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 오차가 만든 ‘잘라 쓰는 욕조’


시공 오차가 만든 ‘잘라 쓰는 욕조’

[한은화의 생활건축]


   건축은 작은 것들의 집합체다. “완성되는 순간까지 작은 요소들이 모여 전체를 만들어가는 작업”(조성룡 건축가)이다. 작은 것들의 생태계를 보면 한 나라의 건축 수준을 알 수 있다. 창호·타일·벽돌 등 건축자재가 발달했는지, 자재 시공 능력은 어떤지 등이 건축 수준의 ‘바로미터’가 된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그 작은 것 중에 하나, 아파트 욕조 사이즈에도 남다른 이유가 있다. 아파트 욕실에 흔히 설치하는 직사각형 매립형 욕조의 길이는 1500~1600㎜다. 실제 물 받는 탕의 길이는 작다. 약 1300㎜다. 욕조의 머리 대는 부분(데크)이 유독 길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탕을 더 길게 하는 게 좋으련만 왜 그런 걸까.

 

시공 오차 탓이다. 욕조의 긴 데크는 잘라 쓰기 위한 용도다. 평균적으로 아파트 욕실의 폭은 세로 1500~1600㎜, 가로 2100~2400㎜다. 세로 폭에 맞춰 욕조가 벽면에 딱 붙게 시공된다. 그런데 같은 평형의 아파트라도 집마다 욕실 사이즈가 다른 게 현실이다. 콘크리트 타설 등 현장 공사 여건에 따라 최대 70㎜가량 차이가 난단다. 이 탓에 시공업체는 현장에서 일일이 욕실 사이즈를 재서 그에 따라 욕조 머리 부분을 잘라 붙여넣는다. 기성제품을 쓰면서 현장에서 맞춤 제작하는 꼴이다. 하자 대응은 더딜 수밖에 없다. 방문해서 실측한 뒤 그것에 맞게 또다시 잘라 넣어야 한다.


잘라 쓰는 욕조 대신 반신욕 욕조와 키 큰 장을 넣은 욕실. [사진 새턴바스]



 

욕조뿐 아니다. 요즘 아파트 욕실에 많이 설치하는 슬라이딩 장도 집마다 크기가 다르다. 기성제품의 가로 길이는 1200㎜다. 하지만 시공 오차로 공간 크기가 다르니 이 역시 일일이 재서 짜 넣는다. 욕실 자재 제조업체 새턴바스의 정인환 대표는 “처음 아파트 짓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욕실 시공은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고 개탄했다. 규격화부터 해야 하자 대응도 빠르고, 공간의 질도 연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더 나은 삶터를 위해 바꿔 나가야 할 작은 것들이 참 많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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