되고, 정치가는 집을 살 수 없어 임대주택을 구걸하는 표밭을 얻기 때문이다.
그가 월세의 부정적 기능을 확신하게 된 것은 7년간 미국에서 유학한 경험에서 기인한다. 미국은 집값의 10% 정도인 계약금만 있으면 대출 받아 집을 살 수 있다. 당시 집값은 5억 원 정도였는데, 종잣돈 5000만 원이 있는 동료는 집을 사고 매달 대출을 갚아나간 반면, 그는 계약금 5000만 원이 없어 월세로 살아야 했다. 7년이 지났을 때 그는 그동안 지불한 월세만 1억 원에 이르고 남은 자산이 없던 반면, 동료는 구입한 주택 가격이 올라 부의 격차가 더 커져 있었다.
월세살이 경험 고백이 의외였다.
“당시 외환위기 때였다. 대한민국 국민이 대부분 큰 타격을 받았는데 나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내가 요즘 청년들에게 크게 공감하는 이유는 인생의 첫 단추가 어떻게 끼워지느냐에 따라 그 후 인생이 완전히 다르게 펼쳐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유대인 친구 얘기만 했는데, 당시 여유 있는 한국인 유학생 친구들도 미국에 집을 샀다. 그리고 귀국할 때 그 집을 팔고 들어오면 한국에 집을 살 수 있는 돈이 됐다. 어차피 집은 사두면 값이 오르고 인플레이션으로 대출금 부담은 줄어든다. 그런데 그 타이밍을 놓치면 15~20년 동안 집을 사기 힘들다.
나 같은 경우 좋은 학교를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설계사무소가 큰돈을 버는 곳도 아니라서 계속 적자였는데,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펴내고 ‘알쓸신잡2’에 출연하면서 커리어가 잘 풀려 뒤처졌던 걸 많이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운이 누구에게나 오기는 어렵지 않나. 아들만 둘인데, 10년 내로 아들들이 부동산 문제를 맞닥뜨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나조차도 이럴진대, 더 안 좋은 여건에 있는 사람은 빛이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2005년 한국에 왔을 때 집값이 되게 비쌌다. 그때 집값이 폭락해 반값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지금 가격은 그때의 5배, 내가 적정하다고 생각했던 가격의 10배는 뛰었다.”
부동산 가격을 적정화시킬 방법은 없을까.
“지금처럼 가뭄에 콩 나듯 재건축·재개발이 이뤄지고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면 정말 같잖은 집들만 비싼 가격에 거래될 뿐이다. 어떤 분은 분양가상한제가 없었으면 집값이 훨씬 더 많이 올랐을 거라고 하는데, 실제 시장 상황은 분양가상한제와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서울 서초구 반포 아크로리버파크를 봐라. 지금 3.3㎡당 1억 원 넘게 거래되는데 공사비는 아마 3.3㎡당 1000만 원 안팎이었을 거다. 물론 땅값이 비싸 3.3㎡당 분양가가 3500만 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완공 후 가치가 상승해 1억 원이 됐다. 진짜 1억 원 가치를 지닌 집이라서가 아니라, 분양가상한제 때문에 3.3㎡당 3500만 원에 지어진 집이 희소성에 의해 1억 원 가치를 갖게 된 거다. 차라리 처음부터 좋은 집은 비싸게, 나머지는 적정한 가격에 대량으로 공급하면 좋지 않은 집을 비싼 돈에 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분양가상한제를 바로 풀거나 동시다발적으로 너무 많은 재건축이 일어나면 자재 가격이 올라 집값이 또 상승하게 된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밸런스를 맞출지 전문가가 아주 예리하게 분석해 적절한 수준으로 진행해야 한다. 문제는 지난 10년간 너무 안 했다는 점이다. 뒤처진 지난 10년을 따라가려면 초반에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재건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래됐다고 보존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
대규모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 같다.
“수천 세대가 뜻을 같이하고 움직이려면 10년은 걸린다. 그래서 나는 대규모가 아닌 다세대주택 몇 개를 묶어 진행하는 중규모 재건축을 제안한다. 아파트처럼 지하주차장, 정원, 발코니가 있는 공간을 빠른 시간 안에 공급할 수 있으리라 본다.”
재개발·재건축 기회는 한 번뿐인데 사람들이 그런 공간을 받아들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그런 중규모의 좋은 프로젝트를 체험해본 적이 없다. 다세대주택 단지에서 대형 아파트 단지로 가려면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인데 쾌적한 환경과 안전함, 편안함 등 아파트의 장점을 웬만큼 갖춘 공간을 당장이라도 제공받을 수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자산을 한 번 불린 다음 아파트로 가도 되고. 나라면 10년을 기다리느니 3년 안에 해결되는 편을 선택할 거다. 그런 개발은 구청 단위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꽤 오랜 시간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이런저런 사업을 했지만 큰 틀에는 변화가 없어 노후화가 많이 진행됐다.
