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따구 논란 지자체 정수장...'전문 인력 절대 부족"
깔따구도 나오는 수돗물 "'먹는물'인데 전공자에게 맡겨야"
인천에서는 지난해 ‘붉은 수돗물’ 사태에 이어 지난달에는 ‘깔따구 유충 수돗물’까지 발생했다. 유충 발생 사례가 인천지역에서만 256건 발생했고, 환경부의 정수장 전수 점검에서도 고도처리 정수장 49곳 중 7곳, 일반정수장 435곳 중 3곳에서 유충이 발견됐다.
물관리 백년대계 세우자<하>
잇딴 수돗물 사고로 '먹는물' 수질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지만, 수돗물 수질 관리는 치밀하지 못하다. 수돗물 생산·공급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담당하는데, 환경부가 전문성이 부족한 일선 지자체 상황까지는 챙기지 못하고 있다. ‘재료’가 되는 강과 호수의 상수원 수질 관리에도 구멍이 많다.
지난달 '수돗물 유충' 사태 이후 인천 부평정수장을 찾은 정세균 국무총리. 인천에서는 지난해 붉은 수돗물에 이어 연달아 대형 '수돗물 사고'가 터지면서, 시민들의 '수돗물 안전'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졌다. 인터넷에서는 샤워기 필터의 가격이 치솟았고, 인천 지역에서는 수돗물 대신 생수로 씻고 밥을 짓기도 했다. 사진 국무총리실
지난달 22일 '수돗물 유충' 사태가 시작된 인천 공촌정수장. 각 지역 상수도로 공급되는 정수장은 지자체에서 운영하지만,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데리고 있는 수질관리 전문가가 거의 없다보니 전문적인 부분은 유역환경청 혹은 한국환경공단, 수자원공사 등의 조언을 많이 받는다. 뉴스1
전문 인력 부족한 지자체 정수장
정수장 시설 운영은 각 지자체에서 맡고 있다. 환경부 산하 유역청이 전반적인 지휘‧감독을 하고, 한국환경공단과 한국수자원공사 등에서 자문을 받는다. 하지만 순환보직으로 운영돼 지자체별 정수장 담당 공무원의 역량 차이가 크고, 갑작스런 상황 발생 시 최선의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도 있다.
환경부 A유역관리청 직원 B씨는 “‘정수시설 운영관리사’라는 자격제도가 있어 수도사업 관리 실태평가에 반영되기도 하지만, 정수장 업무가 '기피 업무'로 여겨지는 탓에 공무원에게 매력도가 떨어진다”고 전했다. 반대로 정수장에 오래 근무하며 한 가지 업무만 계속 맡는 경우에도 작은 변화는 눈치 채지 못하거나, 다양한 개선책을 시도하기 쉽지 않은 면도 있다.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구자용 교수는 “상수도 분야 기술직 공무원을 다른 분야로 옮기면서 10년 전에 비해 30~40% 줄어, 지자체의 수질 관련 전문 인력이 양적‧질적으로 모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미량오염물질, 맛‧냄새물질 등 새롭게 등장하는 수질 이슈에 대응하는 새 기술을 이해하고 적용하려면 최소한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명지대 환경에너지공학부 이창희 교수도 “90년대 후반부터 규제 완화로 정수시설‧환경시설 업무를 전공자만 맡게 하는 규정이 없어졌다”며 “적어도 각 시설에 한 명 이상의 전공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폭염이 지속된 2018년 8월, 경남 창원시 본포취수장 인근 낙동강에 녹조가 창궐해 초록 물감을 풀은 듯 초록빛을 띠고 있다. 낙동강 하류 유역은 2013년 이후 녹조 발생이 크게 늘었고, 특히 창녕함안보와 강정고령보는 2013년 이후 한 해도 빼놓지않고 조류경보/주의보가 한 달 넘게, 가장 많게는 161일 내려졌다. 사진 마창진환경연합
늘어난 녹조, 해결 어려운 폐수
수돗물 수질관리에서는 원수(原水)의 수질도 중요하다. 전국 강과 하천의 수질관리는 환경부가 담당한다. 가장 큰 변수는 해마다 발생하는 녹조와 시시때때로 흘러드는 산업‧축산 폐수다.
