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 갈아 엎고 농민 생존 위협하는 영광·신안 태양광발전소
염전 갈아 엎고 농민 생존 위협하는 영광·신안 태양광발전소
바다로 뻗어가는 ‘태양광 난맥’
우후죽순 들어서며 땅값 부채질
생계터전에서 쫓겨나는 현지인들의 시름
7월 2일 전남 영광군 백수읍 하사리. 아직 오전 10시인데도 염전 위로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쬔다. 가로세로 각각 11m가량의 염전 ‘결정지’에는 함수(鹹水), 즉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물이 발목 높이 정도로 담겨 있다. 잔잔한 수면 위로 바쁘게 움직이는 일꾼들의 모습이 비친다.
결정지 위에 있는 소금 창고에서는 불순물이 섞인 간수가 충분히 빠진 소금을 20kg짜리 가마니로 옮겨 담는 출하 작업이 한창이다. 올해로 염부(鹽夫) 생활 20년째인 제갈순희(47) 씨도 삽으로 소금을 푸느라 분주하다. 잠시 일을 멈추고 창고 밖으로 나와 바닷바람에 땀을 말리는 제갈씨의 표정이 밝지 않다.
7월 2일 전남 영광군 백수읍 하사리 일대 태양광발전소의 모습. 초록색 울타리 왼편으로 염전이, 위편으로는 풍력발전기가 보인다(왼쪽). 전남 영광군 백수읍 하사리 일대 태양광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굴삭기가 폐 목재를 치우고 있다. [지호영 기자]
“바람 막는 태양광 패널 때문에 소금 꽃 피지 않아”
7월 2일 천일염 생산자 제갈순희 씨가 염전 옆에 들어선 태양광발전소를 가리키고 있다. [지호영 기자]
“소금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햇빛과 바람입니다. 그런데 요즘 염전 주변으로 자꾸 태양광 패널(모듈)이 들어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염전 바로 옆에는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햇빛을 모아주는 가로 1m, 세로 70cm의 태양광 모듈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2년 전 들어선 발전용량 2800k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다.
“염전 옆에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서자 패널 때문에 그늘이 생겨요. 무엇보다 통풍이 잘 안 돼 소금 결정이 제대로 맺히지 않는 게 큰 문제입니다.”
햇빛과 바람으로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하는 천일염 염전은 크게 저수지와 증발지, 결정지로 구분된다. 염도 35‰(퍼밀·1000분의 1)의 바닷물이 각 구획을 거치면서 물이 증발되고 염도는 높아지다, 결정지에 이르면 200‰ 이상의 염도를 지닌 바닷물에서 소금 결정이 생성된다. 염부들이 흔히 ‘꽃이 핀다’ 혹은 ‘살찐다’고 표현하는 이 단계까지 오는 데 약 1개월이 걸린다. 일조량과 풍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염도가 잘 올라가지 않을뿐더러 소금 알갱이도 잘아진다. 그래서 소금 수확기에는 염전 주변에 대형트럭도 통행을 삼가야 한다. 트럭의 진동으로 행여나 소금 결정이 깨질까 조심하는 것이다.
이곳 가까이에 내년 중순 완공을 목표로 97만㎡ 규모의 새로운 태양광발전소 공사가 한창이다. 한때 소금밭이었을 땅에 트럭이 폐목재를 부지런히 실어 나른다. 제갈씨는 “태양광발전소를 짓는다고 건설 중장비가 오가며 소음과 진동을 만들어 소금 생산량이 30%가량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그의 동료들도 “공사장의 비산 먼지가 우리 염전으로 날아와 그걸 없애는 작업을 하느라 일이 늘었다”고 말을 보탰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남의 태양광 에너지 발전량은 168만4211MWh로, 전국 발전량(705만6219MWh)의 약 40%에 해당한다. 전남지역의 하루 평균 일사량이 ㎡당 3.89kWh로 전국 평균(3.63kWh)보다 7%가량 높다는 점이 한몫한다. 전남도청이 허가한 도내 태양광발전 사업은 1만6173건(2017년 말 누적 기준).
태양광발전소는 일조량이 많으면서도 바람이 잘 부는 평지를 선호한다. 공교롭게도 염전의 입지 조건과 맞아떨어진다. 전국 천일염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전남 서해안 염전 농가들이 ‘태양광 열풍’에 몸살을 앓는 이유가 여기 있다.
