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 l 일본은 어떻게 프리츠커상의 단골이 되었나
[효효 아키텍트-81]
단게 겐조(1913~2005)는 1946년부터 도쿄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단게 실험실'을 설립하고 마키 후미히코(1928~), 이소자키 아라타(1931~) 등을 키웠다.
1961년 3월 단게는 잡지 '신건축(新建築)'을 통해 '도쿄계획-1960: 그 구조개혁의 제안'을 발표했다. '도쿄계획'은 건축가 김수근의 '여의도계획'(1968)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의도계획'은 여의도에 국회의사당, 서울시청, 대법원을 모두 옮기려는 계획이었다.
1960년대 일본 건축가들이 인공대지, 캡슐호텔 등 가변성과 유연성, 증식과 변화가 핵심 가치인 메타볼리즘(Metabolism)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세계 건축계에 본격 등장한다. 신진대사를 뜻하는 생물학적 용어인 메타볼리즘은 도시와 건축을 유기체처럼 바라보자는 철학을 담았다.
불과 서른 살의 이소자키가 1961년 발표한 '신주쿠 프로젝트-공중 도시' 개념은 지금 봐도 여전히 새롭다. 이소자키는 1963년 건축사무소(Arata Isozaki & Associates)를 설립한다. 일본은 바야흐로 사회 전체가 도쿄올림픽(1964)을 계기로 '전후' 재건을 세계에 알리고 있었다.
자신의 고향인 오이타에 지금은 미술관으로 쓰이는 아트플라자(Art Plaza·옛 오이타현립중앙도서관, 1966)를 설계한 뒤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에 참여한다. '빅루프(Big Roof)'는 단게와 동료들이 기둥 여섯 개로 구현한 지붕이다. 도시를 뒤덮는 인공 지붕 구조체에 이러저러한 유닛을 플러그인함으로써 메타도시의 질서를 구현한다는 구상을 워킹모델로 제시했다.
이후 이소자키는 군마현립 근대미술관(1974), 후쿠오카현 기타큐슈 시립미술관(1974), 기타큐슈 시립 중앙도서관(1979), 이바라키현 쓰쿠바센터 빌딩(1979~1983)을 선보이며 서구 건축계에 빠르게 편입해 들어간다.
쓰쿠바센터 빌딩은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주 공간이 위치하고, 그 주위를 다른 기능의 건물들이 둘러싸는 모양으로 배치해 서로 유기적 관계성을 중시한다. 쓰쿠바센터 빌딩은 의도적으로 일본 전통 모티프를 배제하고 서양 건축의 중요한 장면들을 맥락 없이 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자인 개념은 중심부재(中心不在)다. 16세기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이탈리아 로마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을 뒤집어놓는 개념이다. 패턴은 캄피돌리오를 사용하고 있지만 삐뚤어진 배치, 모퉁이의 광장 계단, 어긋난 매스 등 포스트모더니즘의 탈중심적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기타큐슈 시립 중앙도서관은 공원 내 언덕에 위치한다. 2개의 연결된 청동색 튜브 형태 반구형 지붕이 다이내믹하게 유(U)자형으로 꺾여 있다. 실내에서 본 천장은 크게 구부러지는 들보가 지지하는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아치형이다. 전체적으로 지표의 단차를 이용했고, 곳곳에 보이드(void) 공간을 만들어 변화를 줬다.
미국 LA 현대미술관(1981~1986, MOCA·Museum of Contemporary Art)은 해외에서 한 첫 작업이다. MOCA는 동시대 작품(contemporary arts)을 다루던 파사데나 미술관이 대재벌 노튼 사이먼의 개인 미술관으로 바뀌자 LA 거물들이 의기투합해 세웠다.
피라미드 모양인 인도산 붉은 사암으로 만든 건축물의 강렬한 색과 명확하게 윤곽이 인식되는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본관 입구에는 부서진 비행기 조각으로 새를 형상화한 오브제가 놓여 있다.
