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환경 혁신] 진흙 정수기; 다용도 수도꼭지 등
산업과학 Construction,Science/환경안전 Environment,Safety2019. 9. 6. 14:10
대장균도 거르는 진흙 정수기
인류를 지키는 적정기술
다용도 수도꼭지 등
전 세계적으로 물 부족 문제는 큰 이슈다. 특히 대다수의 저개발 국가 주민들은 물이 풍족한 지역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염으로 인해 물을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고 씻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물은 풍족해도 정작 마실 물은 부족한 것이 저개발 국가의 현실이다 ⓒ CoolAustralia
이처럼 모순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 들어 적정기술 전문가들이 오염된 물을 신속하면서도 깨끗하게 정화해 주는 기술을 개발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다용도 수도꼭지’와 ‘진흙으로 만든 정수기’다.
고인 물을 흐르는 물로 바꿔 위생 강화
페루의 수도인 리마(Lima)에는 쎄로페르데(Cerro Verde)라는 빈민 지역이 있다. 지역 시설이 낙후되어 있다 보니 전체 가구 중 절반 정도가 수돗물 공급을 받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나머지 절반 가구는 시 정부가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물탱크 차를 이용하여 물을 공급받는데, 일단 물을 공급받는 시점까지는 별문제가 없지만 그 이후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식구들이 일일이 물통을 들고 확보한 물은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된다. 문제는 식수를 담는 통과 생활용수를 담는 통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다 보니 위생적으로 깨끗하지 않고, 낭비되는 물도 많다는 점이다.
친지의 초청으로 페루를 방문했던 미국의 대학생 ‘킴 쵸우(Kim Chow)’는 이 같은 장면을 목격하고 적지 않게 놀랐다. 물통에 담긴 물을 조금만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위생적으로 사용하면서도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특히 물통에 ‘고여있는’ 형태로 존재하는 물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이를 ‘흐르는’ 형태의 물로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쵸우는 미국의 아트센터디자인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답게 자신의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빈민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다용도 수도꼭지’를 개발했다.
쵸우는 “오염된 물을 먹거나 몸을 씻는 데 사용하면 질병의 위험을 벗어날 수 없게 되는데 이런 위험을 완화시켜주는 것이 바로 ‘고인 물’을 ‘흐르는 물’로 바꿔주는 것이라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물통에서 수도꼭지를 이용하면 위생적으로 물을 옮길 수 있다 ⓒ soliforum.com
쵸우가 개발한 다용도 수도꼭지의 이름은 ‘BaB(Balde a Balde)’이다. ‘양동이에서 양동이로’라는 뜻을 가진 이 수도꼭지는 양동이에 고여있는 물을 다른 양동이로 흐르게 만들어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또한 물을 틀고 막는 조절이 쉬워서 바가지로 뜰 때보다 낭비되는 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애써 확보한 물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쵸우의 의견이다.
만드는 방법도 적정기술이 적용된 제품답게 쉽고 저렴하다. 집게와 고무관, 그리고 펌프 및 밸브가 전부인 간단한 구성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동이에 수도꼭지를 집게로 고정한 다음, 펌프를 이용해서 물을 끌어올린 뒤 고무관을 통해 다른 양동이로 보내는 것이 BaB의 작동 원리다.
쵸우는 “BaB이 보급되면서 페루의 빈민지역 주민들은 그동안 다른 사람이 손을 씻었을지도 모르는 물을 마시는 일은 사라졌다”라고 전하며 “특히 남이 먼저 손을 댔을 것 같은 물은 그냥 버리거나 빨래하는 물로 사용했기 때문에 낭비가 심했지만 BaB을 사용하고 나서부터는 그런 경우는 사라졌다”라고 강조했다.
BaB의 보급이 예상보다 빠른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성비를 꼽는다. 가격은 3달러에 불과하지만 기능만큼은 수돗물을 사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수돗물은 없지만 수도꼭지는 있는 이 새로운 시각의 적정기술에 대해 영국은 혁신적 기술에 수여하는 상인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를 안기며 그 가치를 인정했다.
진흙으로 만들었지만 세균도 여과하는 뛰어난 정수 능력
페루처럼 중남미 지역 국가인 과테말라에도 빈민지역 주민들의 위생을 도와주는 적정기술 제품이 있다. 진흙을 활용한 이 정수기는 과테말라의 과학자인 ‘페르난도 마자레이고스(Fernando Mazariegos)’ 박사가 처음 개발했다.
이후 과테말라를 방문했던 사회학자이자 시민단체의 대표인 ‘론 리베라(Ron Ribera)’ 박사가 정수기의 기능에 감탄하며 재설계를 시작했다. 리베라 박사는 해당 정수기가 과테말라 외에도 다른 저개발 국가의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의 생각대로 국가의 상황에 맞게 재설계된 진흙 정수기는 현재 전 세계 14개국에 100만 개 이상이 보급되었으며, 약 50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이 정수기를 이용하여 깨끗한 물을 마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흙으로 만든 정수기를 통해 깨끗한 물을 마시는 과테말라 주민들 ⓒ unicef
정식 명칭이 ‘세라믹워터필터(ceramic water filter)’인 이 진흙 정수기는 정수 공간과 여과된 물을 저장하는 플라스틱 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수 공간을 차지하는 세라믹은 진흙과 왕겨를 적절한 비율로 혼합한 뒤 고온에서 구워 만든다.
리베라 박사는 “진흙으로 만들다 보니 세라믹에 눈에 보이지 않은 미세한 기공이 형성되어 있다”라고 밝히며 “기공이 얼마나 미세한지 물은 빠져나오지만 유해 세균은 구멍을 통과하지 못해 걸러진다”라고 소개했다.
세균은 물론 유해 성분인 비소까지도 걸러진다는 사실이 미 MIT 공대의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리베라 박사는 “진흙으로 만든 이 간단한 구조의 정수기를 통해 저개발 국가의 주민들은 설사와 같은 질병에서 해방되었고 그로 인한 의료비 지출의 감소로 경제적 도움까지 주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김준래 객원기자 stimes@naver.com 사아언스터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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