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이사회, '여름 전기료 할인' 결정 보류…"사실상 정부에 '반기"


    한국전력 이사회가 21일 여름철 전기요금 할인안을 담은 전기요금 약관 개정안을 보류시켰다. 정부가 선심성 에너지 정책으로 추진했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에 제동이 걸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앞서 7~8월 두달간 전기요금 누진 구간을 확대하고, 전국 1629만가구(지난해 기준)가 월 1만142원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한전 이사회는 ‘탈원전(원자력발전)’ 정책 영향으로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결정으로 3000억원에 가까운 추가 손실을 떠안을 경우, 배임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21일 서울 서초구 한전 아트센터에서 한국전력 이사회가 열렸다. 이날 이사회는 여름철 전기요금 할인안을 담은 전기요금 약관 개정안을 보류시켰다./연합뉴스

한전은 이날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이사회를 열고 민관 태스크포스(TF)가 제시한 전기요금 개편 최종 권고안을 토대로 심의를 진행했다. 이사회는 여름철 전기요금 할인안을 담은 전기요금 약관 개정안 의결을 보류했다.



한전 이사회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 의결을 일단 보류하고, 재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요금 약관 개정안이 한전 이사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당장 다음달부터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시행하려던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예산으로 한전의 손실을 보전해줄 예정이었으나, 한전 이사회는 소액 주주가 제기할 수 있는 소송에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라는게 에너지업계의 분석이다. 장병천 한전 소액주주행동 대표는 “이사회에서 전기요금 할인안이 통과될 경우, 이사들을 배임죄로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강원랜드가 전직 이사 9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태백시가 출자한 오투리조트에 150억원을 기부금 형태로 지원)에서 사외이사 등 7명에게 30억원의 배상을 판결한 바 있다. 재정이 파탄난 오투리조트에 강원랜드가 지원하는 것이 배임에 해당된다고 본 것이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과)는 “한전은 이미 두차례 공청회에서 (여름철 전기요금 할인안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면서 “정부가 한전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민간(외국인 포함)이 지분을 가진 에너지 공기업이 정부 정책으로 적자가 나는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정부와 한전 이사회의 결정으로 한전 주주에게 피해를 준다면 보상을 해야 한다”면서 “정부도 한전을 계속 누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기보 한전 영업본부장은 앞서 이달 3일 누진제 개편안 전문가 토론회에서 “한전은 뉴욕증시 상장 기업이고,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뿐 아니라 주주 이익도 대변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가 있다”며 “경영 상황이 좋지 않은데 누진제 완화로 한전이 추가 부담을 지는 것에 이사진이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했다.
설성인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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