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제재, 창의와 모험 부정 아닌가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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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 제재, 창의와 모험 부정 아닌가
2018.12.04
이건희 회장이 건재했던 2011년 삼성은 전자, 반도체를 이을 신수종 사업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를 창립했습니다. 삼바는 낯선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생산을 맡고, 개발을 전담할 자회사로는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를 세워 나스닥에 상장된 미국의 바이오 벤처 바이오젠과 삼바 85대 바이오젠 15의 비율로 3,300억 원 규모의 합작 투자를 했습니다. 바이오젠은 에피스의 성공에 대비하여 지분을 ‘50%-1주’까지 원가로 취득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을 받았습니다. 실적이 단기간에 못 따라주자 바이오젠은 투자를 최소화했고 여러 번 에피스 증자에 불참하여 지분은 5퍼센트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에피스는 증권선물위의 판단과 달리 삼바의 종속회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에피스가 2015년께부터 유럽과 한국에서 바이오 시밀러(복제 신약)를 허가받자 전망이 밝아졌습니다. 삼바는 바이오젠이 그 무렵 콜옵션 행사를 원한다는 의향서를 보내왔으며 금융감독원에도 이를 보여주었다고 밝혔습니다. 삼바는 이에 에피스를 ‘종속 회사’에서 ‘관계 회사’로 바꾸고 2015 사업연도부터 회계 기준도 변경합니다. ‘종속 회사’에 따른 원가 평가 방식을 공정가격으로 전환했죠. 회계법인은 에피스를 5조 2,726억 원의 가치로 평가했고 삼바는 바이오젠 지분액과 세금을 뺀 2조 원 정도를 순익으로 잡았습니다. 삼바는 2016년 11월 코스피에 상장했습니다. 나스닥을 고려했으나 금융위원회와 증권거래소 등의 권유로 적자기업으로서 코스피에 특례 상장했습니다. 특혜 상장이다, 아니다, 말이 많았지만 미래 성장이 기대되는 기업을 유치하려고 편의를 주었다는 것이죠. 액면가 2,500원 한 주를 13만 6,000원에 공모해 45배의 청약이 들어왔죠. 성장 전망을 낙관한 투자자들이 몰려 한때 최고가 60만 원, 시가총액 3위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7월 증권선물위는 이런 삼바에 ‘연결대상 범위 관련 회계 처리 기준 위반’이 있다면서 최고경영자와 재무 책임자의 해임 권고, 재무제표의 수정, 검찰 고발, 80억 원의 과징금과 담당 회계법인의 과징금 등을 결정했습니다. 증권거래소는 시가총액 22조 원으로 랭킹 7위인 삼바 주식 매매를 정지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습니다. 삼바는 부당하다며 행정소송과 함께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증선위의 제재 이유는 삼바가 콜옵션을 가진 바이오젠과 에피스를 공동 지배하고 있어 지분법으로 회계처리를 해야 하는데도 ‘종속 기업’으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했고 2015년부터 에피스를 ‘관계 회사’로 바꾸어 지분을 과대평가하면서 이전의 결산은 수정하지 않았다는 것 등입니다. 전문가들은 삼바 주식은 초고가라서 증자를 할 수 있어 자본 잠식을 막으려는 회계는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간 일각에서 삼바의 가치가 과대평가돼 경영 승계와 관련이 있다는 ‘분식’ 주장을 해왔습니다. 국회의원 시절의 여비서와의 외유 추문에 낙마한 참여연대 출신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은 삼바 규명을 첫 과제로 내걸었죠. 금감위는 1년 반 새 두 번이나 적정하다던 삼바 회계 처리를 세 번째에 뒤집었습니다. 고친 게 다행일까요. 경제학자들은 삼바 사태 토론회에서 바뀐 것은 정권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삼바는 외부 자문으로 적법한 회계로 처리했다고 주장합니다. 기업 공개 절차도 까다롭고 매해 외부 감사를 받으며 감사 의견은 금감원의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해 누구라도 열람합니다. 