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반대하던 DJ·盧 집권뒤 입장 바꿔···文도 그러길"
산업과학 Construction,Science/에 너 지 Energy2019. 5. 24. 20:50
한국 원자력계 원로, 김병구 전 IAEA 기술협력국장
“원자력발전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큰 흐름엔 반대하지 않지만, 당장 기후변화ㆍ미세먼지 앞에 대안이 없습니다. 또 지금처럼 원전기술을 죽이는 건 절정에 오른 수출 경쟁력을 해치는 자살행위입니다. ”
김병구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가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본지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전남 영광의 한빛 3,4호기 원자로 설계 사업책임자로 한국형 원전 국산화 기술 자립에 기여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노(老) 공학자는 조심스럽다. 자칫 감정대로 얘기하다간 후배들이 정부의 미움을 살까, 미적지근하게 얘기하면 ‘탈(脫) 원전’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리지 못할까 염려하는 마음에서다.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앞에서 김병구(75) 전 국제원자력에너지구(IAEA) 기술협력국장을 만났다.
김 전 국장은 지난 22일 제주에서 열린‘원자력 60주년’기념식을 앞두고『제2의 실크로드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한국 원자력연구 및 발전소 건설의 역사와 아랍국가들에 대한 얘기를 담았다. 그는 한국 원자력계의 원로다. 1975년부터 30년간 원자력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정년퇴직한 뒤 IAEA를 거쳐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의 칼리파국립대 원자력공학과에서 아랍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3년부터는 사우디 원자력신재생에너지청에서 자문관으로 5년간 근무하고, 지난해 초 귀국했다.
3세대 대형 원전인 APR1400이, 요르단에는 한국이 지어준 요르단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 JRTR이 들어선 곳이다. 사우디에도 한국의 소형 원전인 스마트원전이 들어설 예정이다. 김 전 국장은 “30여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기술자들이 원전 계통 설계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야 했다”며 “이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제3세대 신형 원자로인 APR1400이나 소형 스마트 원전이 태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을 보유한 나라 가운데 어떤 나라도 단 20년 만에 자체적인 원전기술을 개발해 다른 나라에 수출한 나라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 전 국장은 원전 수출을 100년 프로젝트라고 말한다. 설계 등 건설 준비에 10년, 건설공사에 10년, 운전 60년 해체 20년의 계산이다. 우선은 사우디ㆍUAEㆍ요르단에서 100년의 프로젝트가 시작됐지만, 향후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사우디의 경우 한국 원전기술을 배워 한국과 함께 그들의 아랍 형제국들에 원전을 건설하는데 공동 진출하자는 복안을 세워두고 있다.
마침 지난 13일은 그간 탈 원전주의자로 알려졌던 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이 스마트 원전 건설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사우디를 방문 중이었다. 정부는 ‘대선 공약대로 국내 원전은 줄여나가지만, 해외수출은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전 국장은 “신규 원전사업을 구상 중인 나라들이 현재 한국에서 진행 중인 탈 원전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한국 내 원전 관련 산업체들의 기술기반이 무너진다면 한국형 원전을 고려하고 있는 나라들로서는 재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염려했다
김병구 박사는 2013년부터 사우디 정부 산하 원자력/신재생에너지청에서 원자력 자문관은 5년간 근무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국내에 원전 짓지 말라며 수출 장려하는 건 앞뒤 안 맞아"
현 정부는 이제 공식적으로 ‘탈 원전’이란 표현 대신 ‘에너지 전환’이란 말을 쓴다. 하지만, 국내 원전 정책에 관한 한 처음과 바뀐 것은 없다. 더 이상의 원전을 건설하지 않고,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은 곧바로 폐쇄한다는 방침이다. 김 전 국장은 “문 차관이 이끌고 있는 사우디에서의 스마트 원전 세일즈가 성공하길 바란다”며 “ 그런 과정에서 현 정부가 집권 초기 거세게 몰아쳤던 탈 원전 정책이 바뀔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가 말하는‘에너지 전환’의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봐서도 그렇고 환경적으로 깨끗한 신재생에너지를 늘려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가 지적하는 문제는 정책의 모순과 에너지 전환의 속도다. 그는 “국내에선 원전을 짓지 말라고 하면서 수출은 장려한다는 게 앞뒤가 안 맞다”며 “더 이상의 신규원전은 건설하지 않더라도 노후 원전 하나를 폐쇄하면 이를 대신할 새 원전을 하나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원전 관련 국내산업도 살아나고, 수출도 지속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논리다. 수출이 아니더라도 원전은 한국에 필요하다고 그는 역설했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현재론 원전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원전 반대 안 했다"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은 폐쇄한다’는 정부의 방침도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김 전 국장은 “전 세계적으로 원전 수명연장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며“일반 플랜트와 달리 원전은 소모품의 시한이 지난 것을 교체해가면서 80년까지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60년대에 건설한 원전을 아직 운용하고 있는 미국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한국이 만약 원전을 도입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김 전 국장은 “우리나라에 원전이 없었더라면 산업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동남아 후진국과 비슷한 신세가 됐을 것”이라며 “원전에 대한 이승만ㆍ박정희 대통령의 선견지명과 결정이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그는 김대중ㆍ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언급했다.
“두 전작 대통령도 집권 전에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영향 받아 원전을 반대했는데 집권하고 나서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문 대통령도 시간이 지나면 생각을 바꾸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니 그러기를 바랍니다. 미세먼지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지만, 원전은 이제 한국에 남은 몇 안 되는 대표적 수출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대전=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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