태양광 입지 조건, 염전과 동일
7월 2일 정성용 영광천일염생산자협의회 회장이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선 옛 염전을 배경으로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염전이 태양광 패널로 뒤덮이다 보면 고향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정성용(43) 영광천일염생산자협의회 회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4년 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왔다. 40년 이상 천일염 농사에 종사한 부친의 뒤를 잇기 위해서다. 60대 이상 고령자가 대부분인 염전 농가에서 보기 드문 40대 청년이기도 하다. 그는 “(태양광발전소를) 막아볼 수 있을 때까지 막아보겠다”며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태양광발전소 건설로 인한 염전 농가의 피해 정도는.
“영광군 내 염전 농가가 150여 가구다. 이 중 40여 농가가 최근 3년 사이 소금 농사를 접었다. 모두 태양광발전소 때문인 것으로 안다. 40여 농가는 대부분 임차인이었다. 일부는 다른 염전으로 옮겨갔지만 상당수는 일자리를 못 구해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다. 구직을 위해 외지로 떠난 경우도 많다. 수입산 증가 등으로 소금 값이 폭락해 가뜩이나 염전 농가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염전을 태양광발전에 쓰자고 하니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태양광발전으로 추가 소득을 올리면 좋지 않나.
“염전을 소유한 ‘염전 주인’, 즉 염주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영광지역 염전 농가 10가구 중 9가구 이상이 염주로부터 염전을 빌려 쓴다. 염주가 염전에 태양광발전소를 유치하면 임차인이 쫓겨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영광천일염생산자협의회에 따르면 영광군 천일염 생산 농가 가운데 직접 염전을 소유한 경우는 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염전 임차인’이다. 전국 1100여 개 염전 농가의 평균 임차비율 61%보다 크게 높은 수치다. 임차인들은 생산한 천일염의 일부를 염주에게 임대료 명목으로 지급한다. 1정(1ha)의 염전에서 한 해 동안 생산되는 천일염은 보통 100t, 20kg짜리 5000가마니다. 이 중 염주의 몫은 34%인 1700가마니라고 한다.
소금 농사보다 태양광발전이 더 돈이 되나.
“최근 몇 년간 천일염 가격이 바닥을 쳤다. 임차료, 인건비를 제하고 나면 염전 임차인이 손에 쥐는 돈은 한 달 50만 원에 불과할 정도다. 염주도 천일염을 팔아봤자 득이 안 되니 태양광발전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염전 생계 농가 90%가 밀려날 위기
대한염업조합에 따르면 2012년 kg당 391원이던 천일염 산지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200원대에 머물다 지난해 급기야 180원으로 낮아졌다. 현지 천일염 농가들은 “올해 100원 선도 붕괴될 것”이라며 위기감이 팽배했다. 천일염 kg당 생산 원가는 216.82원으로 추산된다(‘천일염 생산량 관리방안 연구’/ 목포대 산학협력단/ 2018). 천일염 가격이 반 토막 나 염전 농가가 생산 원가조차 보전하기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천일염 생산은 3월에 개시돼 9월 말 마무리된다. 5개월간의 농한기를 버틸 생활비가 부족해 막일에 나서거나 빚을 내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염주가 염전을 태양광 발전업체에 팔면 임차인은 어떻게 되나.
“염전 매매 후에도 당분간은 소금 농사를 계속할 수 있다. 토지 매입 후 태양광발전 사업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지자체) 허가 등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차인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본격적으로 공사가 개시되면 나가야 하니까. 아직 태양광발전으로 넘어가지 않은 염전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염전을 빌릴 때 보통 3년 기간으로 계약했고 계약을 갱신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태양광발전 열풍이 불면서 임대차 계약기간이 1년으로 짧아졌다. 외지에서 온 태양광발전업체가 농가당 1000만 원가량의 보상금을 약속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평생 소금 농사로 먹고살아온 사람이 그 돈으로 뭘 할 수 있겠나.”
7월 2일 태양광발전 업체에 매각된 전남 신안군 지도읍 태천리의 옛 염전 모습. [지호영 기자]
‘월 340만 원 보장’ 광고로 건설 손짓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아닌가.
“태양광발전 자체에 반대한다는 게 아니다. 그런데 ‘노는 땅’에 태양광발전을 하겠다는 것 아니었나. 염전은 노는 땅이 아니다.”
