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들이 분석한 기생충의 공간



대저택의 소파는 TV 대신 창밖을 향해 있다

[건축가들이 분석한 봉준호의 공간]

"권력자의 공간은 자연과 가깝고 非권력자는 미디어 의존 높아"
계층 차이를 공간으로 표현

전작에서도 한강·아파트 등 친숙한 풍경을 낯설게 만들어



     봉준호는 공간으로 이야기한다. 그의 영화에서 메시지는 공간이라는 형태로 구현되고, 치밀하게 설계된 공간 안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영화감독 봉준호가 빚어낸 공간의 미학을 건축 전문가들이 분석했다.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건축가들은 공간을 다루는 봉준호의 솜씨를 일찍부터 알아챘다. 건축가 황두진은 '괴물'(2006) 개봉 당시 영화 잡지 씨네21 기고에서 "봉준호의 영화적 고향은 '지금의 여기'"라고 분석했다. 봉준호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실경(實景)을 창작의 바탕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그 풍경은 낯익으면서도 낯설다. 예컨대 괴물의 한강. 황두진은 카메라가 비추는 배수로, 환기구를 언급하며 "괴물의 서식지는 한강은 한강이되 우리가 잘 모르는 한강, 즉 거칠고 기계화된 한강"이라고 했다. "이런 간극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스스로 웃는 독특한 심리적 거리를 부여받는다."

'기생충'의 박 사장 부부가 거실 소파에서 잠든 장면. 소파가 TV 대신 정원을 향해 놓여 있고 그 앞엔 초대형 테이블이 있다(큰 사진). 작은 사진은 가난한 기택네 동네와 외부를 수직적으로 연결하는 계단. /CJ엔터테인먼트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인 아파트가 배경이다. 아파트 역시 그냥 아파트가 아니라 강아지 연쇄 실종에서 비롯해 코미디와 스릴러를 넘나드는 사건의 무대가 된다. 건축가 임형남은 "봉준호 영화를 보면 평범한 공간을 다르게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면서 "익숙함 속에 숨은 일상의 긴장이나 충격을 공간으로 표현하는 게 봉준호의 어휘"라고 말했다. 봉준호는 아파트에서 가장 외진 지하실까지 치밀하게 활용한다. 윤주(이성재)가 이웃집 개를 유기하고 변 경비(변희봉)가 몰래 보신탕을 끓여 먹는 지하실은 지상에서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는 욕망이 숨은 곳. 이후 지하실은 '살인의 추억'(2003)의 취조실, '기생충'(2019)의 비밀 벙커와 같은 형태로 봉준호 영화에 계속 등장한다. 숭실대 건축과 최원준 교수는 "일상적 상황의 이면을 조명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공간이 곧 메시지

봉준호가 최근 주목한 주제는 계급투쟁이다. '설국열차'(2013)에서 열차 앞칸과 꼬리칸이라는 수평적 단절로 계급의 차이를 보여줬다면 '기생충'에서는 반지하부터 축대 위 담장 높은 저택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공간으로 이를 형상화했다. "X축에서 Y축으로의 진화"(홍익대 건축과 유현준 교수)다. 박 사장(이선균) 집은 대문을 통과한 뒤에 또 계단을 올라야 마당이 나오는 반면, 기택(송강호)이 아들딸을 데리고 이 집을 탈출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계단을 끝없이 내려가는 하강의 연속이다. 이 수직축 선상에서 서로 다른 좌표를 점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공동 지대가 없다. 건축적으로 '기생충'은 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섞일 때, 즉 서로 냄새가 전해지는 지근거리 안에 들어올 때 일어나는 일을 다룬 영화다.

기생충 박사장 저택 촬영장 실제 모습/클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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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택네와 박 사장네의 계층적 차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밀한 공간적 설정이 동원된다. 유 교수는 "권력이 많은 자의 공간일수록 자연과 가깝고 반대로 권력이 적으면 미디어 의존도가 높아진다"면서 "기택네 식구는 와이파이 터지는 곳을 찾아 헤매지만 박 사장 집에선 TV 보는 장면조차 없다"고 했다. 박 사장 집 거실 소파가 TV 대신 정원을 향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장에서 공간을 다루는 건축가들만 알아보는 장치들도 있다. 건축가 이정훈은 "기택네 가족 네 명이 박 사장 집 테이블 밑에 숨는 장면이 있는데 그만한 테이블은 보통 집엔 놓을 수가 없다"면서 "스케일과 사이즈부터 다른 것"이라고 했다. 거실 벽의 통유리는 또 어떤가. 중간에 가로지른 프레임(창살)이 없는 그 정도 크기 유리는 기성품이 아니며 상당히 고가일 것이라고 했다.
채민기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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