수온이 높고 광량이 풍부한 여름철, 강물이 느리게 흐를 때 왕성하게 자라는 조류가 걸러지지 않고 수돗물로 흘러들 경우 비릿한 맛과 냄새를 낸다.최근 10년간 환경부의 조류경보 발령 횟수를 살펴보면 2009년 244건이던 조류경보 발령은 2015년 이후 급증해, 2018년은 552건에 달했다.
산업‧축산 폐수도 골칫거리다. 지난달 발간된 '2018 조류발생과 대응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2555개 가축분뇨 배출시설 점검으로 196개소에서 위반 사항이 적발됐고, 이 중 34건은 고발 조치됐다. 낙동강 등에서는 폐수를 통해 다이옥산이나 과불화합물 등 유해물질이 유입되기도 한다.
1996년 10월 27일 대구염색공단에서 흘러나온 공장폐수로 인해 시꺼멓게 변해버린 강물이 금호강으로 유입돼 영남지방의 젖줄인 낙동강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강, 금강, 영산강 등 다른 강 유역과 다르게 낙동강 상류는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산업단지와 소규모 공장, 축사가 많아 오염원 관리도 어렵고 따라서 수질 관리도 어렵다. 강 상류가 아닌 강 하류 지역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곳도 전국에서 부산과 경남 지역뿐이라,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지자체에서는 '오염된 하류 물 말고 낙동강 상류의 물을 쓰고 싶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중앙포토
‘물 잡음’ 큰 낙동강 유역, '취수원 다변화' 논의 시동
수돗물의 수질 개선과 안정적 공급을 위해 원수(原水)를 여러 지점에서 끌어오는 ‘취수장 다변화’도 중요하다. 특히 강 상류에 구미산단 등 대형 산업단지가 있고, 축산농가도 많은 낙동강 유역은 절실한 문제다. 강 본류에서 취수하는 비율(부산 91%, 대구 67%)이 높은 낙동강 유역은 특히 1991년 경북 구미의 페놀 원액 유출 사고 이후 주민들의 수돗물 오염에 대한 우려가 큰 편이다.
지난해 환경부의 의뢰로 진행된 연구용역 결과 부산은 합천(황강)ㆍ창녕 등으로, 대구는 구미ㆍ안동 등으로 취수원을 늘리는 방안이 제안됐다. 환경부 김지연 물정책총괄과장은 “근본적으로 낙동강 수질을 개선시키는데 더해, 취수장 다변화는 혹시 모를 비상시에 ‘안심’ 수준의 맑은 물을 상시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며 “오염사고 뿐만 아니라 가뭄이 들었을 때 수질악화 등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일 권영진 대구시장이 "취수원 다변화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낙동강 하류 대도시인 대구와 부산은 취수원 다변화가 해묵은 숙원사업이다. 정부 차원의 논의는 아직 '연구' 수준으로 초기 단계지만, 두 광역시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취수원을 늘리겠다'며 맹렬하게 나서고 있다. 그러나 취수원 후보지로 꼽히는 경북 안동, 구미 등 도시들은 물 부족, 규제 등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지역간 이해관계가 얽혀 진척이 더디다. 환경부 연구용역 결과를 놓고 매년 조류 발생으로 고충을 겪는 합천창녕보 인근 지역은 “4대강 보 수문 개방이 우선”이라며 취수원 관련 논의에 반대하고 있다. 구미 등 낙동강 상류 지역에선 “취수장과 함께 규제가 들어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댐으로 과거 지역 일부가 수몰됐던 안동도 주민 반대가 심한 편이다.
이에 대해 연구용역을 총괄하는 명지대 이창희 교수는 “상수원에 오염시설이 없는 다른 강과 달리 낙동강에는 과거에 세운 산업단지, 오염시설이 너무 많다”며 “사고 가능성에 대비하는 한편 수질 안정을 위해 취수장을 다양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부산·대구=이은지‧김정석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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