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여파] 위정자 잘못 만난 불행한 신한울 3·4호기의 운명
탈원전의 첫 희생양, 신한울 3·4호기의 운명
새해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재개될지 주목된다. 신한울 3·4호기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정책인 탈원전 정책(에너지전환 정책)의 첫 희생양으로 꼽힌다. 원전으로 발전허가를 받고도 건설이 중단돼 논란에 휩싸여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4월에 총선이 있는 데다 그간 원전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온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 등의 변수로 인해 신한울 3·4호기 원전 건설이 공론화 과정 등을 통해 재개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3월 6일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건설중지된 경북 울진 신한울 원전 3·4호기 예정지. 신한울 원전 1·2호기는 2021년 무렵 준공 예정으로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신한울 원자력발전소는 경북 울진군 덕천리·고목리 일대에 건설 중인 발전용량 2800MW(1·2호기 기준)의 신형 경수로원자력발전소(APR1400)다. 2010년 착공한 신한울 1·2호기는 2021년 무렵 준공을 앞두고 있다. 2019년 6월 기준 공정률이 98%를 넘어섰다. 본래 1호기는 2019년 11월, 2호기는 2020년 9월 준공될 예정이었지만 공사가 여러 번 지연되면서 준공이 늦어졌다.
준공이 늦어졌지만 어쨌든 건설 완료를 앞두고 있는 신한울 1·2호기와 달리 신한울 3·4호기는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아예 건설이 중단됐다. 2017년 2월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전기사업법에 따른 발전사업허가를 받았는데, 산업통상자원부가 국무회의 의결 뒤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한울 3·4호기를 제외하면서 건설이 백지화된 것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산업부가 세우는 행정계획으로 15년치 계획을 2년에 한 번씩 세운다. 이 때문에 “법에 따라 허가한 것을 정부가 행정계획으로 취소한 것이 타당하냐”는 논란이 계속돼왔다.
“최근 여당 내 분위기 바뀌었다”
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으로 월성 1호기 영구정지에 반대표를 던진 이병령 박사는 전화통화에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가능성에 희망을 거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여당 중진의원 두 분과 밥을 먹으면서 들은 얘기다. 탈원전 정책이 예전에는 표심(票心)의 향방에 유리했는데, 현재는 불리하다고 한다. 탈원전을 고집한다면 총선에 불리하다는 설명이다. 여당에서 탈원전에 대한 입장이 더 견고해진다면 반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대통령도 어찌됐든 정치인 아닌가.”
울진군범군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아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운동을 펼쳐온 장유덕 울진군의회 의장도 “최근에 산업부를 비롯해 여당 내에서 어느 정도 움직임이 있다. 원전과 관련된 울진 현안 때문에 의원들을 만나보면 여당 내에서도 반전 기류가 있다는 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 여당 내에서도 원전에 대한 다른 목소리가 나온 적이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9년 1월 “원전이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공론화에 맡겨 건설 재개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가 그간 워낙 강하게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왔기 때문에 신한울 3·4호기 원전 건설 재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만만치 않다. 특히 사용연장 허가를 받아 수명이 남아 있는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운전을 최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영구정지 결정을 내리면서 탈원전 드라이브가 오히려 가속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김성원 전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전화통화에서 “최근 박맹우 전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이 원전 관련 토론회를 주최해서 울산에 갔었는데, 당시 참석한 원자력 전공 교수님이나 한수원 관계자분들과 함께 내린 결론이 ‘이 정권은 건설 재개 안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월성1호기 폐쇄를 밀어붙이는 것을 보라. 더 이상 안 믿는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의 한 관계자도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관련해서는 (정부 움직임이) 아직까지 철벽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7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오른쪽)이 굳은 표정으로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왼쪽) 답변을 듣고 있다. photo 연합
