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로 운영자 한 명에게만 책임 몰아가기?'…한빛1호기 끝나지 않은 의혹들
KINS 중간수사 결과
무자격자 운전 원자로차장의 반응도 잘못 계산 등
전방위적인 문제 지적
한빛1호기 열출력 급증 사고에 대한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특별사법경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중간수사 결과 무자격자 운전과 원자로차장의 반응도 잘못 계산 등 전방위적인 문제가 지적됐다.
그러나 한빛1호기 원자로 주제어실에서 반응도 계산과 제어봉 인출에 대한 결정권자가 수사 결과 발표에 적시한 원자로차장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또 제어봉 인출시 조작자 미숙으로 일어난 위치편차가 발생한 뒤 제어군B를 100단까지 인출하는 과정에서 생긴 제어봉 고착 원인에 대해 안전 점검이 적확히 이뤄졌는지도 향후 규명돼야 하는 등 아직 완벽하게 규명돼야 할 사안들이 남아 있다.
2015 12월, 전남 영광군 홍농읍 한빛원전 물양장에서 중·저준위 방사능 폐기물을 포장한 드럼용기를 싣고 있다. 연합뉴스
반응도 계산 잘못한 원자로 운영자만의 잘못일까
원자로 주제어실에서는 약 10~11명이 근무한다. 이 중 원자로를 운영하는 주체가 원자로차장이다. 터빈이나 발전기를 담당하는 직원, 각종 현장 상황을 체크하는 직원 외에 안전차장과 총괄하는 발전팀장이 있다.
이번 조사에서 반응도를 계산한 원자로차장은 기동경험이 처음이고 이를 보완하는 교육훈련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원자로차장은 원자로 임계에서 벗어난 정도를 말하는 반응도를 잘못 계산했다.
그러나 반응도 계산 후 제어봉을 과도하게 인출하기로 한 결정에 안전차장과 발전팀장의 확인을 거쳐야 한다. 반응도 계산을 잘못한 원자로차장이 안전차장과 발전팀장에 제대로 보고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안전차장과 발전팀장이 제어봉 인출시 제대로 컨펌을 했는지는 아직 확인해주기 어렵다”며 “최종 조사 결과에서 종합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전남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에 위치한 한빛 원자력발전소. 연합뉴스
동적 제어봉 제어능 측정법(DCRM) 실패 원인은
제어봉 제어능 측정 시험은 제어봉이 반응도를 조절하는 정도가 요구되는 성능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시험이다. 안전한 출력운전을 위해 제어봉이 원자로 출력을 설계된 대로 제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동적 제어봉 제어능 측정법(DCRM)과 붕소희석 및 제어봉교환법이 있다.
원안위는 한빛1호기 주제어실에서 5월 9일 임계 도달 이후 제어봉 제어능 시험이 수행됐는데 동적 제어봉 제어능 측정법이 실패해 다른 방법인 붕소희석법 및 제어봉 교환법으로 시험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안위는 동적 제어봉 제어능 측정법이 실패한 원인에 대해서는 각종 모터나 전자기기에 의한 미세한 잡음 때문인 것으로 파악했지만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오맹호 원안위 원자력안전과장은 “두가지 방법 중 하나를 활용해 측정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붕소희석법 및 제어봉교환법은 인적오류 발생확률이 증가하는 만큼 DCRM을 왜 여러 차례 시도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제어봉 고착 원인은 아직 추정중
5월 10일 주제어실에서 실시한 제어봉 제어능 시험 초기에 발생한 제어군B 내 두 그룹간 2단 제어봉 위치편차는 제어봉 조작자의 조작 미숙에 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2개 그룹으로 구성된 제어군B를 1단 인출하기 위해서는 제어군B를 2회 연속 조작해야 하지만 당시 작업자는 1회만 조작했다.
2단 편차 조정 후 반응도 계산이 잘못됐고 이에 따라 제어군B를 100단까지 과도하게 인출하는 과정에서 1개 제어봉이 인출되기 전 발생한 제어봉 고착은 ‘래치잼’ 또는 ‘크러드’에 의한 것으로 추정됐다. 래치잼은 걸쇠 오작동이며 크러드는 불순물 침적을 의미한다.
