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탈원전 적자'에 산불 피해보상 가능성 커져..."전기값 오르나"
산업과학 Construction,Science/에 너 지 Energy2019. 5. 2. 22:36
지난해 美 캘리포니아 대형 산불 낸 전력회사 PG&E는 ‘파산’
지난 4월 4일 발생한 강원도 고성·속초 일대 대규모 산불과 관련해 한국전력(015760)대표가 민사적 책임을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을 해, 한전이 향후 수천억원에 이르는 보상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영향으로 지난해 적자를 기록한 한전이 대규모 산불 피해 보상 책임까지 지게 될 경우, 재무상황이 악화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지난 24일 오전 강원 고성군 토성면사무소를 방문한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이 산불 이재민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 24일 강원도 고성군의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가 고성·속초 산불 이재민들에게 사과했다. 이 자리에서 김 사장은 "경찰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피해 주민, 지자체 등과 협의해 한전이 어떤 조치를 해야 할지 논의하겠다"며 "형사적 책임이 없다 할지라도 민사적으로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김 사장의 발언과 관련, 에너지 업계에선 "민사적 책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고성·속초 산불에 대한 경찰 수사는 진행 중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지난 5일 한전이 관리하는 전신주에서 불티가 튀어 불이 발생했다는 목격자 등을 바탕으로 해당 전신주의 부속물 일체를 수거해 정밀 감정했다. 국과수는 지난 18일 특고압 전선이 바람에 떨어져 나가면서 발생한 '아크(전기적 방전 때문에 전선에 불꽃이 발생하는 현상) 불티'가 산불 원인이라는 결과를 내놨다. 강원지방경찰청은 지난 23일 한전 속초지사와 강릉지사 두 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강원도 고성군은 25일 집계한 이번 산불로 인한 피해규모는 이재민 413세대, 959명으로 피해액은 2198억원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고성 산불로 함께 피해를 입은 속초를 포함해 피해 보상액, 건물 복구 비용까지 합하면 피해액은 3000억~4000억원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최종 수사결과에 따라 한전의 책임 범위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아직 한전이 부담할 비용을 예측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한다. 산불 원인이 한전의 관리 과실 때문인 것으로 밝혀지면, 한전의 부담도 커질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전은 지난해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전력원가 상승으로 208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6년 만에 적자를 냈다. 한전은 1일 공시한 사업보고서에서 "에너지믹스 전환(재생에너지 증대와 원전 비중 축소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을 위한 전력시장제도 개편에 대비해 대규모 설비투자와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소요되는 비용의 증가 등으로 연결회사의 재무여건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한전은 "연료가격 급상승에도 정부가 연료비 상승 영향을 상쇄하는 수준까지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는 경우 연결회사는 영업손실이 발생하고 현금흐름이 악화될 수가 있다"고 했다.
지난 4일 오후 7시 17분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 산불이 확산돼, 시민들이 열기·연기를 피해 차량 뒤에서 대피하는 모습.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적 부진에 이어 한전이 산불 관련 보상이나 배상, 소송에 휘말린다면 결국 전기요금 인상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는 "한전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후 LNG(액화천연가스) 발전 연료비 증가, 신재생 에너지 구매비용 증가, 전력망 보강, 한수원 등 계열사의 적자 보존 부담이 생긴 상황에서 산불에 대한 보상과 배상을 해야한다면 결국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많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 교수도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지만 만약 한전이 산불에 대해 배상 혹은 보상을 해야한다면, 탈원전으로 적자 상태인 한전입장에서는 재무압박이 심해질 것"이라며 "이것이 전기요금 인상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에너지 업체가 산불 발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파산한 경우도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강풍으로 전선이 탈락하면서 산불이 나, 86명이 사망하고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전기·가스업체 PG&E(퍼시픽가스앤드일렉트릭)의 전기시설이 발화 원인으로 지목받았다. 산불 발화 책임에 따라 회사 측은 105억 달러(약 11조8000억원)의 배상금을 물게 됐다. 민사소송까지 합치면 수천억달러의 배상를 해 주어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PG&E는 연방파산법 11조(챕터 11)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을 했다.
한전 측은 "형사적인 책임이 없다 할지라도 민사적으로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김 사장의 발언이 꼭 보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아직 산불에 대한 경찰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보상, 배상 등을 논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전 측은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 수사 결과에 따라 지원 문제 등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안상희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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