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 겪는 태양광 사업..."100년 돌려야 본전, 태양광 없애겠다"
산업과학 Construction,Science/에 너 지 Energy2019. 6. 24. 23:10
서울시 '태양광 늘리기' 사업 현장
서울시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추진하는 태양광·풍력 발전 사업이 곳곳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수억원대 사업비에 비해 발전 효율이 크게 떨어져 철거가 결정되거나, 고장 난 채 방치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시 산하기관이 반발해 건설 추진이 주춤한 곳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西向 태양광, 발전 목표치의 65%… 목동운동장 수직 태양광, 발전 목표치의 54% -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옥상에 태양광발전 시설이 설치돼 있다(왼쪽 사진). 정남향이 아니라 서향으로 설치돼 실제 발전량이 목표량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물관 측은 효율이 떨어지는 발전소를 철거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천문대를 들일 계획이다. 오른쪽은 서울 양천구 목동종합운동장의 벽에 붙어 있는 태양광 패널. 수직으로 설치돼 발전량이 미미하다. /이진한·고운호 기자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옥상 태양광발전소(용량 60㎾)를 철거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박물관의 발전소는 지난 2009년 세금 5억5800만원을 들여 설치됐다. 오세훈 서울시장 때였다. 지난해 연간 태양광 발전량을 전기료로 환산하면 435만원이다. 100년 이상 돌려야 설치비를 뽑을 수 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계자는 "빛이 반사된다는 민원 때문에 정남향이 아니라 서향에 세워 발전량을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애초에 발전 효율을 내기 어려운 줄 알면서도 설치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활용 여지가 풍부한 옥상을 전기료 얼마 아끼겠다고 태양광 발전기에 내줄 수 없다"며 "어린이들의 관심이 높은 천문대 설치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서울시에는 공공기관 건물 1083곳에 태양광 발전 시설(용량 72㎿)이 설치돼 있다. 시는 2000년대 후반부터 '저탄소 녹색 성장' '친환경 에너지 확대'를 앞세워 태양광 발전소를 짓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후 '원전 하나 없애기'와 '태양의 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발전소가 늘어났다. 박 시장은 지난 2017년 광화문광장·월드컵공원 등에 발전 시설을 설치해 오는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소 1곳의 발전량에 해당하는 1GW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업에는 약 2조원이 투입된다.
그러나 결국 철거를 결정한 서대문자연사박물관처럼 여러 발전 시설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천구 목동종합운동장의 발전소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처럼 입지 선정부터 잘못된 사례다. 시는 2014년 목동종합운동장에 1억6600만원을 들여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했다. 그러나 목표 발전량에 비해 실제 발전량은 절반 정도에 그친다. 발전 시설이 벽면에 수직으로 세워져 빛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성북구 태양광, 목표치의 1% 전력밖에 못만들고… 마포구 풍력, 수년째 '스톱' - 2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청소년 수련관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왼쪽 사진). 설치에 9000만원이 들었으나 지난해 한 해 동안 전기요금 1만6000원에 해당하는 발전량을 내는 데 그쳤다. 고장난 부품 수리가 늦어진 탓이다.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에 설치된 풍력 발전기(오른쪽 사진)는 대당 1억원을 들여 설치했지만 5기 중 3기가 고장 난 채 멈춰 있다. /고운호 기자
목동운동장을 관리하는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의 관계자는 "수직 패널이다 보니 받아들이는 일조량이 많지 않다"며 "건물에 옥상이 없는데도 태양광을 들이려다 어쩔 수 없이 벽면에 설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성배 서울시의원(자유한국당)은 "태양광 발전소를 무작정 늘리려다 보니 무리하게 설치하게 된 것"이라며 "가장 효율이 높은 곳에 설치해도 하루 3.2시간 발전이 최대치인데 그마저도 불가능해 곳곳에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설치 이후 잦은 고장을 방치해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관리를 맡은 각 기관에서 예산 부족을 이유로 수리를 꺼리기 때문이다. 태양광 부품 수리에는 수백만~수천만원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시가 광진구 청소년수련관에 1억800만원을 들여 설치한 태양광 설비는 지난해 한 해 동안 전기료로 환산했을 때 36만원에 해당하는 발전량을 내는 데 그쳤다. 저장된 전력을 전기로 바꿔주는 인버터 고장이 원인이다. 수련관 관계자는 "2017년 고장 났으나 수리비 1000만원 예산이 없어 고치지 못하고 있다"며 "하반기에 수련관 운영 수익 등을 끌어모아 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북구 청소년수련관에 설치된 태양광 설비는 지난해 발전액이 1만6000원이었다. 지난해 초 발전 시설의 메인보드가 고장 났으나 하반기가 돼서야 수리했다. 역시 예산 부담 탓이었다. 시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난지물재생센터에 8억5700만원을 들여 지은 태양광 설비도 인버터 고장이 방치돼 실제 발전량이 목표량의 14%에 그쳤다. 난지물재생센터 관계자는 "인버터 24대 중 10대가 고장이 났는데, 수리하려고 보니 대만 제품이어서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은평구 갈현노인복지센터의 발전소는 인버터 고장으로 전혀 발전을 하지 못했다. 복지센터 관계자는 "2017년에 인버터가 고장 나 업체에 수리 요청을 했는데 이후 연락이 없어서 못 고치고 있다"며 "태양광이 지붕에 무리가 된다는 의견이 있어 내년 건물 증축 때 아예 철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태양광 발전소 곳곳에서 문제가 속출하자 설치가 예정된 일부 기관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시가 약 10억원을 들여 '솔라 스퀘어'(태양광 광장)를 짓겠다고 발표한 마포구 월드컵공원이 대표적이다. 솔라 스퀘어는 태양광 보도블록 1088장을 깔아 만드는 지름 19m짜리 광장이다. 전기를 에너지저장시스템(ESS)에 저장했다가 해가 진 후 다양한 영상을 송출하는 데 쓰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관리할 서부공원녹지사업소 측은 "관리 인력이 부족하고 ESS 화재가 우려된다"며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 사업소 관계자는 "바닥에 깔린 집열판 때문에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이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서울시는 그럴듯한 계획만 내놓고 뒤처리는 사업소가 떠안으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사업소와 잘 협조해 이른 시일 내에 착공하겠다"고 말했다. 태양광 전체 시설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1000개가 넘는 설비를 시가 일일이 관리하긴 어렵다"며 "시는 보급 사업을 할 뿐 관리는 각 기관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풍력 발전기도 투입한 예산에 비해 성과가 미미하다. 시가 2011년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에 설치한 대당 1억원짜리 풍력 발전기(용량 10㎾) 5기 중 3기는 수년째 고장 난 채 방치돼 있다. 나머지 2기는 최근 시에서 각각 5500만원과 6400만원을 들여 고쳤다. 수리비 6400만원이 들어간 발전기가 1년 내내 생산한 양을 전기료로 환산하면 64만4000원이다. 정격 용량의 8% 정도다.
관리를 맡은 서부공원녹지사업소 관계자는 "돌풍이 많이 부는 곳이라 고장 우려 때문에 전원을 꺼놓은 경우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바람이 좋은 날 발전기가 돌아가지 않고 있어 '왜 세금 들여 세워놓고 발전을 하지 않느냐'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사업소 측은 밝혔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목표량을 세워놓고 숫자 채우기에 급급하다 보니 예산만 들여놓고 성과는 나오지 않는 관리 부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신재생에너지 발전기가 제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부터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인 기자 이세영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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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기자 이세영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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