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건물을 얻는 묘법" -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좋은 건물을 얻는 묘법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육군공병대 불도저가 남산 중턱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국회의사당 건립부지 조성 사업이었다. 1959년의 일이다. 그런데 어떤 모양의 건물이 들어설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부지 조성공사 공정률 60%가 넘은 후에 건물 설계의 현상공모 당선작이 결정되었다. 다음에는 남산에 국회의사당이 들어서는 게 옳은지 토론이 벌어졌다. 건설사업이 시공·설계·기획의 순으로 이루어졌다.
건축은 많은 이해 충돌하는 사업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 설정 필요
좋은 기획이 좋은 건물 얻는 출발
큰 공공사업은 기획설계 공유도
많은 이들이 묻는다. 좋은 건물 얻는 묘법이 무어냐. 답은 간단하다. 그런 묘법 없다. 건축은 주택 하나 짓는데도 수십 명이 투입되는 복잡한 사업이다. 그런 과정에 묘법이 있다면 그건 사기거나 꼼수다. 정공법이 있을 뿐이다. 좋은 건물이 필요한 건 사용자가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건물은 건립에 공공자금이 투입되고 대개 불특정 시민이 사용자다. 그래서 좋은 건물은 더 절실해진다. 거기 이르는 정공법을 짚어보자. 남산 국회의사당 사업의 역순이다. 기획·설계·시공.
먼저 그 건물이 필요한지, 건물 얹기에 이 땅이 적당한지 판단해야 한다. 공공건물 건립의 일반적 비극은 지자체장·기관장이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남산 국회의사당도 당시 대통령의 뜻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항상 전문성이다. 지금은 대규모 공공사업이면 예비타당성 검토의 검증 절차를 거친다. 이 절차는 모든 걸 돈으로만 계량한다는 게 문제다. 하여간 아무리 작은 사업이라도 건물과 땅의 합리성을 보는 건축 전문가의 자문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종 결정은 물론 정치행위고 그런 결정을 위해 지자체장을 뽑은 것이다.
대개 다음은 설계발주로 들어간다. 그런데 여기서 빼놓으면 사업을 그르치는 과정이 기획이다. 기획의 첫 단계는 그 건물이 무엇인지, 그 건물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의 규명이다. 법인설립 작업이라면 정관 맨 앞의 설립 목적을 쓰는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도 그 첫 조문에 대한민국이 무엇인지 규정해 놓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세종대왕도 훈민정음 첫 머리에 이 새로운 글자의 존재 가치를 풀어 놓았다. 백성들이 쉽게 쓸 수 있는 글자. 명쾌하게 서술된 이런 문장이 없으면 이후 작업은 모두 좌충우돌의 험로로 들어선다. 사업 지연과 예산 낭비 후에 엉뚱한 건물이 등장한다.
존재 가치를 규명하는 첫 문장을 만들려면 인문학 공부가 필요하다. 국회의사당이 무엇이고, 학교가 무엇이고 도서관이 무엇인가. 이에 대답하고 문장으로 서술하려면 역사에 대한 성찰과 사회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건축은 인문학으로 출발해서 공학으로 완성되며 예술작품으로 남기를 열망하는 작업이다.
다음 단계는 조건서술이다. 헌법이라면 권력 주체라는 국민을 규정하는 단계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 서술이다. 훈민정음 제정에서는 제자 원리의 규정이었다. 백성들이 더 쉽게 쓰려면 소리글자여야 하고 혀·입·이·목구멍의 모양을 따른다는 것. 건설사업이면 문장으로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다. 당연히 아직 형태는 없다. 이 작업을 거치면 필요한 공간의 크기와 성격이 드러난다. 여기까지가 기획이다.
사업의 방향과 성패가 결국 이 기획에 의해 규명된다. 사실 대지는 이 뒤에 골라도 된다. 그런데 이 과정을 건너뛰는 사업이 숱하다. 출발 이후 목적지를 찾는 것이다. 많은 공공건물이 건립 과정의 갈등을 겪는다. 특히 기피시설의 경우 갈등이 극심하다. 찬성쪽은 최선을, 반대쪽은 최악을 머리 속에 그리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그림으로 논의하면 오해와 갈등이 커진다. 이를 줄이려면 기획에 근거해 개략적 건물 그림을 그려 공유하는 게 효과적이다. 실제로 지을 모양은 아니다. 이것을 기획설계라고 부른다. 이렇게 기획방향을 공유하면 대화가 가능하고 그 방향이 옳다는 확신도 얻을 수 있다.
좋은 기획은 이후 개입충돌하는 수많은 이해관계에서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이 된다. 갈등의제의 경중판단이 가능하므로 사업진행은 오히려 유연해지고 예측 가능해진다. 훈민정음 설계에서도 글자 모양의 다양한 대안이 있었을 것이다. 그 평가와 판단은 모두 첫 문장에 근거했을 것이다. 과연 어떤 것이 백성들이 더 쉽게 쓸 수 있는 모양인가. ㄱ·ㄴ·ㄷ이 모습을 드러나는 순간이다. 건축에서도 기획 이후에 좋은 건축가를 선발해 실제 건물에 쓸 설계발주에 들어가면 된다. 다음이 시공이다. 물론 후속 과정들도 쉽지는 않다. 그러나 좋은 기획은 좋은 건물을 얻는 전제조건이고 정공법의 출발점이다.
아, 국회의사당은 결국 어찌 되었을까.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사업은 백지화되었다. 입법부가 남산 중턱에서 행정부를 내려다보는 게 불쾌해서였다고 당시 신문기사는 보도했다. 대체부지로 사직공원, 종묘를 배회하던 국회의사당은 1975년에야 여의도에 준공되었다. 대한민국 최고 흉물 건축으로 여전히 수위를 다투는 존재다. 이유는 민주주의가 뭐냐는 존재가치의 질문 없이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럼 남산부지는? 파놓은 땅은 백범광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사업명은 이렇다, 원형복원.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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