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이라서 전기차 샀는데....탈원전으로 충전료 4배 인상 충격


탈원전에 충전료 4배 인상… 전기차가 뒤집어졌다


[적자 한전, 전기차 할인혜택 7월부터 단계적으로 폐지]


현재 ㎾당 64원인 충전요금… 올 7월 150원, 2년 뒤엔 300원

친환경차 매력 대폭 사라져… 소비자도 충전업자도 분노

"정부가 친환경차 등에 칼 꽂아"


    지난해 현대차 전기차인 코나EV를 구매한 직장인 이모(47)씨는 오는 7월부터 전기차 충전료가 올해 2배 오를 것이란 소식을 듣고 분노하고 있다. 이씨는 "코나 가솔린차보다 1000만원이 더 비싸고 충전도 불편한 전기차를 산 건 친환경이란 자부심과 저렴한 충전 요금 때문이었다"며 "연간 1만~1만5000㎞씩 7~10년을 타면 1000만원이 상쇄될 것으로 봤는데, 충전료를 2배 올린다고 하면 20년을 타라는 말이냐"고 했다. 그는 "정부가 친환경차 타는 사람들 등에 칼을 꽂았다"며 "앞으로 누가 전기차를 사겠느냐"고도 했다.



현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결국 전기차 충전료 인상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전기차가 성공하려면 '값싼 전기료'가 필수지만, 탈원전으로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는 한국전력이 전기차 충전 요금 할인을 해줄 여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한전은 지난해 12월 전기차 충전기에 적용했던 기본요금 면제 혜택과 사용 요금 할인을 올 하반기부터 단계적으로 없애기로 했다. 이에 충전기를 운영하는 민간사업자들은 "현재도 적자인데, 망하지 않으려면 가격을 2~3배 올릴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전기차 구매가 줄고, 적자가 계속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전기차 역주행

작년 12월 30일, 한전은 이사회를 열고 2017~2019년 3년간 면제해 온 전기차 충전기 '기본요금'(7㎾급 완속충전기 1기당 2만534원)을 올해 7월부터 50% 부과하기로 했다. 2021년 7월부턴 75%, 2022년 7월부턴 100% 부과한다. 여기에 충전한 만큼 내는 사용 요금도 기존 50% 할인 혜택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 한전 관계자는 "그동안 적용됐던 특례 할인이 일몰(日沒)되는 것이지, 추가 인상하는 게 아니다"라며 "탈원전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본요금을 부과해도, 전기 충전 요금이 휘발유 값보다는 싸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 소비자와 민간 충전사업자에게는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당장 충전기 업체는 올해 7월부터 완속충전기 1기당 1만267원을 내야 한다. 충전기 업체 A사 대표는 "현재 8640기를 운영 중인데, 1만원만 내도 월 9000만원이고, 1년이면 10억원이 넘는다"며 "현재 영업이익이 8억원인데 이대로라면 무조건 적자"라고 말했다. 그는 "사용 요금까지 오르기 때문에 현재 ㎾당 64원인 충전료를 올 하반기에는 140~150원으로 올릴 수밖에 없다"며 "내년에는 240~ 250원까지 올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사용자들 입장에서 보면, 올 하반기부터 충전료 부담이 현재의 2배 이상이 되고, 내년엔 거의 4배로 껑충 뛴다는 것이다. A사 대표는 "전기차 고객들은 1000원 단위 요금에도 엄청 예민한데, 충격을 받아 전기차를 더 이상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업계는 전기차 딜레마

정부는 그동안 '전기차 시대를 열겠다'며 보조금을 지급하고, 충전기를 늘려왔다. 하지만 전기차 성장세는 급격히 꺾이고 있다. 완충하는 데 10시간까지 걸리는(완속 기준) 충전의 불편함이 실구매자들 사이에 공유되고, 보조금도 갈수록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전의 기본요금 부과는 전기차 시장을 더 위축시킬 수 있다. 내연기관차보다 비싸고 불편한 차를 굳이 살 유인이 없어지는 것이다.



실제 전기차 시장은 2018년 3만1696대로 전년의 2.3배로 커졌지만, 지난해(3만5063대)엔 10% 성장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지난해 6만대(수소차 포함)보급 목표로 보조금을 책정했지만, 다 채우지 못했다. 올해는 9만4000대를 목표로 세웠지만 턱도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기차 구매 시 중앙정부 보조금은 2018년 1200만원, 2019년 900만원에서 올해는 820만원까지 줄어들었다. 현재 적자를 감수하고 전기차를 제조하고 있는 자동차 업계도 딜레마에 빠졌다. 완성차 업체들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환경 규제 강화로 불가피하게 전기차 판매를 늘려야 하고, 전기차 신차 개발에도 거액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지원 축소로 전기차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플랫폼을 개발해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더라도 차 가격을 낮추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 보조금과 충전 요금 할인이 유지되지 않으면 시장이 커질 수 없다"고 말했다. 김필수 한국전기차협회장(대림대 교수)은 "전기차가 일정 수준 보급될 때까지는 기본요금 면제가 지속돼야 한다"며 "정부가 탈원전으로 인한 적자를 만회하려고 전기차 시장을 죽이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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