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도 힘든데...건설업계 ‘3중고’ 근무시간·분양가 규제에 원가공개까지


수주도 힘든데...건설업계 ‘3중고’ 근무시간·분양가 규제에 원가공개까지


   국내외 건설 경기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건설업계가 갈수록 늘어나는 규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정부는 건설사에 분양 원가를 더 자세히 공개하도록 법규를 개정하면서 공사비 상한선도 최대한 낮추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같이 건설업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 규제 때문에 건설 기업의 운신의 폭도 더 좁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르면 이달 중순부터 민간 건설사들은 공공택지에 지은 아파트를 분양할 때 공사 종류별로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1월 발의한 ‘공동주택 분양가격의 산정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이 진통 끝에 대통령 직속기구인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건설사 관계자들은 "사실상 영업비밀을 공개하란 얘기나 마찬가지"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민간 건설사들도 공공택지에서 아파트를 분양할 때 62개 공사 항목의 원가를 밝혀야 한다. 토지 구입비와 이자 등을 포함한 택지비 △토목·건축·기계건축 등 공사비 △설계·감리 같은 간접비 등 현행 12개 항목을 공종별로 잘게 쪼갰다. 정부는 아파트 공사 종류별로 실제로 드는 비용을 공개하면 건설사들이 분양가격을 부풀리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건설업계가 불만을 갖는 이유는 영업전략이 노출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대형 건설사일수록 인건비나 간접비 등 비용구조가 복잡하고 품질 관리를 위해 자재 종류나 설계 디자인 등 다양한 요소에 걸쳐 비용을 많이 쓰는데, 공사 종류별로 원가를 공개하면 특정 기업이 어떤 단계에서 어떻게 비용을 절감하고 이익을 내는지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이를 두고 "반도체 부문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정부가 삼성전자에 ‘이윤을 너무 많이 남기는 것 아니냐, 원가를 공개하라’고 압박하지는 않는다"며 "(분양원가 공개 강화는) 어떤 동네 슈퍼마켓이 장사가 잘되는 걸 보고, 물건마다 얼마에 사와서 얼마에 팔고 이익을 얼마나 남기는지 전부 공개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했다. 


대기업 계열 건설사 한 관계자는 "건설사마다 공종별로 원가율이 공개되는 것과 다름 없는데, 자재 구입 비용 등도 영업 경쟁력과 밀접한 일종의 대외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전략을 건드리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대형 건설사들은 수익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들면 공공택지 비율이 높은 지역의 아파트 건설사업에 쉽게 뛰어들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앞으로 인상되는 기본형 건축비 자체는 건설사 실적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기본형 건축비는 땅값을 제외한 총 공사 비용으로,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받는 지역의 민간 아파트 분양 사업에 적용된다. 정부가 매년 3월과 9월에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산정하는 일종의 건축비 인상 상한선이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기본형 건축비가 시공사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은 맞지만, 애초에 정부가 인상하는 수준이 물가상승률 정도에 불과한 데다 건축현장에서는 (시공 건설사가) 하도급 계약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있어 기본형 건축비가 인상돼도 건설사 실적에 별다른 호재가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현장 근무를 빼놓을 수 없는 건설업 특성상,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부담도 남아 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프로젝트 단위로 주로 사업이 이뤄지는 건설업계의 경우 공사기간을 줄여야 할 때 근무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1년 단위로 근무시간을 산정하는 방식은 잘 맞지 않는다"며 "사업기간이 대략 3년이라고 보면, 1년 6개월은 집중해서 일하고 남은 1년 6개월은 근무시간을 줄이는 식으로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게 (업종 특성에) 적합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최근 대법원이 육체노동이 가능한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 조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해서도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가 시기상조라는 게 건설업계 분위기다. 공식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기획·홍보 등 사무직군과 달리 현장 근무가 많은 직군은 60세를 넘겨 일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정년을 늘리라는 정책을 내놓으면 검토는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건설업계에서 단순 사무∙서비스 직군을 제외한 나머지 현장 분야에서 일을 할 만한 61~65세 근로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한빛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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