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논란의 현장 타워크레인 월례비 명세 입수해보니.."충격!"
“한달에 최대 600만원…31개월간 17명에 6억 넘어"
타워크레인 기사 월례비 지급명세서 단독 입수
건설사, 매달 240만~600만원씩 월례비 지급
기사 17명, 31개월간 월례비·OT 수당 등 8억 챙겨
건설업계 "수십년 이어진 악습 적폐 근절돼야"
7월부터 전국 9개 지역 건설사들 월례비 지급 중단
#. 호남 지역 A건설사는 광주광역시 남구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타워크레인 기사 B씨에게 2016년 1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14개월 동안 매달 300만~540만원, 총 4240만원의 ‘월례비’를 지급했다. 월례비는 장비 대여료나 임금과는 별개로 추가로 주는 일종의 ‘뇌물(賂物)’이다. "우리 현장 일부터 빨리 처리해 달라"는 청탁 대가로, 업계에서는 ‘급행료’라고도 불린다. B씨는 월 450여만원의 임금에 월례비와 초과근무수당(OT)까지 합치면 월 1000만원 이상을 버는 이른바 ‘월천(月千) 기사’다. B씨를 포함해 이 현장에서 일하는 타워크레인 기사 6명이 같은 기간 ‘월례비’로 받은 돈은 모두 2억4440만원에 달했다.
그래픽=박길우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13일 단독 입수한 A건설사의 ‘월례비 및 초과근무 지급명세서’에 따르면 이 건설사는 2016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31개월에 걸쳐 건설 현장 4곳의 타워크레인 기사 17명에게 월례비로 총 6억2240만원을 지급했다. 한 달에 2000만원 가까운 돈이 가욋돈으로 지급된 것이다. 같은 기간 지급한 초과근무 수당 비용까지 합치면 8억4211만원에 달하는 금액이 임금 외 수당으로 지급했다. 그간 건설업계에서 월례비 형식의 뒷돈으로 지역별로 250만~500만원씩 지급한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그 구체적인 내역이 외부에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A건설사는 광주광역시 서구 S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도 타워크레인 기사 2명에게 2016년 9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모두 14차례에 걸쳐 매달 300만원씩 월례비 8100만원을 줬다. 동구 모 재개발 현장에서도 기사 5명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매달 240만~600만원씩, 11개월간 총 1억8140만원을 챙겼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지급된 초과근무 수당도 만만치 않았다. 2017년 착공을 시작한 광산구 B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는 기사 4명에 14개월 동안 4490만원에 달하는 초과근무 수당이 지급됐다. 1인당 초과근무 수당을 약 1120만원을 받아간 셈이다. 다른 공사현장 3곳에서 기사 13명에게 지급된 초과근무수당은 1억4781만원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일부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태업으로 작업 속도를 일부러 늦춰 초과근무 수당을 늘려 받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당시 현장 관리자 C씨에 따르면 이 건설 현장의 정규근무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다. 하지만 일부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초과근무 수당을 더 받기 위해 오전 6시쯤 현장에 나와 작업을 시작했다. 오전에는 초과 근무 수당이 2배다. 오후 역시 업무 속도를 일부러 늦춰 추가 업무를 자진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태업에 대해 항의할 경우 협박성 태업이 추가될 수 있어, 공기(工期)에 민감한 건설사는 작업목표를 맞추기 위해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며 잔업을 시켜야 했다고 건설사 측은 밝혔다.
A건설사 관계자는 "정규근무 8시간 동안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초과 근무를 자처해서 한다"며 "이와 달리 현장의 포크레인 기사나 전기·설비 기사들은 대부분 근무시간에 맞춰 일하고, 가끔 초과 근무를 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 5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소형타워크레인 사용 금지 조치와 임금인상 요구 파업으로 타워크레인들이 일제히 멈춰 있다. /연합뉴스
건설사들이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쩔쩔매는 이유는 이들이 ‘건설 현장의 갑(甲)이자 꽃’이기 때문이다. 아파트·빌딩 등 고층 건축물을 지을 때 없어서는 안 될 장비가 타워크레인이고, 이를 운용하는 게 타워크레인 기사다. 이들 없이 무거운 건축자재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건물을 지으려면 인건비는 물론 공사 기간 역시 길어질 수밖에 없다. 비용만 계산해도 많게는 몇십배 더 들어간다. 이 때문에 시공사 입장에서는 타워크레인 기사들 비위를 맞추는 게 공사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이런 배경에서 생겨난 게 ‘월례비’다. 건설업체 한 임원은 "초기에는 몇몇 기사들이 ‘뒷돈을 주면 잘 해주겠다’는 식으로 요구하던 것이, 이제는 시공사들이 알아서 챙겨줘야 하는 관례가 됐고 아예 추가 수당처럼 돼 버렸다"며 "공사현장에서 타워크레인 기사는 누구보다도 ‘막강한 권력’이 돼 있다"고 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한때 타워크레인 기사 1명이 받아가는 월례비는 1000만원이 넘었다. 철근·콘크리트, 시스템 동바리(천장 구조를 받치는 쇠기둥), 비계(飛階) 등 각 공정마다 업체로부터 월례비를 받아간 것이다. 한 건설사 임원은 "타워크레인이 멈추면 다른 공정 작업자 수십 명이 손을 놔야 하고, 입주 지연 등 손실이 수억 원 이상 발생한다"며 "하도급 업체들은 기사들에게 월례비와 초과근무 수당을 꽉 채워 주면서 일을 시킬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부울경 철근·콘크리트 협의회에서 오는 7월 1일부터 월례비 지급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공문. /부울경 철근·콘크리트 협의회 제공
최근 타워크레인 노조의 파업 당시 월례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일부 건설사들은 "월례비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더이상 끌려다닐 수 없다는 것이다. 전국 철근·콘크리트 협의회는 지난 11일 "월례비를 주지 않을 경우 협박성 태업도 서슴지 않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악습과 관행을 끊기 위해 7월 1일부터 부산·울산·경남·광주·전남·전북·대전·세종·충남 등 전국 9개 지역에서 월례비 지급을 중단하기로 최근 결정했다"고 밝혔다. 협의회에 소속된 9개 지역 철근·콘크리트 건설사는 모두 72곳이다. 특히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철근·콘크리트 협의회는 월례비 지급 중단 방침을 어기는 회원사에 대해서는 5000만원의 불이행 벌칙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전국 철근·콘크리트 협의회는 오는 18일 열리는 총회에서 전국적으로 월례비 지급을 모두 중단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총회 결과에 따라 서울, 경기, 대구 등 다른 지역 건설사들도 월례비 지급 중단에 동참할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협의회는 전국적인 월례비 지급 중단 운동과 함께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도 계획 중이다.
김우영 기자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14/20190614012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