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분쟁] 계약추정제도 ㅣ 건설산업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백신’
[분쟁해법] 계약추정제도
박영만 변호사
하도급법에서는 서면교부를 의무화하고 있는 외에 비록 서면교부가 없더라도 하도급업체를 보호해 주는 제도적 장치를 또 하나 마련해 뒀다.
구체적으로 하도급법 제3조 제6항 및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의 3에서는 서면이 없는 경우에도 서면교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제도를 규정해 놨다.
이처럼 계약서가 없는 경우(구두계약)에도 일정한 절차와 요건을 갖추면 하도급 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추정하는 제도가 2010년 7월26일부터 시행돼 오고 있어 서면에 취약한 하도급업체 보호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계약의 추정’이란 구두로 작업을 지시받은 수급사업자가 구두계약의 내용 등을 원사업자에게 서면으로 통지해 확인요청이 가능하고, 만일 원사업자가 요청일부터 15일 이내에 이를 인정하거나 부인하는 회신을 하지 않는 경우, 당초 통지한 내용대로 계약이 서면상 성립한 것으로 추정하는 제도다.
반드시 거부감이 있을 수 있는 내용증명이나 배달증명이 되는 서면에 의할 것은 아니고, 객관적으로 진정성이 충분히 추정될 수 있는 ‘이메일’(수발신처가 명확히 명시)을 통해 근거를 남겨 놓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가급적 당사자의 서명 또는 기명날인한 서면의 방식(내용증명이나 우편)으로 이루어지면 좋다. 여의치 않으면 그 밖에 내용 및 수신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면 충분하다.
따라서 계약내역 외 혹은 도면 외에 추가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추후 정산청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메일’ 등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그 근거를 남겨 둘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한 직접적인 판례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서면교부의무와 관련해서는 추가작업이 있는 경우에 원사업자는 늦어도 추가공사 착수 전까지 추가공사에 대한 하도급대금 등이 기재된 서면을 교부해야 한다는 입장은 명확히 하고 있다.(대법원 대법원 2005. 3. 11. 선고 2004두1278 판결) /법무법인 법여울 대표
[박영만 변호사] young1man1@hotmail.com
대한전문건설신문
[논단] 건설산업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백신’
김태황 교수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에 따르면, 미국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7일까지 독감(인플루엔자) 환자는 3600만~5100만명에 이르고, 입원환자는 37만~67만명, 사망자 수는 2만2000~5만5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사망률은 0.04~0.15%가 된다. 고려대학교 의대 예방의학 연구팀의 2019년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2009∼2016년 사이 매년 약 5313명이 독감 인플루엔자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률이 미국과 마찬가지로 0.04~0.1%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의 사망률(확진자 대비 사망자 수)은 3월 중순 현재 미국은 약 2.4%, 우리나라는 약 0.9%이다.
코로나19가 글로벌 경제와 사회를 마비시키고 있다. 사망자 수로만 보면 아직까지는 독감의 위력에 전혀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런데 사망률로 보면 코로나19가 가히 10배 이상 위협적이다. 이탈리아와 이란의 경우는 사망률이 각각 6.8%와 5.2% 수준으로 나타났다. 치명도가 매우 높다.
미세한 바이러스가 심신을 무기력하게 위축시키고 사회를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감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위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독감 인플루엔자보다 빠른 확산 속도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천적이 없다는 점이다. 중국 우한에서 창궐한 지 약 한 달 만에 유럽으로 진원지를 옮길 정도이다. 2009년 신종플루가 퍼졌을 때에는 타미플루라는 치료제가 이미 13년 전에 개발돼 있었지만 전 세계에 1만8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코로나19에는 아직 치료제는 물론 항체를 형성할 백신도 없다.
코로나19의 확산과 대응책을 주시하면서 우리 건설산업의 아킬레스건이 연상된다. 건설산업의 비리 관행이다. 부실시공, 담합, 안전사고, 부당한 설계변경, 불법 중층하도급 등 건설산업에 침투한 바이러스가 발주자(소비자)와 국민을 감염시켜서 건설산업을 불신하고 불공정하게 여기도록 마비시키고 있다. 코로나19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하면서 막연한 공포감을 증폭시키듯이 건설산업은 믿을 수가 없는 부실덩어리라는 막연한 불신 선입관이 각인돼 왔다. 2월19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3년4개월 동안의 국민신문고 민원 빅데이터를 분석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주요 키워드 1위가 아파트 부실시공과 관련된 민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시설물 하자 관련 민원이 모두 부실시공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다. 하자 보수는 법적 의무사항이다.
건설산업의 비리와 부실 바이러스는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산업의 가치에 대한 치명도도 매우 높다. 융·복합적인 첨단 기술의 혁신적인 시설물이 세상을 바꾸고 있지만 건설업의 직업 매력도는 최하위인 점이 이를 방증한다. 코로나19 대응책의 목표는 바이러스의 완전한 퇴치가 아니라 확산 속도를 현저히 늦추고 백신이나 치료제를 통해 일상적인 의료행위로 통제할 수 있는 여건을 회복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건설산업에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백신’ 개발이 절실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불편하기도 하고 자칫 대인관계를 소원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기까지는 가장 효과적인 예방책이다. 건설산업의 부당한 유착관계를 교정하기까지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어느 사업에서 발주자가 책임을 회피하거나, 시공자와 감리자가 부당한 이익을 공유하거나, 입찰 참가 업체들끼리 담합 이익을 상호교류하거나, 현장에서 공사 관리자와 자재 공급 협력업체가 부당하게 유착하거나, 기계 자재 운송업자와 정치적 노조가 부당한 집단 이기주의로 행동하거나, 시공 참여자들이 부실시공을 조장하는 바이러스가 확진된다면 건설업계에 확산되지 않도록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 무시나 존재의 기피는 아니다. 건설산업에 참여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분업 역할은 더욱 협력적이고 유기적이 돼야 한다. 하지만 건설산업에 대한 신뢰도를 회복하고 설득력을 발휘하기까지는 자율적인 거리두기가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시간을 벌 동안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 건설산업의 ‘백신’은 최저가낙찰제 폐지도 아니고, SOC 물량 증대도 아니고, 기술개발도 아니고 업계가 스스로 회복해야 하는 ‘신뢰’이다. 이를테면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과 “그럴 리가 없는데, 어쩌다가”라는 반응은 인식의 기반이 사뭇 다르다. 전자는 불신의 연장이지만 후자는 신뢰에 근거한 반응이다. ‘백신’은 지속가능한 항체를 형성하는 예방책이다. 건설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발주자와 업체와 근로자 모두 잔꾀부리지 말고 ‘신뢰의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김태황 교수] ecothk@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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