MOCA는 중심에 성큰가든(Sunken Garden)을 품고 있다. 주 출입구뿐 아니라 대부분의 시설이 성큰가든을 중심으로 캘리포니아 플라자의 대지 레벨 아래에 배치돼 있다. 대지 레벨 상부로 매스가 올라와 있지만 남쪽 매스는 전시공간의 높은 층고 때문이고 반원형 아치를 연속되게 만든 '배럴 볼트'(Barrel Vault) 지붕으로 처리된 ┎자 평면의 북쪽 매스에만 행정시설이 배치돼 있다.
이소자키가 설계할 당시 LA시는 주변 가로환경에 대응되는 저층으로 건축물을 계획할 것을 조례상으로 요구했다. MOCA는 공공 전시시설이라는 프로그램 속성상 시민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있는 높은 인지성을 갖춰야 했다. 이소자키가 취한 전략은 건물 색채를 강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붉은색 사암(sandstone)을 외관재로 선택했다.
MOCA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그랜드 애비뉴를 따라 긴 직사각형 평면으로 배치된 매스다. 평면의 매스 지붕을 배럴 볼트로 처리한 것도 인지성 때문이다. 매스 1층부는 필로티로 띄웠다. 1997년 미국 뉴욕 모마(MoMA)에서는 개관 기념 그룹 전시로 이소자키의 MOCA 작품을 개념화한 판화 MOCA 시리즈를 전시했다. 평면에 자신의 3차원 건축물을 미니멀 평면 회화로 펼쳐놓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마라톤 우승자 황영조다. 그가 마지막 피치를 올리며 관중의 환호 속에 스타디움인 팔라우 산 조르디(1983~1990, Palau Sant Jordi)에 들어선 감격은 동시대를 목격한 한국인 가슴 한 편에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 스타디움을 설계한 이가 이소자키다.
중국 광둥성 선전문화센터(Shenzhen Cultural Center, 1998~2007) 내 심포니홀은 1680석 규모의 빈야드(vineyard·포도밭) 형태 공연장으로 이소자키는 나가타 어쿠스틱스와 협업해 협곡 같은 테라스 형태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설치미술가인 오노 요코(1933~)와 공동 작업한 'Penal Colony'(감옥·2004)는 얼어붙은 호수 얼음을 사용해 제작됐는데, 얼음 자체에 함유된 미네랄에 의해 신비로운 파란색을 자아낸다.
카타르 도하 국립컨벤션센터(Qatar National Convention Center, 2004~2011)는 유리로 둘러싸인 외관과 지붕 캐노피를 지지하는 거대한 나무 뿌리 형태의 구조물로 돼 있다.
중국 상하이 심포니홀(2008~2014)은 1200석 규모로 용수철 위에 지어진 '공중에 떠 있는 건축물'이다. 가까운 지하철에서 나오는 소음과 진동을 막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다. 음향 전문가 야스히사 도요타와 협업해 실내 천장과 벽은 엮은 대나무를, 바닥은 홋카이도산 삼나무를 사용했다.
이소자키는 자신의 해외 작품에 의도적이든 아니든 국제적인 명성의 일본계 인물과 협업하거나 일본산 자재를 쓰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도후쿠(東北) 지방의 대지진과 쓰나미는 일본 사회의 변곡점이 됐다. 건축가 역할도 변화해 재난지 내 임시 대피소와 가설주택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라는 건물 설계자를 넘어 일본 사회의 다양한 소프트웨어적 문제에까지 개입하는 등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주어진다.
간이 콘서트홀 아크노바(Ark Nova, 2011)는 재난 건축물이다. 인도 출신 영국 조각가 애니시 커푸어(1954~)와 협업으로 설계된 높이 18m, 폭 30m, 길이 36m, 면적 720㎡로 3시간 동안 공기를 주입해야 완성된다.
겉모습은 거대한 가지(eggplant)이지만 한쪽으로 기운 보라색 도넛 모양을 하고 있다.
