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만 40개..."건축 인허가 없앤다"
[단독] "건물 하나에 심의 40개"···승효상, 건축 인허가 없앤다
대통령 직속 기관이자 국가 건축정책을 총괄하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국건위)가 건축 인허가 제도 폐지를 추진한다. 1962년 건축법 제정 이후 인허가 관련 제도가 약 50여 차례 개정되며 규제를 위한 규제로 점철됐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17일 “건물 하나 지으려면 허가받기까지 많게는 40여개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며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심의위원, 공무원과 민원인 사이에 유착관계가 형성되고 부정ㆍ비리가 만연돼 있고 문제 제기조차 안 하는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건축 인허가 제도 폐지를 추진하는 승효상 국가건축정책 위원장. [중앙포토]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한국건축설계학회 등에 의뢰해 건축허가 및 심의절차 선진화 방안 연구를 한 데 이어, 국토교통부와 함께 가을 정기국회 상정을 목표로 건축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비전문가인 공무원이 쥐락펴락하던 인허가 업무를 건축 전문가가 있는 지역건축안전센터가 맡고, 전문가(건축사)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다. 다음은 승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건축 인허가를 폐지하면 앞으로 어떻게 건물을 짓나.
“전 세계적으로 건축행위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인 허가와 관련해 우리처럼 불허(不許)를 전제로 하는 나라가 없다. 지자체에 건축허가를 신청하면 심의를 거쳐 허가가 나기까지 대규모 건축물의 경우 7단계 절차를 거쳐 최소 425~480일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불필요한 심의 및 인증 절차가 너무 많다. 건축사가 법규를 지켜 도면을 그리고 허가를 진행해달라고 신청하면 공무원이 아니라 지역건축안전센터의 전문가가 법규를 준용했는지 체크리스트를 확인하고 도장 찍어주는 식으로 절차를 바꿀 계획이다. 허가제가 신고제가 되는 거다. 법규를 벗어난 건축 계획에 한해서만 특별위원회를 열어 허가를 받으면 된다.”
연도별 건축허가 통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건축허가 및 건축심의 관련 주요 문제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역건축안전센터가 뭔가.
“건축법상 지역건축안전센터 설립 근거가 있다. 센터가 허가·승인 업무를 맡도록 법 개정을 할 방침이다. 공무원과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준공무원 조직으로 지자체별로 센터를 만들 수 있다. 예산 지원도 한다. 건축 비전문가인 공무원은 인허가 업무에서 손 떼게 된다. 관련 행정처리만 해주면 된다.”
건축은 안전 문제와 직결된다. 허가 제도가 축소ㆍ폐지되어도 문제가 없을까.
“안전 관련 책임 소재를 더 명확히 할 수 있다. 숱한 심의를 거쳐 건축 허가를 받고 지어도 사고가 났을 때 누구 책임인지 가리는 게 일이었다. 면허를 딴 건축사가 권한을 갖되 책임을 지면 된다. 오스트리아 빈의 경우 건축 도면마다 설계ㆍ구조 등 관련 전문가의 도장이 찍혀 있듯이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이다. 무엇보다 허가를 위해 제출하는 도면은 그야말로 계획 도면이다. 계획 과정에 온갖 심의가 집중되고 실제 짓는 과정에서나 완공 이후 검사에는 소홀하다. 도면을 법대로 그렸는지 확인하고 시공 과정에서 안전 문제를 철저히 검사하는 시스템으로 바꾸겠다는 거다.”
전문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없다.
“부실에 관여한 사람은 강하게 처벌하면 된다. 처벌 뿐 아니라 불법 및 편법에 관여한 건축사는 직을 박탈해야 한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변호사를 영구제명하듯 대한건축사협회가 그런 역할을 하게 협의할 예정이다.”
왜 바꾸려 하나.
“언제까지 이 말도 안 되는 시스템으로 갈 건가. 우리 사무실에서 허가를 낼 때 내가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금전을) 요구하는 간 큰 공무원도 있었다. 심의에 들어가면 심의위원이 법상 문제가 되는 걸 검토하면 되는데 창을 불규칙하게 냈다고 따진다. 그런 심의로 먹고사는 각종 협회가 많다. 건축 선진국이 되려면 바뀌어야 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6월 작성한 ‘건축허가 및 심의절차 선진화 방안연구’에서 건축허가 절차의 문제점으로 ‘허가 과정 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심의에 의한 설계자 의도 훼손, 중복 심의, 심의위원의 자질 및 주관적 심의, 허가 소요시간 예측 불가 등으로 다양한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한국건축설계학회가 국내대형건축사사무소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중복되고 자의적인 잣대에 따른 심의 제도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사업지 내 역사적인 도시흔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시흔적 남기기 반영의견으로 배치를 전면수정했다’라거나, ‘반복적이고 유사한 심의를 계속 거치면서 공사비가 상승할 수밖에 없는 의견들로 인해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식이다.
건축 허가제를 신고제로
공무원 인허가 업무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국토부 건축법 개정안 국회 상정 추진
"건축허가 관련 부정ㆍ비리 뿌리뽑겠다"
가상 건축물에 대한 인증 대행업체의 가견적 사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심지어 대가를 요구하는 자문 사례도 있다. ‘OO 시 심의위원의 경우 심의 통과를 대가로 본인이 운영하는 지하 안전영향평가 업무 및 교통컨설팅 계약 체결을 요구하기도 함.’ 한국건축설계학회 측은 “건축물 성능평가는 주관적 가치판단의 영역이 아니므로 절차 및 방식을 체계화하고 현행 건축물 심의제도는 전면 폐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심의 절차를 위해 드는 비용도 막대하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인증대행업체에 지하 4층, 지상 47층 규모의 주상복합(연면적 13만7716㎡) 건축허가를 위해 받아야 할 인증을 의뢰해 보니 총 20가지 인증 절차에 비용만 1억8700만원에 달했다.
이광환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일본은 건축허가 대신 건축확인제를 두고 법에 맞게 계획됐는지 확인하고 법규를 넘어서는 것들에 한해서만 허가가 필요하다”며 “선진국의 경우 허가 및 심의 관련 자의적 판단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객관적 지표로 관리하는 만큼 우리도 과도한 건축허가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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