탈원전 왜 하나… “대통령 고집”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관련해 현재 주목받는 기구는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NCCA)이다.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기후환경회의는 7개 부처 장관들을 당연직 위원으로 하는 데다 시민단체 인사들도 포함된 범정부 차원의 조직이다. 소속 공무원들은 대부분 환경부 출신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를 총괄하는 김법정 사무처장 역시 환경부 출신이다. 일각에서는 미세먼지 절감을 위해 구성된 범정부 차원의 기후환경회의에서 원전 재개 공론화 작업을 추진한다면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재개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인 2017년 여름에도 공론화 과정을 통해 원전 건설을 재개한 적이 있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 일대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공론화에 부친 것이다. 약 2개월간의 공론화와 숙의기간을 거쳐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한 시민참여단은 건설 재개 59.5%, 중단 40.5%로 건설 재개를 선택했고, 권고안에 따라 한수원은 다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할 수 있었다. 2016년 착공한 두 원전은 2023년과 2024년 각각 준공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와 달리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재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당시 신고리 5·6호기는 2016년 착공을 시작해 공론화위원회가 설치된 무렵에는 최초 콘크리트를 타설한 상황이었다. 반면 신한울 3·4호기는 발전허가를 얻었을 뿐 아직 착공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원전이 위치한 지역의 차이도 있다. 통상 원전 인근 주민들은 한수원으로부터 막대한 지역발전금, 보상금 등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이미 원전이 지어진 지역이라면 원전이 더 지어지는 것을 반기는 경우가 많다. 신고리 5·6호기는 고리원자력발전소의 일부로 울산 울주군에 있다. 울산은 매년 총선 때면 여야 간 격전이 펼쳐지는 PK에 속한다. 반면 신한울 3·4호기는 한울원자력발전소의 일부로 경북 울진에 있다. 울진은 TK로 선거 때 민심이 야당(한국당) 쪽에 쏠리는 지역이다. 김성원 전 부사장은 “울진은 지역도 TK에 속해 현 정부에 정치적으로 득이 될 게 없다”며 “정치적으로 계산을 한다면 재개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왜 이렇게 탈원전 정책에 강공 일변 드라이브를 걸고 있을까. 정권 초기에는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 관련 시민운동 단체들이 정권 출범에 지분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반핵(核) 운동’을 펼쳐온 부산·울산 등 경남 지역의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문재인 정부가 수용한 터라 정권이 중반 이후에 접어들면서 전기요금 인상 등 탈원전 정책이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부각되면 정책을 계속 밀어붙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경로로 정부와 접촉해온 원자력업계 관계자들은 다르게 설명한다. 김성원 전 부사장은 “사실 기업에 있을 때부터 VIP(대통령)에게 통할 수 있는 갖가지 경로로 작업을 많이 했다. 기업들이 오죽했겠느냐”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탈원전에 관해서는 말도 못 꺼내고, 어렵게 말을 붙여도 대답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걸 보면서 확신이 점점 들더라. 신한울 3·4호기나 신고리 5·6호기와 관련해서 악화되는 민심을 가장 피부로 느끼는 이들은 경남도지사, 창원시장 이런 현 여권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들 선거가 걸려 있기 때문에 민심 변화를 현실적으로 느끼는데, 전혀 요지부동이었다. ‘고려해 보겠다’는 그 흔한 대답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병령 원안위 위원도 “탈원전은 정부의 방침이 아니고 문 대통령 개인의 고집 같다. 밑에 무조건 따르는 비서들을 제외하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산업부나 과기부 분위기가 예전처럼 강력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원들이 ‘월성1호기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 심사 중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정세균 국무총리 임명도 변수
업계에서는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에는 상당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산업부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보낸 답변서에서 “원전은 공급 안정성, 친환경성, 경제성 측면에서 그 어느 에너지보다 설득력 있는 대안”이라며 “기후변화 협약 발효 등으로 원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후에도 주무부처 장관을 맡으면서 원전에 대해 우호적인 관점을 여러 번 내비친 적이 있다. 원전 관련 연구원의 한 전직 임원은 “정 후보자는 오랫동안 원전 관련 문제를 다뤄본 사람이고, 대단히 합리적인 사람”이라며 “기업 마인드도 있고 국회의장도 했기 때문에 대통령 말이라고 무조건 ‘예예’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재개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의 정치적 스승으로 꼽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례도 이즈음에서 복기해 볼 만하다. 이종훈 전 한국전력 사장에 따르면 1987년 민주화 무렵까지 DJ와 평민당은 원전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탈원전을 밀어붙이던 조희철 전 국회의원이 미국을 찾아 워싱턴에서 한국의 원전 기술진들을 만난 뒤 탈원전 주장을 철회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조희철 의원을 비롯한 여러 의원들의 의견을 취합한 DJ는 1989년 ‘목포선언’을 통해 원전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원전 관련 사업 수주를 하는 민간 기업들이 아직까지 한수원과 법적 공방을 할 계획이 전혀 없다는 점도 신한울 3·4호기 건설 가능성에 기대를 걸게 하는 요소다. 액수에 논란이 있지만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으로 인해 사업자들은 대략 7000억원 이상의 비용 손실을 입은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두산중공업 한 임원은 “(월성1호기 영구정지 결정 등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한수원에 소송을 거는 등의 계획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배용진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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