움푹한 블랙홀 모양은 커푸어의 조각이나 설치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이다. 콘서트홀은 바람을 빼서 손쉽게 운반이 가능하며, 의자는 쓰나미로 쓰러진 나무들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이소자키는 2019년에서야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으며 일본인으로서 8번째 수상자가 됐다. 5년 앞선 2014년 수상자인 반 시게루(1957~)는 미국 쿠퍼유니언을 졸업하기 전 이소자키 사무실에서 1년간 실무를 거쳤다. 이소자키는 프리츠커 상이 제정되던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심사위원을 지낼 정도로 이미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올라 있었다.
심사위원회는 "이소자키는 동양이 서양 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던 시대에 해외로 나가 스스로의 건축술을 확립한 진정한 국제적 건축가"라고 밝혔다. 또 "건축사와 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아방가르드의 포용으로 결코 현상 유지를 복제하지 않는 건축가"라고 평가했다.
지난 50여 년간 그가 참여한 설계 프로젝트는 100개가 넘는다. '이소자키 스타일'이라고 범주 짓기 어려운 것도 이소자키 건축의 특징이다. 그는 "환경과 상황에 적응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는 계속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일관적인 것은 변화뿐이다. 역설적으로 이 변화가 나만의 스타일이 됐다"고 말한 바 있다.
[프리랜서 효효]
※참고자료 : a-platform 블로그
매일경제
https://www.mk.co.kr/premium/life/view/2021/04/29973/
일본은 어떻게 프리츠커상의 단골이 되었나
함인선 건축가·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해마다 3월이 되면 세계 건축계는 프리츠커상 때문에 술렁인다. 1979년에 시작해 최고 권위를 획득한 이 상의 올해 주인공은 일본의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다. 일본은 여덟 번째인 미국에 이어 벌써 일곱 번째 수상자(팀)를 탄생시켰다. 역대 수상자를 하나라도 낸 나라는 19개국이다. 영국이 4명이고 프랑스·이탈리아·독일·스위스·스페인·포르투갈·브라질에 각 2명씩이 있다.
일본건축은 이미 최정상
20년 침체, 건축도 단련돼
건축가 사회참여도 호평
건축은 사회수준의 반영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 초기 12년간 무려 7명의 수상자를 낸 반면 일본은 2010년대에만 4명으로, 최근 이 상의 단골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천 년 서양건축이 본류인 현대건축에서조차 일본이 선두에 선 것은 근대화와 근대건축이 서구만큼 일찍 뿌리내렸다는 역사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특유의 장인정신 덕이라 하면 독일·이탈리아 또한 서운할 것이고 경제력에 기댄 네트워크나 이국취미(exoticism)를 이유로 삼는 것도 좀 치사스럽다. 축구도 아닌데 그냥 쿨하게 인정하자. 일본의 건축은 이미 세계적이기를 넘어 최고의 경지다.
오히려 궁금한 것은 그게 언제부터인가다. 1987년과 1993년은 ‘공로상’에 가깝다. 당시 경제적 위상을 생각하면 일본 건축의 대부인 단게 겐조와 하버드 출신에 미국에서 주로 활동한 후미히코 마키에게 상이 간 것은 그럴만하다. 1995년 권투선수 출신인 독학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받자 일본 건축아카데미즘을 한 방 먹인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안도를 세계 건축계에 소개한 이는 저명한 건축사학자 케네스 프램튼이다. 모더니즘의 해방적 성격과 지역 전통의 재해석을 결합한, 이른바 ‘비판적 지역주의’로 자본주의 건축의 폐해를 넘을 수 있다고 보는 그는 안도를 예로 든다. 안도는 엄격한 기하학을 쓰되 자연과 불이(不二)의 관계를 맺게 하고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되 일본 특유의 맑고 투명한 전통공간을 재현한다
중앙일보
[전문]
https://news.joins.com/article/23417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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