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가 벙커였다고?


[한은화의 생활건축] 반지하가 벙커였다고?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반지하(banjiha)가 최근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계기가 됐다. 영화에서 반지하는 기택(송강호)의 집이자, 가난한 자들의 냄새가 밴 공간으로 나온다.

 

영화의 수상 소식과 더불어 영국 BBC, 일본 아사히신문 등 유수 언론들이 반지하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남북 갈등의 역사’ ‘공간의 기원이 벙커였다’는 것이다. 1970년께 한국 정부는 비상시 지하를 벙커로 쓰기 위해 건축법을 개정했고, 이에 따라 주택에 지하실 설치가 의무화됐다는 거다.

 

반지하의 기원으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벙커를 계기로 지하실 설치가 본격화된 것은 맞다. 70년께 법 개정을 통해 인구 10만 이상 도시에서 200㎡ 이상 규모의 집을 지을 때 지하실을 설치토록 했다. 단 주거 용도는 아니었다. 봉 감독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아파트 지하실 같은, 그야말로 지하 공간이었다.



 

사람 사는 반지하는 80년대 본격 등장한다. 당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경제는 연 10%대로 성장하고, 대도시로 사람이 몰렸다. 전두환 정부는 80년께 주택 500만호 공급 계획을 짰지만 벅찼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임유경 건축연구단장에 따르면 이듬해인 81년 정부는 지하실을 사는 곳으로 양성화한다. 창고가 아니라 집으로 써도 연면적에 포함 안 되게끔 규제를 완화한다.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건축비 부담을 덜 임대 공간이 추가된 셈이다.


‘기생충’ 속 기택(송강호)네 반지하집에서 딸 기정(박소담)의 방 세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정부는 84년 이 지하 삶터에 볕이 조금이라도 더 들 수 있도록 층고의 2분의 1, 즉 반만 묻혀 있어도 지하로 인정하도록 법을 또 완화한다. 진짜 반지하의 탄생이다. 영화에서처럼 반지하 사는 기택이 방 안에 서서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됐다. 즉 반지하는 남북 갈등 탓이 아니라, “대도시 인구 밀집과 주택난, 그리고 민간건설업체의 주택 공급 전략이 맞물려 나온 것”(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

 

반지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80년대 후반이다. 다세대·다가구 건물이 합법화되면서다. 그 전까지 아파트나 연립주택(건축면적 660㎡ 초과), 단독주택밖에 못 지었다. 소규모 민간 주택 시장에 새로운 장이 열렸고, 반지하를 둔 3~4층짜리 건물들이 마구 지어졌다.



 

지금은 다세대·다가구 건물에 반지하를 안 만든다. 더 정확히 만들기 어려워졌다. 주차장법 때문이다. 주차면적을 확보해야 하는데, 땅은 부족했다. 2000년께 정부는 건축법을 개정해 1층에 주차장을 두면 연면적에서 빼주고 한 층을 더 올려 지을 수 있게 했다. 그래서 1층에 주차장을 둔 ‘필로티 건물’이 요즘 대세다.

 

한국 주택의 역사는 건축 관련 법 개정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또 주택의 유형을 보면 시대를 알 수 있다. 반지하가 있는 다세대·다가구 건물의 건축 연도는 1980~90년대쯤으로 보면 된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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