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추락하는 원전산업] 원자력 전공자 유학 후 귀국 포기...국내 30%만 취업

원자력 전공자 유학 후 귀국 포기...국내 30%만 취업


석박사 전공 바꿔

붕괴되는 원전인력 생태계…原電인재 엑소더스


진로 불안에 연구실 뒤숭숭

방사선등 비원자력분야 `기웃`


15개大학생 6개월째 서명운동

탈원전 반대에 `적폐` 낙인만


발전분야 예산 2년새 반토막

"70년 쌓은 지식 代 끊길판"


     한양대 2학년생 B씨(22)는 매주 주말을 반납해가며 탈원전 반대 서명 운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 광화문과 서울역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그는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한 이후 신한울 3·4호기는 여전히 중단돼 있고, 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더 속도를 내고 있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B씨는 "정치권과 청와대에 있는 어느 누구도 학생들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지난 1월부터 전국 15개 대학 원자력학과 학생들이 만든 `녹색원자력학생연대`가 매주 전국 각지에서 탈원전 반대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탈원전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고 국민청원도 넣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건 `보수 야당 지지자`라는 말도 안 되는 `딱지`뿐이다. 한양대 4학년생 C씨(23)는 "우리는 정치와 상관없이 탈원전 정책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는 것일 뿐인데 야당을 지지하냐는 소리를 들었을 때 화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탈원전을 반대하는 것인데 우리를 적폐 세력으로 보는 시선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탈원전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학부생들에 이어 최근에는 대학원 연구실마저 붕괴되고 있다. 


      


지난 20일 대전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대학원 연구실. 방학인데도 석·박사 연구원들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만 2년 만에 확 달라진 연구실 분위기는 감춰지지 않았다. 석사 과정 연구원 D씨(28)는 "원자로 설계나 원자력에너지 변환처럼 원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분야를 연구하는 실험실은 탈원전 이후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전했다. 이미 진로를 정한 석·박사들이지만 최근에는 전공을 바꾸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학생들 사이에 졸업 이후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이 가장 큰 것 같다"며 "방사선 분야와 같은 비원자력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이 많아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심지어 외국 유학까지 마친 학생들이 국내로 들어오기를 포기하는 사례까지 나타나 원전업계 인력 유출이 현실화하고 있다. 장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공동대표(KAIST 석사 후 연구원)는 "외국 유학을 갔던 한 학생이 한국 정부의 탈원전을 지켜보면서 한국에 돌아오는 것을 포기하고 현지에서 일자리를 알아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후 국내 대학 원자력공학과는 취업률 감소, 이중·복수전공자와 자퇴자 수 증가로 흔들리고 있다. 사진은 1958년 국내 최초로 원자력공학과가 설립된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전경. <한주형 기자>


이처럼 원전 분야 고급 인력 이탈이 현실화하면 5~10년 뒤 원자로 설계나 노심 운용 등 원전 핵심 인력 수급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탈원전을 하더라도 원전 수출만큼은 계속 추진하겠다는 정부에 부메랑이 돼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최근 원자력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E씨(24)는 연구 분야를 `재료`로 정했다. E씨는 "원래 노심이나 원전 설계 쪽에 관심이 있었지만 탈원전으로 추가 원전 건설이 없는 만큼 밥벌이를 위해 진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실제 탈원전 정책과 함께 정부 연구개발(R&D) 예산도 정권 `입맛`에 맞게 바뀌는 분위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원자력 R&D 예산을 살펴보면 발전 분야가 2017년 740억원에서 2018년 481억원, 2019년 386억원으로 최근 2년 새 절반 가까이 줄었다. 반면 방사선 분야는 2017년 692억원에서 2019년 793억원, 안전·해체 분야는 2017년 572억원에서 2019년 700억원으로 늘어났다. 과기정통부는 발전 분야 예산 감소가 사용 후 핵연료 처리 기술(파이로 프로세싱과 소듐 냉각 고속로) 사업 재검토 결과에 따른 자연 감소분이라고 설명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분위기는 다르다. 박문규 세종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전 분야 고급 인력이 줄어들면 70년 동안 쌓아왔던 원전 지식의 대가 끊기는 것"이라며 "결국 원전 기술에 대한 국제 경쟁력 하락이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전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탈원전 `과속`을 비판하고 나섰다.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졸업 후 진로가 불투명해졌다는 인식이 확산된 상태에서 실제로 국내 업체에서 인력이 대거 이탈하고 있기 때문에 학부에 이어 대학원도 타격을 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정 교수는 "기존 전문인력은 빠져나가고 새로운 인력이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 이미 건설된 국내 원전마저 수년 내에 제대로 운영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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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9/06/447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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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경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명예교수는 "불확실한 미래로 과학도들이 의대를 선택하는 것처럼 뜻을 품고 원자력 분야를 선택한 유능한 학생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하면서 학교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면 아마추어고, 알았는데도 이렇게 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죄 없는 학과 학생들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원호섭 기자 / 대전 = 송경은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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