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한 서울’을 누가 만들었나.

[한은화의 생활건축] ‘천박한 서울’을 누가 만들었나


한은화 경제정책팀 기자


5일 정부과천청사 앞마당에 천막 4개가 펼쳐졌다. ‘천막 시장실’이자 시위 현장이다. 정부가 과천에서 노른자위 땅으로 꼽히는 과천청사 공터에 공공주택 4000가구를 짓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항의다.

 

과천뿐 아니다. 마포·용산·노원구 등 정부가 4일 발표한 공급대책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알짜 땅 또는 소중한 녹지에 공공주택을 짓겠다니, 결사반대다. 이를 누군가 또 비난한다. 공공임대주택을 기피하는 전형적인 ‘님비현상’이다. 필요하다고 할 땐 언제고 내 지역구에는 안 된다고 하니 참 못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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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펼친 싸움판이다. 공공임대주택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온당하다. ‘임대주택=후지다’는 인식 탓이다. 30년 전 장기임대아파트를 처음 도입한 이래, 정부는 임대아파트의 양적 건설에만 집중했다. 10평대의 다닥다닥 좁은 아파트만 잔뜩 지었다. 가족 수가 많더라도 감지덕지 여기며 살아야 했다. 임대아파트 거주민의 삶의 질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정부가 공공주택의 질을 고민하지 않는 사이, 민간 아파트 시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건설사들은 미세먼지 이슈가 떠오르면 주방과 현관에 바로 저감 장치를 장착한다. 민간에서 아파트는 집이자 상품이다 보니 트렌드에 발 빠르다. 새 아파트일수록 인기가 많은 이유다. “2025년이면 임차 가구의 25%가 공공임대에 거주할 것”이라고 말하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공공주택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공공과 민간의 시각차는 여전히 크다.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 역세권 청년주택(사진)의 이미지가 재건축 조합들의 단톡방에 떠돈다. “닭장이 따로 없네요”라는 평가다. 고층 빌딩에 소형 주택이 꽉 차 있는 모습 탓이다. 우리 공공임대주택의 현주소다. 


서울의 한 역세권 청년주택의 모습. 중앙포토




세계 도시 중 삶의 질 1위로 늘 꼽히는 오스트리아 빈은 다르다. 인구 180만 명의 빈에서 사회주택에 사는 사람은 50만 명에 달한다. 공공에서 직접 사회주택을 짓거나, 민간에서 지을 때 건축비의 3분의 1을 지원한다. 대신 월세 상한선도 정하고, 주거 질도 평가한다. 이런 공공의 지원으로 빈에는 수영장을 갖춘 싸고 좋은 사회 주택이 지어진다. 땅의 용적률(대지 면적 대비 건축 연면적)만 높여주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한국 정부와 다르다. 역세권 청년주택과 빈의 사회주택의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짓는 공공 주택이 민간에서 짓는 집보다 더 좋다면, 정부가 싸고 좋은 집을 공급하기 위해 애당초 노력했다면 도시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단언컨대 ‘천박한 서울’은 공공의 직무유기로 만들어졌다.

한은화 경제정책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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