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체제에서의 한국 [임종건]

신냉전 체제에서의 한국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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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체제에서의 한국

2019.02.21

중거리핵전력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 INF)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간의 각축으로 세계가 다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80년대 말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미국과 소련이 벌렸던 냉전 시대로 되돌아가는 듯한 분위기이다.

신냉전은 미국 러시아만이 아니라 중국까지 포함되는 개념이어서 과거 미소냉전에 비해 구조적으로나 지역적으로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과거의 냉전이 미국과 동서유럽의 문제였다면 신냉전에선 아시아까지 범위가 확장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러시아가 신형 중거리 순항미사일인 이스칸데르 미사일 등을 실전배치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INF이행을 중단시켰고, 러시아가 시정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6개월 뒤 INF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미국이 루마니아에 배치한 미사일 발사체인 이지스 어쇼어가 INF 위반인데, 이를 폴란드에까지 확대배치하려 한다며 미국과 똑같은 조치를 취하겠다고 응수했다. 현재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와 루마니아는 과거 소련의 동맹국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미사일의 95%가 중단거리 미사일이라며, INF에 중국을 포함시키는 조약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중국 측은 자국의 보유 미사일 수가 미·러에 비해 현저히 적고, 방어적 용도라는 이유로 INF 포함에 대한 거부의사를 밝혔다.

INF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1987년 12월 체결한 조약이다. 사정거리 500㎞~5,500㎞의 중단(中短)거리 지상발사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등을 감축하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이에 앞서 미소는 1, 2차 전략무기제한협상(SALT)을 통해 상대국의 심장부를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미사일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장거리폭격기 등의 수를 제한하는 SALTⅡ협상을 1979년 6월 체결했다.

소련은 SALT협상 체결 후 장거리 미사일 대신 서유럽을 사정거리로 하는 중단거리 미사일개발로 방향을 바꿨다. 나토동맹국들 사이에선 미국이 자국의 안전만 챙기고 동맹국의 안전을 외면했다고 불만이 고조됐다. 미국이 소련과 INF 체결에 나서야 했던 중요한 배경이다.

미국이 이제 와서 INF를 탈퇴하겠다는 것은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능가하는 신형 핵미사일 개발에 나서고, 개발된 핵무기의 실전배치도 늘리겠다는 뜻이다. 그 점에선 러시아나 중국도 마찬가지다. 세계는 다시 핵무기 경쟁에 빠져들게 된다.

아시아에서의 핵무기경쟁은 중국 외에도 북한의 핵개발로 이미 심각한 국면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자국의 동부지역에 배치한 핵미사일 중엔 미국을 겨냥한 ICBM도 있지만 대부분 한국, 일본, 대만을 겨냥한 중단거리 미사일이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이고, 요즘은 뜸하지만 오래전부터 한국 미국 일본이 공격목표라고 공언해 왔다.

중국과 러시아가 INF 이행에 불응할 경우, 미국은 일본과 한국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때 했던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허용’ 발언에 버금가는 중국 러시아는 물론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반격 카드다. 한국에서 철거했던 미군의 전술핵 재배치에 관한 것이어서 북핵해결에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핵무기의 위협이 무기의 성능 강화나 보유량의 증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핵전쟁은 지구의 파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인식이 SALT INF 외에 핵확산금지조약(NPT)이나 핵실험금지조약(CTBT)을 낳았지만 ‘핵 없는 세상’은 아직도 요원하다.

말이라도 ‘핵 없는 세상’을 말한 것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었지만, 그 역시 미국의 핵무기 성능 강화에 앞장섰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미소 냉전시대의 G2의 위상을 중국에 빼앗기고 나서 그것을 되찾기라도 하려는 듯 우크라이나의 크리미아 반도 점령에 이어 핵무기 강화 등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비핵보유국들이 INF, SALT에 박수를 보내고, 근본적으로 자신들에게 불평등 조약인 NPT, CTBT에 서명과 비준을 한 것은 핵보유국들의 핵무기 감축을 통해 끝내는 핵 없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또 많은 나라들이 핵보유국이 된다면 사소한 국지적 분쟁에서도 핵무기가 사용되고, 그것이 결국 핵전쟁이 될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한 결과라고 하겠다. 

그러나 핵보유국들은 이런 인류적 염원을 외면한 채 비핵보유국들의 핵개발에 내정간섭적인 개입을 하면서, 자국의 핵무기 우위 확보만을 위한 경쟁을 일삼아 오다 INF사태를 맞은 것이다. 이런 핵보유국들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태도를 빌미삼아 일부 비핵보유국들이 핵개발에 나섰고, 그 중의 하나가 북한이다.

핵보유국 사이에서 핵무기 개발의 무한경쟁 시대가 다시 시작된다면 비핵보유국들이 강구할 자구책도 핵무기 개발이다. 특히 한국은 핵무장의 완성을 선언한 북한의 존재 때문에 핵을 보유해야 할 필요와 이유가 있는 나라이다.

오는 27~28일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의 비핵화를 목적으로 2차 북미회담을 갖는다. 이 회담에서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이룰 수 없다면 한국은 국제사회에 핵무기의 개발 및 보유 의지를 공식 천명할 필요가 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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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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