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국사당에서 [허영섭]

인왕산 국사당에서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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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국사당에서

2019.02.22

인왕산 둘레길을 오르다 보면 남서쪽 등성이 중턱에서 국사당(國師堂)과 마주치게 된다. 독립문역이나 무악재에서 가벼운 걸음걸이로도 대략 2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태조 이성계가 호국도량으로 세웠다는 인왕사(仁王寺)의 계단을 따라 바로 뒤쪽에 자리 잡고 있기에 처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굿당인 국사당과 인왕사가 같은 울타리에 속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다. 또 그 계단 언덕에 위치한 선바위까지 감안하면 종교적 의미에서 각기 다른 영역에 속해 있으면서도 서로 어울려 미묘한 조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국사당의 원래 자리는 여기가 아니다. 남산 꼭대기, 지금 팔각정이 있는 곳이 원래 자리다. 이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에 도읍을 정한 뒤 한양을 지키는 당집으로 세워 놓고는 산신제를 지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임금님이 나라 제사를 지내던 당집이라는 뜻에서 ‘국사당’이라는 현판을 달게 됐을 것이다. 나라와 도읍을 지키는 수호신사였다는 사실을 되새길 만하다. 한편으로는 ‘목멱신사’라는 별칭도 지니고 있었다. 남산의 옛 이름을 따른 것이니, 지금은 잊힌 기억에 지나지 않는다.

이 국사당이 남산에서 지금 자리로 옮겨진 데서도 민족의 수난사가 드러난다. 일제의 소행이었다. 총독부가 남산에 신궁을 지으면서 그 꼭대기에 자리 잡은 국사당의 존재를 용인할 수 없었을 터다. 조선신궁이 지어진 것이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 시절이던 1925년. 이 땅의 터줏대감과 현해탄 건너 들어온 외래 귀신의 다툼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선신궁은 광복 이후 철거됐고, 그 자리에 오랫동안 식물원이 들어섰다가 지금은 한양도성 성곽 복원작업이 진행되는 중이다.

국사당이 비록 남산에서 옮겨왔다 해도 지금 자리에 터 잡은 연륜도 벌써 90년이 지났다. 몇 해만 지나면 어느덧 100년이다. 한 뼘 남짓 좁은 마당 귀퉁이에 세워진 장승의 초췌한 모습에서 무관심한 세월을 짐작하게 된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라는 글씨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밑동조차 말라버린 댓돌 위의 등나무도 한때는 나름대로 계절 따라 푸른 줄기와 이파리를 뻗었을 것이다. 가끔씩 인왕산 둘레길을 오르내리다가 그 안에서 들려나오는 치성소리에 국사당의 존재감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그래도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머리를 스치는 의문이 없지 않다. 원래 자리였던 남산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얘기가 거의 들려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제의 침략으로 희생양이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후의 처리에 대해서는 서로 팔짱을 끼고 있는 셈이다. 지금 자리에서나마 지난날 수호신사로서의 명예를 찾아줘야 한다는 논의조차 없는 상황이다. 일제에 의해 상처를 입었던 민족적 자존심이 이 국사당에 있어서만큼은 예외가 아닌가 싶다. 국가민속문화재 지정만으로도 할 일을 다했다는 분위기인 것 같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우리 민족 문화재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진다. 경복궁 앞부분을 허물어내고 들어섰던 총독부 청사가 완전 철거됐으며, 그 과정에서 동문인 건춘문 쪽으로 옮겨졌던 광화문도 일찌감치 제자리로 돌아왔다. 왕조의 정궁이 원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성곽 복원작업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덕수궁을 감싸고 돌아가는 ‘고종의 길’도 새로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국사당에 대해서는 왜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일까. 현재 무속 당집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불리하게 작용했을 법도 하다. 문화재라고 떠받들기에는 어딘지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사당이 세워졌을 당시에는 민속신앙이 백성들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꺼림칙하다면 문화재청이나 서울시의 직접 관리하에 박물관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 자리로 옮겨지면서 지하 기초도 없이 자연암반 위에 그대로 기둥이 세워졌다는 사실이 측은하다.

우리 정부는 불행했던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가 자기네 할 바를 다했다는 입장이고 보면 아무리 추가적인 사과 표명이 이뤄진다고 해도 진정성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엎드려 절받기인 만큼 상대방으로서도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사당처럼 일제에 의해 훼손됐는데도 우리 스스로 그 존재 가치를 가볍게 평가하면서 사실상 방치하는 경우가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지금의 모습이 남산 정상부에 자리 잡았던 상징성에 비한다면 너무 초라하다는 뜻이다. 인왕산 둘레길에 마주친 역사의 현장에서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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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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