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모순] 전기사업자 전력기금 보전, 탈원전 정책 부작용 자인하게 된 꼴
'탈원전 딜레마'… 월성 1호기 손실 보전하면 '조기 폐쇄는 정부 결정' 자인하는 셈
"한국전력 적자, 탈원전 때문 아니다"라고 한 정부 주장 모순
최근 개정된 전기사업법 시행령과 관련해 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한국전력공사 (19,600원▲ 250 1.29%)와 한국수력원자력 등 전기사업자의 대규모 적자는 탈원전 정책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에너지 정책 이행 과정에서 전기사업자의 비용을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으로 보전할 수 있도록 한 근거 조항을 마련하면서 결과적으로 정부가 애써 덮어온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을 자인하게 된 꼴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경북 경주에 있는 월성 원자력 본부. 오른쪽부터 월성 1~4호기의 모습으로, 월성 1호기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조기 폐쇄 결정이 내려졌다./월성 원자력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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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전력기금을 통한 비용 보전 대상에 조기 폐쇄 결정이 내려진 월성 원자력 발전소 1호기가 포함되면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결국 정부가 결정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일 0시 개정된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관보에 게재했다. 이 시행령 34조에는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된 에너지정책의 이행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인정하는 전기사업자의 비용을 전력기금으로 보전할 수 있다’며 ‘전력기금 용도에 에너지전환 비용 보전을 위한 사업을 신설한다’고 명시했다. 탈원전 등 정부가 추진한 에너지 정책에 따라 발생한 사업자 손실을 전력기금에서 메우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정부는 해당 시행령은 지난 2017년 10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에너지전환 로드맵’에 따른 후속 조치라고 설명했다. 당시 정부는 ‘원전의 단계적 감축과 관련해 적법하고 정당하게 지출된 비용에 대해서는 기금 등 여유 재원을 활용해 보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었다.
당장 한전이나 한수원의 손실이 탈원전 정책 때문이 아니라고 한 정부의 주장이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말하는 ‘원전의 단계적 감축으로 지출된 비용’은 발전 자회사와 민간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구입해 소비자에 판매한 한전이 고스란히 떠안았다"며 "그동안 한전의 적자는 탈원전 때문이 아니라며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던 정부 입장이 무색해졌다"고 말했다.
더 큰 딜레마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현재 감사원 감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발생한다. 산업부와 한수원은 조기 폐쇄 결정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다. 감사원 감사가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산업부는 "한수원이 이사회 결정을 통해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 조치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수원은 "산업부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기금으로 한수원의 비용을 보전해줄 경우 월성 1호기 조기폐쇄가 결국 정부의 결정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 된다. 전력기금으로 보전하는 전기사업자의 비용 전제가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따라 발생한 것’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시행령 개정에 따른 비용 보전 범위와 절차 등 세부 사항은 고시를 통해 제정하고, 사업자가 비용 보전을 신청하면 적법·정당 여부를 검토해 보전 금액을 확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성 1호기 역시 손실 보전 대상이고, 한수원이 신청하면 심사를 통해 보전 여부와 금액이 결정된다.
법적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한수원은 조기 폐쇄 결정이 내려진 월성 1호기에 들어간 설비 개선 비용과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 등 신규 원전 4기에 투입한 금액을 보전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수원은 내부적으로 월성 1호기 설비 보강에 투입한 5925억원과 신규 원전 4기의 부지
매입 비용 1000억원 등 최대 7000억원 정도를 탈원전 정책에 따른 직접 비용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시행령에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된 에너지 정책 이행’이라는 문구에 주목해야 한다"며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한수원이 이사회를 열어 통과시킨 사안이라 해도 결국 정부 정책에 근거한 행정지도에 따른 것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선옥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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