문제는 제어봉 구동장치에 대한 안전 점검이 주기적으로 이뤄져 이같은 제어봉 고착 상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없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원안위는 “제어봉에 문제가 생기면 제어봉이 자동으로 떨어지도록 설계가 돼있기 때문에 제어봉 낙사시험 측정 등에서는 문제가 없다”며 “제어봉을 인출하는,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고착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구동장치에 문제가 없는지 내시경 검사 등 추가 검사를 한 뒤 종합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9년 6월 11일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교육 시스템부터 감사, 문화까지... 총체적 안전관리 부실 드러난 한수원
운영지침서와 자체 절차서의 위반 정황이 드러나면서 28개 원전을 관리하는 한수원의 직원들이 규정들을 제대로 인지하고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지도 물음표다. 이번 사태로 한수원의 교육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빛본부 교육훈련센터의 교육 인력은 평상시 정원인 12명의 3분의 1인 4명만 남아있어 운전원에게 적기에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수원의 해이한 조직 문화가 화를 부른 만큼 다른 원전의 관리 상황도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사건 당시 한빛 1호기 직원들은 중요작업 전에 반드시 열어야 하는 회의를 첫 근무팀만 하고 이후로는 안전 수칙 등 중요사항을 전달하지 않은 채 공정 지연만 문제로 전달했다. 원전 하나에서 불거진 문제가 아니라 조직 자체의 문화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원안위는 “정비기간 연장 등으로 발전량이 줄어들면 평가에 감점을 부여하는 등 생산성 중심의 조직 평가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자체진단 결과 도출된 안전 관련 문제점이 6개월 만에 불거진 점도 문제다. 자체감사를 통해 문제를 찾아냈으나 문제의 해결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감사원으로부터 자체감사활동 심사 결과 최우수등급인 A등급을 받았으나 빛이 바래게 됐다. 한수원은 심사 결과를 보도자료로 배포하며 안전감사팀 신설, 전 사업소 안전 위해요소 및 취약요인 사전 점검 등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선제적인 감사활동을 A등급의 이유로 밝혔다.
2차측 열출력은 시험에 활용할 수 없어... 한수원 몰랐나
한수원이 지침서를 아예 잘못 이해한 채로 지금까지 원전 시험에 나서온 정황도 드러났다. 한수원은 운영기술지침서 상의 열출력이 노외핵계측기 열출력이 아니라 2차측 열출력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원안위는 제어봉 시험에서 2차측 열출력을 활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이번 조사에서 발표했다.
노외핵계측기 열출력은 원자로에서 중성자로 인한 핵분열이 일어나는 것을 이용해 중성자의 속도를 직접 측정해 열출력을 계산하는 것이다. 반면 2차측 열출력은 증기발생기를 통해 냉각수로 전달된 열량에서 열출력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2차측 열출력은 원자로 출력이 15% 이상이고 온도와 압력이 안정돼 냉각수의 열량 변화가 커져야 신뢰할 수 있는 값이다. 사건 당시와 같은 열출력 15% 미만의 시험 상황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측정법이다.
이 같은 내용은 한수원의 시험 절차서에 적혀 있었음에도 한수원은 절차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원전 시험을 진행해 온 셈이 됐다. 그럼에도 한수원은 2차측 열출력값이 –1.05%에 불과해 수동정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다 KINS가 열출력 초과에 따른 조치를 2차례나 요구하고 나서야 2차측 열출력 값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다. 열출력 초과를 KINS가 처음 확인한 이후 수동정지에 들어가는 데만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원전의 열출력은 노외핵계측기 열출력과 2차측 열출력으로 측정 가능하다. 하지만 시험 상황에서는 2차측 열출력을 활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게 원안위의 조사 결과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제공
초 단위로 열출력 올랐는데... 분 단위 데이터 제공한 한수원
한수원이 KINS의 조사를 방해한 정황도 드러났다. 원안위에 따르면 한수원은 2차계측기 수위를 처음에는 분 단위로 제공했다가 이후에 초 단위 데이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로는 열출력이 초 단위로 빠르게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있기 때문에 분 단위의 데이터는 의미가 없다. 특히 이번 사건이 비정상적인 상황임을 감안하면 더 의문이 남는다.
실제로 사건 당시 노외핵계측기 기준 열출력은 오전 10시 30분 30초에 0%에서 10시 30분 57초에 5.7%까지 치솟았다. 27초만에 수동정지 요건인 5%를 넘긴 것이다. 이후 10시 31분 42초에 18.1%를 기록했다. 1분이 약간 넘는 시간 동안 열출력이 18%까지 상승한 것이다.
김민수 기자 reborn@donga.com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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