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 등치는 건설노조
무주택자 등치는 건설노조
최근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노조 간 다툼은 조폭 영화를 방불케 한다. 지난 6일 광주 중흥동 건설 현장에서는 민노총과 연합노련 조합원들이 집회 중 시비가 붙었다. 애초 민노총 40명과 연합노련 30명의 갈등이었지만, 지원 요청을 받은 민노총 조합원 400여 명이 어디선가 달려오면서 수백 명 규모 싸움이 됐다. 경찰 180여 명이 겨우 뜯어말렸다.
대구에서는 노조 전쟁에 쇠파이프, 망치가 등장했다. 타워크레인을 점거하고 "일감을 나눠 달라"고 농성하는 한노총 노조원을 끌어내기 위해 민노총 노조원 네 명이 망치, 쇠파이프를 들고 타워크레인 운전석으로 진입했다. 망치로 유리창을 깨고, 운전석에 붙은 에어컨을 뜯어낸 후 민노총 노조원들이 달려들어 한노총 노조원을 끄집어냈다.
'조직 분화(分化) 과정'과 '조직 내 정치'도 조폭을 연상시킨다. 현재 지방에 300인 이하 군소 노조는 21개로 추정된다. 이들 대부분 민노총이나 한노총에서 간부를 지내던 인물이 실각하고 좌천된 뒤, 떨어져 나와 별도의 소규모 노조를 꾸린 것이다. 일부는 건설 현장을 돌며 건설 업체에 금품을 요구하거나, 여행 비자를 가지고 들어온 외국인에게 건설 현장 취업을 알선하다가 경찰에 입건되기도 한다.
그 배후에 노조에만 한없이 인자하고 관대한 정부가 있다. 현장에서 노조를 직접 상대하는 것은 대형 건설사가 아닌 영세 하도급사들이다. 한 하도급사 관계자는 "이 정부 들어 민노총이 '더 거칠게 나가자'고 방침을 바꿨다고 들었다. 한번은 민노총 간부가 '우리 방침 바뀌었는데, 너네가 처음으로 당해 볼래?' 하고 협박하더라. '정부가 우린 못 건드린다'는 자신감이 있으니 그러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공사판에서 자기네끼리 무슨 짓을 하건 보통 사람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건설 현장 분쟁은 공기(工期) 지연을 낳고, 공기 지연은 사업비 증가로 이어진다. 업계에 따르면, 2000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 기준으로 공사가 하루 미뤄질 때마다 건설사는 일(日) 단위로 정산하는 기계 임차비와 금융 비용 등 1억~2억원씩 손실을 입는다. 건설 현장에서 노조원은 비(非)노조원보다 일당이 10% 안팎 비싸고, 일을 못 해도 쫓겨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런 사업 차질은 이미 예상 가능한 것이어서, 건설사들은 미리 해당 손실의 대부분을 아파트 분양가에 반영한다.
높아진 분양가를 치르는 건 청약에서 당첨되는 일반 시민들인데 주로 무(無)주택자다. 현 정부가 출범 후 여러 차례 청약 제도를 개편해 중·소형 새 아파트는 사실상 전부를 무주택자가 가져가도록 했기 때문이다. 건설노조 전쟁이란 결국 '무주택자 돈으로 벌이는 잔치'라는 얘기다.
원우식 사회부 기자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25/20200425000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