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건축과 철거 소송
[한은화의 생활건축] ‘짝퉁’ 건축과 철거 소송
지금 한국 건축계는 표절 논란으로 시끄럽다. 십수 년 만의 공방 끝에 한 사건이 마무리됐고, 또 다른 사건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 지난달 18일 경북 경주시 경주세계문공화엑스포공원 안에 있는 경주타워에서는 14년 만에 현판식이 열렸다. 타워는 2007년 완공과 동시에 저작권 시비가 붙었다. 설계 공모의 당선작이 아닌, 낙선작(2등 우수상)을 베껴 지었기 때문이다. 재일동포 2세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유동룡)의 계획안이었다.
계획안은 높이 82m의 직육면체 유리에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으로 파낸 것이었고, 실제 세워진 타워의 생김새는 이와 비슷하다. 표현 방식으로 치면 똑같다. 건축가는 “후배들을 위해서 싸우고, 끝까지 이겨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증거불충분으로 1심에서 패소했지만, 항소심서 이겼다. 건축주인 문화엑스포 재단법인 측이 회의 석상에서 우수상 아이디어를 베끼라고 지시한 회의록이 들통나면서다.
패소한 문화엑스포 측은 타워 한 귀퉁이 바닥에 ‘원저작자 유동룡’을 새긴 표지석을 설치했다. 이마저도 방치돼 지난해 9월 유가족은 재설치 요구 소송을 냈고, 결국 엑스포 측은 유가족의 요청대로 제대로 된 안내판을 타워 앞에 설치했다. 건축물의 저작권을 인정하고 제대로 알리기까지 강산도 변하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모전 응모작의 아이디어를 슬쩍 도용하는 일은 지금도 여전하다.
부산 기장의 카페 웨이브온(왼쪽)과 울산의 카페. [사진 이뎀건축사사무소]
# 곽희수 건축가(이뎀건축사사무소 대표)는 현재 저작권 소송 중이다. 그는 “노력하지 않고 남의 것을 쉽게 도용하는 풍토를 뿌리 뽑기 위해 이를 판례로 남기겠다”며 다짐하고 있다. 곽 대표가 디자인해 2016년 부산 기장군 바닷가에 완공한 카페 ‘웨이브온’과 똑닮은 카페가 지난해 울산 동해안로에 들어섰다. SNS상에 ‘울산 웨이브온’ ‘짝퉁 웨이브온’이라 불린다. 외관도, 내부 인테리어도 판박이다. 건축물의 기능에 따른 유사성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건물이 자리 잡은 좌향(坐向)부터 표현 기법이 똑같다. 곽 대표는 “문장이나 문체를 따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책을 통째로 베껴 판매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손해배상과 더불어 건축물 저작권 관련 소송 중에 최초로 철거 청구를 했다. 불법 복제물을 폐기하듯, 건축물도 폐기 즉 철거하라는 요구다. 승소하면 건축 저작권 관련 센터를 건립하는데 배상금을 쓰겠다는 목표다.
건축은 창작물이다. 저작권법에 따라 인간이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인정받는다. 건축물, 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서 그 밖의 건축저작물이 대상이다. 매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왜 우리나라에는 수상자가 없는지 묻는다. 심지어 국토교통부에서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를 추진할 정도다. 기본부터 살펴야 한다. 짝퉁 건축에 관대한 풍토에서 좋은 건축이 뿌리내릴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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