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알도 로시 (Aldo Rossi)"
모더니즘 이론을 전복시킨 알도 로시 (Aldo Rossi)
[효효 아키텍트-33] 알도 로시(Aldo Rossi, 1931~1997)는 1970년대 후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이론가이며 건축가이다. 주세페 테라니(Giuseppe Terragni, 1904~1943)를 출발로 하는 이탈리아 합리주의(italian rationalism)를 이어받았다는 평가이다. 장식이 없으며 공간 구성도 미니멀리즘이 기본이다. 도시의 역사성과 콘텍스트를 존중하는 유형(typology)의 건축을 따른다. 장시간에 걸쳐 도시가 구성한 역사적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도 건축의 일부임을 주장한다. 모더니즘과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지향점이다. 이런 개념을 그는 불과 35세에 출간한 역저 '도시의 건축'(the architecture of the city, 1966)에서 역설한다.
1930년대 초 주세페 테라니는 육면체 박스 스타일의 모더니즘 건물을 설계한다. 그게 이탈리아 북부 코모(como) 호수 지역에 지어진 카사 델 파시오(casa del fascio)다. 수학적인 모듈에 따라 제한되고 통제된 육면체의 볼륨 안에서 감정을 거의 배제했다. 이탈리아 전통 팔라쪼(palazzo, 궁정) 스타일의 중정을 둘러쌓는 'ㅁ'자 형태의 공간만을 중첩시켰다.
'유형의 건축'은 기억 속에 잠재하는 이미지를 기하학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반복되는 사각형의 창, 규칙적으로 늘어선 기둥은 거리의 모습을 상징하고 ㄷ자나 ㅁ자형의 배치는 전통적인 유럽의 광장을 반영한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형태로 추상적이면서도 어디에선가 본 듯하고 아주 익숙한 느낌이 든다.
"인간의 정신에서 기억을 제거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듯, 도시의 역사는 도시의 영혼이자 거주자의 집단 기억을 고스란히 담은 로쿠스(locus·궤적)이다."
모데나의 산 카달도 공동묘지(the cemetery at San Cataldo, Modena. 1971) /사진=wikimedia
알도 로시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은 모데나의 산 카달도 공동묘지(the cemetery at San Cataldo, Modena)이다. 자신의 저서인 '과학적 자서전'(A Scientific Autobiography)에서 로시는 1971년 일어났던 자동차 사고가 산 카달도 묘지 프로젝트에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병원에서 회복하는 동안 삶의 거대한 야영지로서의 도시, 사자의 도시로서의 묘지에 대해 생각했다.
기존의 전형적인 고전적 묘지를 하나의 작은 도시로 이해한 디자인은 공모에 당선되었고 단계적으로 건설되었다. 세 면이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큰 뜰과 같은 형태로 설계되었다. 가운데는 기하학적 형태의 납골당이 자리하고 주변은 푸른 지붕의 기둥이 늘어서 있다. 프로젝트의 많은 부분이 미완성으로 남겨져 있다.
도시적 구성을 갖춘 묘지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거론되었다. 명동성당 성역화 사업 과정에서 주차장 및 경사진 언덕 용지의 용도를 납골당으로 하자는 주장이다. '비싼 땅값 대비 용도론'에 부딪혀 상업적 용도로 바뀌었다.
로시는 1959년 밀라노 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1955년부터 1964년 건축 잡지인 카사벨라(Casabella)의 편집자를 지냈다. 위대한 건축 작품을 남긴 이들은 뛰어난 이론가였다. 건축은 이론과 실천, 이론가와 건축가 사이에 불가분의 관계가 요구된다. 로시의 저서 '도시의 건축'을 통해 전개된 이론은 기존의 교의들을 여지없이 전복시킨 혁명적이며 현대건축 이론의 중요한 근거가 됐다는 평가이다.
그가 사용한 '도시형성물'이란 용어는 건물뿐 아니라 도로와 광장, 특정한 도시구역 등을 포괄한다. 건축이란 도시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이며, 건축의 모습은 도시적 조건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한다. 역사적 사례에 근거한 그의 이론은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는 '건물 완결주의'와 '새로움 콤플렉스'에 중독됐던 모더니즘의 허위를 정면으로 거부하였으며, 모더니즘의 핵심적 근거인 기능주의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다. 프랑스의 아를에는 로마시대의 (원형) 극장 용도로 지어진 구조물이 중세에는 원형 집합 주택의 벽체로 사용되었고 현대에는 역사적 관광지로 이용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기능우선론의 모순을 드러낸다.
형태는 무엇이 결정하는가? 형태 이전에 존재하고 형태를 성립시키는 논리적 원칙을 로시는 '유형'(type)이라고 본다. 신전과 교회와 불당은 모두 다른 종교 건물이지만 '중심형 공간'이라는 유형이 된다. 유형이란 불변하는 건축의 본질이며 문화적 요소이고 역사적 축적물이다. 로시는 도시와 건축, 전체와 요소, 인문학과 기술, 개별성과 집단 등 대척적인 것들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하려는 강력한 도구로 '유형'을 등장시키고 있다.
로시는 1979년 건축비엔날레 행사를 위한 극장(Teatro del Mondo) 설계를 의뢰받고는 단서를 달았다. 행사가 끝나면 자신의 건축물을 해체시켜야 한다는 것. 이유는 '한 도시의 풍경을 이루던 기억이 상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로시는 이 프로젝트를 '건축이 종말을 고하고 상상력이 시작되는 곳'(a place where architecture ended and the world of the imagination began)이라고 묘사했다. 로시의 '세계의 극장'은 그의 제안대로 '자살하는 건축'이라는 별칭만 남기고 해체됐다.
일본 후쿠오카 거주지역 내 '일 팔라조' 호텔(Il Palazzo, 1989)은 창문이 폐쇄된 파사드가 가장 큰 특징으로는 매우 특이하게도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없다. 이 건축물은 붉은빛의 8개의 원형 기둥과 녹색 빛의 가로 기둥이 조화되어 현대 건축이지만 일본의 전통적 건축양식과 유사한 느낌을 자아낸다. 로시는 1990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여성 건축 비평가인 아다 루이스 헉스터불(Ada Louise Huxtable, 1921~2013)은 로시를 '건축가가 된 시인'으로 불렀다.
보네판테 미술관(Bonnefanten Museum) /사진=wikimedia
네덜란드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 마스트리흐트(Maastricht) 소재 보네판테 미술관(Bonnefanten Museum, 1995)은 로켓 모양의 독특한 외관 때문에 도시를 상징하는 명소가 되었다. 미술관은 E자 모양의 평면도에 따라 마스 강가로 열린 공간이 펼쳐진다. 위에는 아연으로 만들어진 돔을 씌웠으며, 돔 옆에는 두 개의 강철 원형 계단이 있고, 테라스가 돔의 전체 원을 두르고 있다. 반대편 입구는 두 개의 탑 사이에 끼워져 있는 형태로, 이중 높이의 유리문으로 만들어졌다. 네덜란드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한 공장 홀도 미술관의 일부로 합쳐졌다.
[프리랜서 효효]
알도 로시 (Aldo Ro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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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박영우 건축가 블로그, 가온건축 블로그, 도시의 건축 알도 로시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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