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의 눈물...탈원전으로 적자났는데 정부가 전기료 또 깎아/ 한전에 부담 떠넘기며 정부만 생색내는 전기요금 개편안
한전의 눈물...탈원전으로 적자났는데 정부가 전기료 또 깎아
정부가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해 전기요금을 할인해주기로 했다. 한국전력 (25,700원▼ 300 -1.15%)안팎에선 탈원전으로 적자로 변한 상황에서 전기요금까지 할인하면 회사가 벼랑 끝에 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3일 '전기요금 누진제 TF'가 마련한 누진제 개편안 토론회를 갖고 3가지 방안을 발표했다. ▲현행 누진체계를 유지하되 여름철에만 별도로 누진 구간을 확대하는 방안(누진구간 확대안) ▲7~8월여름철에만 누진 3단계를 폐지하는 방안(누진단계 축소안) ▲연중 단일 요금제안(누진제 폐지안) 등이다. 개편안은 공청회와 전기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이달 말 최종 확정된다.
한전은 누진제 개편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기대했지만, 정부는 전기요금을 인하하겠다고 했다. 한전은 현재 월 200kWh 이하 사용자에게 최대 4000원을 할인해 주는 '필수사용량 보장 공제'의 폐지도 기대했으나, 산업부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전 소액주주들은 20일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한전 강남지사 앞에서 ‘한전 주가 하락 피해 탄원 및 김종갑 한전 사장의 흑자경영 촉구를 위한 소액주주 집회’를 열었다./안상희 기자
한전 "주주 이익도 대변해야"…정부와의 공식 석상서 첫 불만 표출
산업부가 제시한 3가지 전기요금 할인 방안이 실현되면 한전의 부담은 최소 961억원에서 많게는 2985억원까지 늘어난다. 지난해에도 정부가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면서 한전이 부담한 금액은 3587억원이다. 정부는 한전의 부담을 덜어줄 별다른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한전이 공기업인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급진적인 탈원전 정책을 시행한 후 한전은 저렴한 원전 전력 대신 값비싼 LNG(액화천연가스) 발전 전력과 신재생 발전 전력 구매를 확대했다. 이로 인해 한전은 지난해 2080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6년만에 적자였다. 한전은 올 1분기(1~3월)에도 6299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한전이 적자를 내는 등 갈수록 실적이 악화하자 주주들은 ‘한전 주가 하락 피해 탄원 및 김종갑 한전 사장의 흑자경영 촉구를 위한 소액주주 집회’를 갖는 등 항의하고 있다.
한전은 그동안 정부 정책에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전기요금 할인 방침을 밝히자 한전은 재무상황 악화를 우려해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권기보 한전 영업본부장은 "한전은 뉴욕증시에 상장된 기업인데, 작년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누진제 완화로 추가 부담을 지는 것에 이사진은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뿐 아니라 주주 이익도 대변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에너지시스템공학부)는 "전력산업을 이끌고 있는 한전 입장에서는 상장기업으로서 적자를 벗어나기 위해 적정 수준의 에너지믹스(발전원별 비율·energy mix)를 제안해야 한다"며 "한전이 목소리를 더 내고 정부도 이를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탈원전에 이어 전기요금 인하까지…"경제논리에 맞지 않은 정책"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기요금을 할인하며 생색을 내지만, 한전의 적자는 결국 전기요금 인상과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지적한다.
손양훈 인천대(경제학과) 교수는 "여름철 전력 피크 때는 전기를 생산하는데 평소보다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면서 "전기를 많이 쓰는 가구에 오히려 요금을 깎아주는 것은 경제논리에 맞지 않다"고 밝혔다. 손 교수는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이 적자가 발생했는데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고 도리어 내리는 것은 전력정책 방향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이 경영개선을 이루고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최성민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학과장은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현실적인 방안은 원전을 정상 가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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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한전 앞날…늘어나는 차입금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전은 올해 당기순이익은 적자(4599억원 순손실)를 지속할 전망이다.
신지윤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요금 인상은 물론 주택용 누진제, 산업용 요금체계 개편도 되지 않은 상황인데, 한전의 차입금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전의 차입금은 2014년 61조가 넘었으나 삼성동 부지매각과 국제유가 하락에 힘입어 2016년 53조원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현 정부가 급격한 탈원전 정책을 실시하면서 한전의 차입금은 2018년 말 58조8000억원으로 다시 늘었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과)는 "한전이 3년 연속 적자를 내면 국제신용평가회사가 매기는 신용도가 떨어져 결국 부담해야할 이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며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은 한전의 전력 구매단가를 높이고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송전망 투자 비용을 확대해 한전을 벼랑끝으로 몰고 있다"고 말했다.
안상희 기자 조선비즈
한전에 부담 떠넘기며 정부만 생색내는 전기요금 개편안
[사설]
정부가 지난 3일 공개한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은 한국전력에 비용을 전가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정부는 누진제를 완화 또는 폐지하는 3가지 안을 내놓았다는데 모두 요금 할인 효과가 있다. 1안은 여름철에만 누진제 구간을 확대해 총 1629만가구가 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2안은 현행 3단계 누진제를 2단계로 축소해 전기료 폭탄을 없애겠다는 안이다. 3안은 누진제를 아예 폐지하는 것으로 전기요금이 증가하는 가구가 많아 현실성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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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안을 채택하더라도 사용량 기준으로 1911억~2985억원의 요금 할인액은 한전이 부담해야 한다. 한전은 작년 여름에도 2개월 요금을 인하한 탓에 3600억원의 비용을 부담했다. 그러지 않아도 한전은 올 1분기 연결기준 6299억원 적자를 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액화천연가스(LNG) 등 원료 가격 급등 탓이다. 자회사 실적을 빼면 영업손실은 2조4114억원으로 늘어난다. 이대로 가면 올해 영업손실 2조4000억원, 당기순손실 1조9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은 공기업이지만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이기도 하다. 외국인과 소액주주 지분도 적지 않다. 한전이 올 1분기 대규모 적자를 발표하자 일부 소액주주들은 정부 정책을 비난하고 흑자경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누진제 개편으로 전기요금이 인하되면 전력소비가 늘어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가정용 전기요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면 1인당 전기사용량은 선진국들보다 많다. 요금을 내릴 게 아니라 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전기요금이 싼 상태에서 전력소비가 늘어나면 한전 적자는 더 심해지고 그 부담은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결국 정부의 누진제 개편안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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