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주 원자력학회장 "탈원전으로 전문인력 이탈...원전 안전 공백 우려 심각"
민병주 원자력학회장 "탈원전하며 전문인력 홀대…인력 이탈로 원전 안전 공백 우려"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서 원전 산업은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원전 기술 유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수 인력은 계속 빠져나갈 것이고, 원전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지난 24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만난 민병주(60) 한국원자력학회장은 "한국 원자력 산업이 이렇게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부의 급진적 탈(脫)원전 정책으로 신규 원전 건설이 중단되는 등 원전 산업 전반이 침체된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우수 원전 인력이 이탈하면서 지식의 공백이 생기고, 원전 안전이 흔들릴 우려가 커진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민병주 한국원자력학회장은 “과거에도 원자력 발전소를 반대하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연구까지 반대한 경우 처음”이라면서 “산업계는 물론 학계와 연구계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오종찬 기자
민 학회장은 지난달 한국원자력학회의 제 32대 학회장으로 선임됐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학회의 첫 여성 학회장이다. 그는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나와 일본 규슈대에서 원자핵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원자력연구원 연수원장을 역임한 원전 전문가다. 2012년 제19대 국회에서는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선출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민 학회장은 60여년간 축적한 원전 기술과 경쟁력이 무너지지 않도록 긴 호흡으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정부가 원전 해체 등 후행핵주기 산업 육성 계획을 발표했는데, 그동안 주력해왔던 선행핵주기 산업을 중단하면 절름발이형 산업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후행핵주기 예산 투자는 하되 선행핵주기 산업이 유지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또 원전 건설부터 운전정비, 수명연장, 해체까지 전(全)주기로 산업을 확장하려면 원전 업계가 준비하고 대응할 시간을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계도 기간 없이 추진한 탈원전 정책으로 수많은 원전 부품 업체들이 도산 위기에 몰리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침 이날 인터뷰가 진행된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는 원자력 노동조합 연대(원노련)가 ‘탈원전 정책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재개와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공론화를 요구하는 자리를 가졌다.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등 원전 6개사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원노련은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민 학회장은 "진행 중이던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이 갑자기 중단돼 대비를 못한 관련 기업들의 충격이 컸다"면서 "기존 발전소 건설을 마무리하면서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는 게 업계의 바램"이라고 했다.
―올해로 학회 50주년을 맞아 학회장을 맡은 소감은.
"원전 산업이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이런 시기에 학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어깨가 무겁고 부담감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겠다. 한국은 선진국에서 원자력 기술을 도입한지 50년 만에 수출에 성공하고, 최근에는 한국형 3세대 원전(모델명 APR1400)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을 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선배들이 60여년간 일궈낸 원전 산업이 30년 뒤에도 빛을 볼 수 있도록 연구 기반을 닦고 학회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원전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전 업계가 맞이한 현실을 고려했을 때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어떤 속도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긴 호흡으로 원전 기술이 유지될 수 있도록 천천히 가야한다. 기술 유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수 인력은 계속 빠져나갈 것이고, 원전 안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안전한 원전을 운영하려면 우수한 인력이 일을 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 자체는 추진할 수 있다. 문제는 갑자기 정책이 변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맞는 에너지 믹스가 무엇인가 깊이 고민해서 찾아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생략된 채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업계가 혼란을 겪고 있다. 원자력 산업은 하던 일이 갑자기 중단되니까 대책을 못 세웠다. 준비 기간을 줬으면 살 길을 찾았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업계는 신한울 3·4호기 만이라도 완성되길 바라고 있다. 해외 수출이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해외 수출만 바라볼 수 없고, 신사업을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기존에 어느 정도 짓다가 중단된 신한울 3·4호기를 시간을 두고 안전하게 건설하면서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edited by kcontents
―최근 정부가 원전 수출 지원책과 원전 해체 산업 육성안 등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침체된 원전 산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는가.
"신규 건설 중단을 예상했더라면 파장이 덜했겠지만, 짓고 있던 원전조차 갑자기 중단됐기 때문에 업계 충격이 컸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정부는 해체 산업을 확장하고 수출 지원책을 마련했다. 지금이라도 시작하는 것은 다행이나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동안 국내 원전 산업이 원자로 건설, 운영 등 선행핵주기에 집중하고 해체 등 후행핵주기 연구를 미뤄놓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행핵주기 산업을 포기하면 원전 안전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
선행핵주기와 후행핵주기간 균형을 맞춰야 한다. 지금처럼 짓던 원전을 갑자기 중단하는 식으로 진행 중이던 사업을 취소하면 기업은 준비 과정 없이 사업이 단절되기 때문에 지속이 어려워진다. 후행핵주기 예산 투자는 하되 선행핵주기가 무너지지 않도록 전(全)주기에 걸쳐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올 들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전성 점검 이후 재가동한 원자력발전소가 멈춰서는 사건이 발생했다. 원전 안전 우려도 나오는데, 원전 안전을 강화하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원전은 아무리 잘 지어져도 운전자가 작동을 못하면 운영이 어렵다. 원전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원전 운전자들인데, 경험 있는 인력이 더 이상 관련 일을 안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원전 운전처럼 어려운 일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줬는데 최근에 없어지면서 현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발전소 운전을 하는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와 처우가 필요하다.
원전 운전을 하려면 원자로 조종사(RO) 면허를 따야하고, 면허 취득 후에도 3교대로 근무하는 등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그런데 혹여 실수라도 하면 그 책임을 개인이 다 져야 한다. 힘든 일을 해도 똑같은 보수를 받고 책임까지 져야 한다면 누가 관련 일을 싶겠는가. 서로 발전과장, RO를 안하려고 하면 원전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민병주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원자력학회가 사회적 갈등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오로지 과학적, 공학적 사실에 근거해 국민과 소통하는 원자력 전문 학술단체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오종찬 기자
―전문인력 유출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데, 인재 육성을 위해서는 업계와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현재 원자력연구원만 보면 퇴직자가 연 80~100명에 달한다. 10년 이상 경력을 보유한 경험 인력이 대다수다. 인력 이탈이 지속되면 지식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학회가 이런 지식의 공백을 채우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의 일환으로 산업통상자원본부에 제안한 것이 원전 산업인력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다. DB 구축을 한 뒤 원전 안전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 경험 많은 퇴직 인력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컨설팅을 받는 식으로 지식의 연결성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원전 해체 인력을 육성하겠다고 했는데, 대학에 무조건 인재를 키우라고 하는 대신 현재 남은 원전 인력 중 일이 줄어든 사람을 재교육을 시켜 해체 관련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건설경제
edited by kcontents
―앞으로 원자력을 활용할 수 있는 미래 융합 산업으로 어떤 것이 있는가.
"최근 업계에서 관심을 갖는 분야는 중소형, 초소형 원전이다. 그외에도 선박용 원전, 우주선에 들어가는 배터리 형식의 원자로 등은 그동안 대형 원전을 건설하면서 쌓은 핵심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다. 원전 해체와 별개로 지속적으로 연구를 해야 하는 분야다. 그동안 해외 기술을 도입해 국내에 적용했다면, 이제는 외국에서도 해보지 않은 연구를 주도했으면 한다."
―원자력학회는 국가의 에너지정책 수립과 실행을 어떻게 지원할 계획인가.
"에너지 관련 학회들과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하고자 한다. 학회는 어디까지나 학술단체이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자 한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원자력을 배제한채 기후변화 대응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어느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과학적, 공학적 사실에 근거해 우리나라에 맞는 국가 에너지 믹스 정책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하겠다."
이재은 기자 조선비즈
케이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