“건축가라 그런지 내 눈에는 재건축할 곳 투성이다. 여러 가지를 가장 잘 갖추고 있다는 강남도 도로 안쪽으로 들어오면 옛날에 지은 다세대주택이 수두룩하다. 서울 곳곳에 되게 많은데, 그걸 오래됐다고 보존하자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 주거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향수에 젖어 ‘라이방’ 선글라스가 제일 멋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일 수 있지만, 그걸 계속 유지하는 건 누군가에게 주어져야 할 기회를 빼앗는 일일 수 있다. 그 결과로 지금 젊은 세대가 피해를 보고 있다. 내가 제일 화나는 부분이 그거다. 서울에 집을 지어야 하는데 재건축을 하면 집값이 올라갈 테니 수도권에 집을 짓는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을 수도권에서 서울로 출퇴근하게 한다. 바보 같다.”
도시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발전과 보존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그 균형이 잘 맞춰지는 곳이 미국 뉴욕이나 보스턴이라고 생각하는데, 잘 보존되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는 계속 바뀌고 있다. 서울을 보면 1980~1990년대 4층짜리 다세대주택이 엄청나게 지어졌다. 이제 수십 년이 지났으니 이제 그런 집들은 한 번 부수고 다시 지어도 된다고 본다. 중규모 개발로 그런 골목길의 패턴과 그 밑에 깔린 상하수도 같은 시설을 유지하면서 붙어 있는 필지들을 묶어 개발한다면 1층에 주차장을 넣은 가분수 필로티 건물이 아닌, 다양한 상업시설이 들어간 주거공간이 나올 수 있을 거다. 그 대신 먼저 용적률, 건폐율, 높이 제한 등을 풀어 사업성이 나올 수 있게 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면 어떤 곳은 건물을 높게 짓는 대신 공원을 넣을 수 있고, 어떤 곳은 중저층으로만 건물을 넣는 실험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자연발생적 경쟁 위에서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같은 데서 정해놓은 표준 모델에 맞춰 모든 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다음 세대를 위한 진화가 필요한 때다.”
신도시 개발이 만들어낸 먹이사슬
지금 또 3기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다.
“3기 신도시에 회사가 들어갈 리 없지 않나. 그럼 또 다른 베드타운이 만들어진다. 그럼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나설 테고. 그러니까 먹이사슬이 만들어지는 거다. 신도시를 개발하면 일단 토지 보상을 받는 분들과 LH 직원들이 좋고, 토목공사하는 분들이 좋고, 싼값에 아파트 지을 땅을 살 수 있는 건설사가 좋다.
흔히 ‘토건 세력’이라는 그분들은 사실 똑같은 일을 서울에서 해도 된다. 그런데 왜 안 하느냐. 이른바 토건 세력과 LH가 쉽게 돈 버는 상황에 익숙해져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집값이 비싸졌다고 하면 LH는 그린벨트를 풀어야 한다, 신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만 한다. 본인들 일거리를 계속 만드는 거다. 만약 서울에 재건축을 하면 당연히 서울이 선호될 거 아닌가. 그러면 사람들은 다 서울에 들어와 살려고 할 테고, 외곽에 있는 아파트 가격은 떨어질 거다. 그런데 지금은 서울을 다 눌러놓고 있으니 1시간 반씩 출퇴근해야 하는 거리에 있는 집값이 오르는 거 아닌가.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집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나.
“식물은 뿌리내린 곳을 자기 공간으로 확보한다. 동물은 계속 이동하기 때문에 집이 필요 없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아니다. 오히려 동물일수록 쉴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다. 그중 계속 흘러가는 시간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다. 우리가 노력해 컨트롤할 수 있고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건 공간뿐이다.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려 노력하는 거다. 만약 시간에 이어 공간마저 컨트롤할 수 없게 된다면 불안을 느낀다. 자기는 집을 갖고 있으면서 젊은이들에게는 임대로 살라거나, 셰어하우스 같은 데서 살라고 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20대는 집을 살 수 없다”는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 그는 “예전 같으면 3억~4억 원 하던 집이 10억 원이 넘는 현실에서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가 집을 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지난 수년간 우리 사회에 광풍처럼 몰아쳐 많은 이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부동산 문제를 풀 현명한 해결책의 탄생을 기다려본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동아일보
주간동아 12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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