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 된 출혈 수주…상한제 불똥 튄 건설사


'부메랑' 된 출혈 수주…상한제 불똥 튄 건설사


'제살 깎아먹기' 수주 후유증

분양가 낮아지면 건설사가 변제

건설사·조합간 갈등 빚을 수도

수익성 악화 우려에 거래도 한파


   민간택지의 분양가 상한제 확대 적용이 급물살을 타면서 재건축·재개발사업을 수주한 건설회사들에 비상이 걸렸다. 수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일반분양가 하한선을 확정해 계약한 사업장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아 약속한 것보다 낮게 분양가가 책정되면 차액이 건설사 손실로 돌아온다. 재개발·재건축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거래가 뚝 끊기는 등 시장 분위기도 차갑게 식고 있다.


 

조망이 수려한 서울 한남뉴타운. 정부가 민간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선언하자 무리한 조건으로 재건축·재개발사업을 수주한 건설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재개발사업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다. /한경DB 이미지: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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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독배 드나

1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 대형 재건축사업장인 A단지 일반분양가는 3.3㎡당 5100만원 이상으로 결정됐다. 올가을 이주를 앞두고 있어 분양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가격 하한선은 이미 정해졌다. 2년 전 시공사 선정 당시 B건설사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분양가를 확정 제시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주변 분양가를 3.3㎡당 4000만원대 중반으로 통제했다. 이 때문에 B사는 후분양을 염두에 두고 “최저 5100만원대를 보장하겠다”고 조합원들에게 약속했다. 후분양을 하면 HUG의 분양가 규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B사는 한발 더 나아가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더라도 최저 분양가를 책임지고 보장하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정부가 ‘꼼수 후분양’을 막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 기준 하향 등을 검토하자 얘기가 달라졌다. 약속한 최저 일반분양가를 받지 못하면 그만큼의 돈을 건설사가 토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HUG 기준대로 3.3㎡당 4500만원대에 분양한다면 전용면적 84㎡를 기준으로 가구당 2억원 손실이 나게 된다. 한 대형 건설사 정비사업팀 관계자는 “일반분양 규모를 생각하면 4000억원 정도를 공사비에서 차감해야 할 상황”이라며 “강남권 다른 사업장에서도 분양가 확정 제안이 많았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 속출할 것”이라고 했다.


인근 C구역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곳은 3.3㎡당 4200만원 이상의 일반분양가를 책정하겠다는 내용이 조합과 D건설사 간 시공계약서에 담겼다. 하지만 최근 인근에서 HUG의 분양보증서를 받은 단지가 3.3㎡당 2800만원대로 책정하면서 괴리가 커졌다.


조합은 느긋하다. C구역 조합 집행부 관계자는 “계약서에 이미 최저분양가가 담겨 있기 때문에 조합 입장에선 선분양이든 후분양이든 별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구역은 내년 가을까지 착공을 못 하면 D건설사에 줘야 할 공사비를 차감한다는 조항도 계약서에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사들의 ‘제 살 깎아 먹기’식 계약은 2년 전 수주 광풍에서 비롯됐다. 당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활을 앞두고 이를 피하려 사업을 서둘러 진행한 정비사업장이 많았다. 건설사들도 수주를 위해 과당 경쟁에 들어가면서 앞다퉈 후분양 조건이나 분양가 확정, 공사비 차감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분양가 규제가 한층 강해지면서 이 같은 제안은 모두 건설사에 독으로 돌아오게 됐다. 선분양하면 인근 구역 가격에 맞춰야 하고, 후분양할 경우 분양가 상한제 적용으로 가격 수준이 어느 정도가 될지 알 수 없게 됐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이제 와서 분양가를 낮추려면 관리처분안 변경 총회를 해야 하지만 통과될 리 만무하다”며 “건설사 입장에서도 수천억원의 손실을 보는 원래 계약대로 이행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거래도 절벽

분양가 규제로 재개발·재건축 투자 수익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매매시장은 한파를 맞고 있다. 대치동 은마 아파트와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등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매수 문의가 넘쳤지만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매도가 급한 은마아파트 주인들이 호가를 3000만원이나 낮춰 팔겠다고 해도 매수자들이 시큰둥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일반분양이 많은 반포주공1단지(1·2·4주구)도 매도가 급한 조합원이 호가를 1억~2억원 낮춰 매물로 내놨으나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매도자들이 물건을 몽땅 거둬들이는 분위기였으나 이젠 정반대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며 “분양가 상한제가 어느 단지까지 적용될지 구체적인 윤곽이 나와야 매도자나 매수자가 움직일 것 같다”고 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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