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역간척 사업/ 대한민국 제1호 간척사업

서산 역간척 사업

김범수 논설위원 


   “각하, 해외에 나가 있는 저희 건설 장비를 들여와 국토 확장 사업에 쓰겠습니다.” 


간척 사업에 몰두하던 정권 막바지의 박정희 대통령은 충남 서산의 천수만 일대를 막아 농지를 만들 구상을 갖고 있었다. 그때까지 비슷한 간척 사업은 모두 정부가 맡았으나 이 사업은 민간에서 해주기를 바랐는데 그때 손 들고 나선 사람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었다. 마침 중동 건설 붐이 시들해 남아도는 장비와 인력을 활용하기에도 맞춤이었다.



방조제로 막아 생긴 두 개의 국내 최대 인공 담수호까지 포함해 여의도 20배에 이르는 154㎢ 규모의 서산 AㆍB지구 간척 사업이 첫 삽을 뜬 것은 1980년이다. 그러나 사업은 5년째 최종 단계인 A지구 방조제 물막이 공사에서 난관에 부닥쳤다. 전체 6,400m 방조제의 마지막 270m를 막으려고 아무리 거대한 돌덩이를 갖다 넣어도 급류에 쓸려나갔기 때문이다. 이때 정 회장의 아이디어로 고철로 쓰기 위해 사놓은 322m 길이의 스웨덴 유조선으로 물길을 막아 무사히 공사를 마친 일화는 유명하다.




국내 최초로 민간 기업이 주도한 서산 간척 사업은 고도 성장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국토 개발이다. 농지 확보만이 아니라 그 넓은 땅에 수확 후 남은 곡물을 먹겠다고 매년 60만마리의 철새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관광지로도 명성을 얻었다. 문제는 방조제 공사 후 생긴 담수호의 수질 오염이다. 바닷물의 흐름이 끊긴 상태에서 육지 오염원이 증가하면서 B지구 담수호인 부남호의 경우 농업용수로조차 못 쓸 정도로 더러워진 지 10년을 넘었다.


서산간척사업 해낸 '정주영공법'/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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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조 충남지사가 부남호 방조제의 10% 정도인 120m 가량을 허물어 담수와 해수를 유통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부남호 수질 개선은 물론이고 갯벌과 연안, 하구언의 생태계 복원을 목표로 한 ‘역간척’ 구상이다. 무작정 국토를 넓히고 보자던 개발 시기의 발상과는 정반대로 환경과 생태를 중시해 갯벌을 살려내자는 이런 사업은 10여년 전부터 서서히 뿌리 내리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2023년까지 제방, 연륙교 등을 부분 철거하는 방식으로 전남을 비롯해 전국 23곳의 갯벌 등의 해양 생태 복원 사업도 추진 중이다. 역간척 선진국인 네덜란드 전문가의 말대로 “자연은 길들일 수 없다”는 교훈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한국일보




대한민국 제1호 간척사업


[2010.05.27]


63년 '돌망태'공법으로 계화도 간척 시작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국가 주도로 간척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1960년대 들어서였다. 1960년 농경지 확장 5개년 계획이 수립되고 1963년부터 동진강 하구에서 총 4000여㏊를 매립하는 작업으로 간척사업이 시작됐다.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 간척사업<사진>이었다.


방조제 공사엔 이전까지 사용했던 흙가마니, 큰 바위가 아닌 철망태에 돌을 넣어 만든 덩어리를 물막이로 투입하는 '돌망태공법'이 세계 최초로 적용됐다. 조석 간만의 차가 커 유속이 6~7m/s로 빠른 서해안에 적합한 공법이었다. 조성된 간척지엔 섬진강 댐 건설로 생긴 수몰민 2700여가구가 이주해 와 농사를 지었다. 이곳에선 풍부한 일조량과 적은 병해충으로 우수한 품질의 쌀이 생산됐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서의 첫 간척사업은 1235년 고려시대 강화도에 세운 연안(沿岸)제방이 꼽힌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작년 11월 발간한 '간척백서'는 연안제방이 몽골군의 침입을 막는 동시에 그 안쪽으로 간척지가 개발돼 농작물을 생산했다고 설명한다. 이어 1248년엔 평안도 청천강 하구에 방조(防潮)제방이 건설됐고, 1253·1256년 강화도에 다른 간척사업이 이뤄졌다. 서기 330년 백제 벽골현(현 전북 김제시)에 제방 길이만 3.3㎞에 달하는 벽골제(碧骨堤)가 만들어졌다. 이런 기록을 볼 때 우리 선조들은 뛰어난 둑 쌓기 기술로 오래전부터 간척사업을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인 1818년 다산(茶山) 정약용이 펴낸 목민심서(牧民心書)엔 방조제·배수갑문 축조방법 등이 실려 있다.




1900년대 들어 간척사업은 개인 중심으로 이뤄졌다. 조선일보 제9대 사장을 지낸 계초(啓礎) 방응모(方應謨)도 훗날 민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언론·조림·육영(育英)과 함께 간척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계초는 1935년부터 경기도 화성군 팔탄면에서 2년여 동안 간척사업을 벌여 농장 100만평을 조성했다.


간척사업이 현대적 공법을 사용해 대규모로 이뤄지기 시작한 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0~1970년대였다. 이 시기엔 간척사업 선진국인 네덜란드로부터 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등 간척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1965년엔 김해·목포·서산 등 7개 지구 5만3271㏊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간척사업이 추진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세계 최장 33.9㎞의 방조제가 착공 19년 만에 완공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한반도 지도를 바꿨다. 한국의 국토 면적은 10만140㎢에서 간척 이후 10만541㎢로 0.4% 확장됐다. 간척사업을 통해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4만100㏊(호수 포함)가 새로 생기게 된 셈이다.


1960년부터 작년 말까지 총 1634개 지구(9만685㏊)에서 간척사업이 시행됐고, 현재도 7개 지구(4만4415㏊)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최형석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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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26/20100526033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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