한창 공사 중인 태양광발전소를 바라보던 정 회장은 “외지인들이 멀쩡한 염전까지 사들여 폐염전으로 만들고는 태양광 패널을 깔고 있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사정은 영광과 이웃한 전남 신안도 비슷하다. 2016년 기준 전국 천일염 생산량 33만1000t 중 신안에서 생산되는 것이 23만t에 달할 정도로 신안은 그야말로 ‘천일염의 고장’이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해안도로를 따라 신안군 지도읍에 들어서자 ‘태양광발전소 분양·임대’라고 적힌 현수막이 나부낀다. ‘월 수익 130만~340만 원 보장’ ‘한전 20년 장기계약으로 안정적 수익 보장’이라는 광고 문구가 인상적이다. 미용실, 건강원 등 빛바랜 간판이 걸린 허름한 건물들 사이로 번듯하게 새로 지어진 빌딩에 모 태양광업체가 입주해 있다. 한 주민은 “서울서 태양광발전 하러 여기까지 왔다는데, 어쩌다 한 번씩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달이 가외 수입이 생기면 좋죠. 하지만 또 정부 시책이 바뀌어 태양광발전 못 하게 될까 걱정돼서….”
“알아보니 염전을 태양광발전 회사에 빌려주면 연간 임대료로 평(3.3㎡)당 6000원가량 쳐준다더라고요. 소금 농사로 본전치기도 어려운데, 태양광발전업체에 빌려주면 한 해 7000만 원 이상 벌 수 있다고 하니 혹하는 마음이 들긴 합디다.”
태양광발전업체에 염전을 내주는 것은 신안 염주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결정이다. 1년 이상 소금 농사를 쉬면 염전의 목재 구조물이 뒤틀리고 잡초가 자라 제구실을 못하게 된다. 다시 천일염을 생산하려면 1억 원을 들여 새로 시설을 정비해야 한다. 업체 측 광고대로 태양광 모듈이 소금기 머금은 해풍에도 20년 이상 견뎌줄지도 걱정이다. 주씨는 “그래서 주변 염주 대부분이 속 편하게 아예 염전을 팔아버릴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7월 2일 전남 신안군 지도읍 태천리 상공에서 바라본 염전(왼쪽)의 모습. 태양광발전 업체에 매각된 폐전(오른쪽)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지호영 기자]
태양광발전업체에 팔려 지난해부터 천일염 생산이 중단된 지도읍 태천리의 한 염전을 찾았다. 염전이 들어선 곳이 으레 그렇듯 주변이 탁 트인 평지 위로 햇빛이 쏟아진다. 태양광 모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시커먼 폐염전 위로는 뒤틀려 깨진 나무 조각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바닷물을 보관하던 함수 창고도 텅 비었다. 바로 옆 염전에서는 염부들이 하얀 소금을 긁어모으는 작업을 한창 하고 있었다. 현장에 동행한 박형기(60) 신안천일염생산자연합회 회장은 “2~3년 전만 해도 모두 소금밭이었는데, 요즘은 이렇게 폐염전이 군데군데 섞여 있어 신안이 낯선 모습이 됐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박 회장에 따르면 신안의 염전 농가 970곳 중 250여 곳이 현재 천일염 조업을 포기했다. 그는 “이미 태양광발전업체에 염전을 팔았거나, 팔 것을 고려하는 경우가 적잖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신안 한 마을의 경우 19개 염전 중 10개의 매매가 이미 완료돼 9월 이후 본격적인 태양광발전소 공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박 회장은 “태양광발전업체들이 부르는 높은 매입가가 염주들에게 상당한 유혹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염전 지가가 보통 3.3㎡당 5만 원 선입니다. 그런데 요새 태양광발전업체들이 ‘떴다방’을 앞세워 8만 원을 쳐주겠다고 해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6만5000원을 불러 염주들이 크게 놀랐는데, 1년 사이 그 값이 더 오른 거죠. 염전가 상승에 매입비용이 부담되자 염주 몇몇을 모아 염전 임대 태양광발전 사업 모델을 구상 중인 회사도 있다고 합니다.”
읍내에서 만난 주태남(60) 씨의 말이다. 그는 4정 규모의 염전을 보유한 염주. 그 역시 수년간 하락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천일염 가격이 걱정이다.
임대나 매매는 폐염전 직행길
소금이냐 태양광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선 신안 천일염 농가들은 고민에 휩싸여 있다. 더는 천일염으로 생계를 잇기 어려우니 이참에 태양광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과 어떻게든 천일염 값을 정상화해 계속 소금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박 회장은 “적어도 kg당 300원 선을 회복해야 염전 농가가 버텨낼 수 있다”며 “정부의 최저가 보장 등 지원이 있다면 염전 농가들은 태양광을 택하지 않고 대대로 이어온 천일염 생산을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점점 더 가속화 페달을 밟고 있다. 전국 지자체들은 유휴지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면 농어촌이 추가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전남 천일염 농가에도 태양광발전소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까. 평생 소금만 알고 소금만 믿고 살아온 이들에게 태양광발전과 신재생에너지의 먼 미래보다 당장 삶을 꾸려나갈 한 조각 염전이 더 절실한 것은 아닐까.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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