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조달청 입찰 결과 놓고 소송 큰 폭 증가


[단독] 허술한 국가계약법에 조달청은 지금 소송 중


입찰과정·평가결과 둘러싸고 지난해 소송 230건으로 급증

부당 ‘계약변경’ 제어권한 없어

협력업체 교체 공기관 ‘갑질’

법적분쟁 악순환 되풀이 비판


   최근 수년간 조달청의 입찰 과정과 평가 결과를 둘러싼 각종 소송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조달청과 업체 간 법적 다툼의 주된 요인으로 허술한 국가계약법이 꼽히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기관들이 중소 협력업체에 대해 ‘갑질’을 일삼으며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등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1일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이 조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조달청이 연루된 소송 건수는 230건으로 나타났다. 전년보다 18건 줄긴 했지만 4년 전인 2015년(95건)보다는 2.4배 늘었다. 올 상반기 조달청 관련 소송 건수는 101건이다.




조달청을 상대로 소송을 낸 대다수 업체는 조달청이 공공기관들의 부당한 ‘계약 변경’ 등을 감시·제어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국가계약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조달청에 필요한 물품을 납품할 수 있는 업체 선정을 의뢰하면 조달청은 기술평가 등을 통해 일순위 업체(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도록 규정한다. 공공시설 및 설비, 물품 납품 업체가 정해지면 수요기관은 협상을 통해 세부 내용을 확정해 최종계약을 체결한다.




문제는 국가계약법 하위법규인 기획재정부의 계약예규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에서 ‘계약담당 공무원이 우선협상대상자와 협상을 통해 조달청에 제출한 제안서 내용의 일부를 조정할 수 있다’(제11조)고 규정한다는 점이다. 수요기관이 낙찰업체에 과도한 계약상의 변경을 강요할 때가 많은 것이다.


공공기관으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입찰 참가 업체들은 수요기관들이 특정 업체만 보유하고 있는 기술규격이나 자격증 등을 갑작스럽게 요구할 때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또 업무상 기밀인 기술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뒤 이 같은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준미달’이라며 협력업체마저 입맛에 맞는 업체로 교체할 것을 요구한다고 비판했다.


한국은행은 조달청과 감사원, 법원 간의 서로 다른 판단으로 인해 2년여간 통합별관 건축공사를 지연시켜야 했다. 한은은 지난해 초 통합별관을 착공해 내년 6월 창립 70주년에 맞춰 완공을 추진했으나 차질이 빚어지면서 완공 시점이 2022년으로 늦춰졌고 그때까지 인근 건물 임대료로 매달 13억원을 내야 할 처지가 됐다.



평가위원들의 전문성 여부도 입찰업체들의 불만 가운데 하나다. 예컨대 올해 조달청이 선정한 ‘대형소프트웨어사업 전문평가위원’의 절반가량은 대학교수였고 나머지는 공무원 및 공공기관 재직자였다. 실무경력이 전무한 사람들로 평가위원이 구성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이 많다. 고도의 전문성과 실무지식이 요구되는 시대에 현장 전문가들이 평가위원으로 위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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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입찰 참여업체 관계자는 “조달청에서 말하는 ICT 전문가 중에는 컴퓨터공학과 교수 등이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실무와 동떨어진 질문을 해 당황할 때가 종종 있다”며 “특정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가 중 오랜 경력을 겸비한 사람들을 평가위원 일부로 넣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달청 측은 “조달청은 협상에 의한 계약의 원칙에 따라 업체 선정만 할 뿐 분쟁이 발생해도 관여할 의무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김라윤 기자, 세종=안용성 기자 ryk@segye.com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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