회계 기준을 위반했다면 묵과한 금융 감독기관도 면책될 수 없을 겁니다. 경제학자들도 머리가 터질 것 같다는 삼바 문제는 분식의 문제가 아니라 회계 기준 적용의 문제라고도 주장합니다. 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앞장서서 회계 규칙을 미국, 일본, 중국 등이 사용하는 보수적인 K GAAP(Generally Accepted Accounting Principles)에서 재량권이 넓은 국제회계기준(IFRS)으로 바꾼 게 화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기업 처지에서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자유시장경제의 국제회계기준이라면, 기업의 실질 가치를 반영하도록 회계는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게 타당하죠. 한 기업의 미래 가치가 얼마냐 하는 것은 관료들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 기업 평가 전문가들의 몫입니다. 당국이 기업 평가와 회계에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코스피나 코스닥 기업들이 도산할 때 손해를 본 투자자들에게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바이오젠의 실제 콜옵션 행사는 2018년인데 왜 회계는 2015년부터 변경했는지, 5조 원이 넘는 관계 회사의 지분 평가액은 적절한지가 더 중요하다는 학자도 있습니다. 부는 악이라는 시대의 고정관념으로 혹시 삼바의 미래 가치에 질투심이라도 생겼나요? 올해 5월 노무라증권은 에피스의 가치를 23조 원, 삼바 가치를 33조 원으로 평가했습니다. 2015년 평가가 과장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어느 정도의 투기는 필요악입니다. 1602년 주식회사를 최초로 만든 네덜란드에서 미래 수익을 겨냥한 투기가 판을 쳤습니다. 주가를 올리려고 주식회사들은 주식 매입 자금을 대출했고 사람들은 올라가는 주식을 팔아 빚을 갚고 차익을 챙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주식이 대중의 품에 처음 안긴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기업공개촉진법과 종업원지주제 덕분입니다. 2000년 초 국가 부도라는 절망적 분위기에서 주식 대중화 열풍이 불었습니다. 이익치라는 증권사 최고경영자는 ‘바이 코리아’를 외치며 코스피가 3,000까지 오른다고 전도했고 많은 국민이 주식에 뛰어들어 1,000포인트를 뚫었죠. 이는 벤처 창업과 코스닥 활성화에 이바지했지만 일부 부실기업 주식은 휴지쪽이 되어 투자자들에게 부와 눈물을 함께 안겼습니다. 이후에도 코스닥에 숱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스러운)’ 기업들이 순익이나 성장성과 상관없이 ‘뻥튀기’로 상장하여 사주들에게 떼돈을 벌어주었고 일확천금을 노린 개미들은 제물이 되었습니다. 증권 금융 당국은 회계를 뒤늦게 트집 잡지 말고 사전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경제는 예측 가능성이 생명이니까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연구개발비가 자산이냐 부채냐를 놓고도 논란이 일었습니다. 바이오는 미래의 먹거리죠. 원자력발전도 안 돼, 바이오도 투기야, 그럼 뭘 먹고 살까요. 삼바가 황무지 인천 송도에서 세계 1위 규모의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CMO) 기업으로 큰 비전을 격려는 못할망정 싹을 짓밟지는 말아야죠. 삼바의 개인 투자자는 약 8만 명이고 일부가 소송을 준비한답니다. 비슷한 지분의 외국인들은 투자자-정부 소송(ISD)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지난 11월 바이오젠은 약 7억 달러(7,595억 원)를 삼바에 주고 에피스 콜옵션을 행사해 삼바와 2주 차이의 대등한 지분이 되었는데 그 대응도 변수입니다. 재판은 길게 7년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삼바는 상장 폐지라는 최악의 상황이라면 나스닥이란 ‘큰물’로 갈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옳았지만, 지금은 틀렸다…”는 식으로 정치 논리가 경제를 정권에 따라 춤추도록 지배하려 했다고 밝혀진다면 관련자들은 경제 문제를 떠나 포토라인에 줄줄이 서서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릅니다. 기업은 국부와 고용을 창출하는 소중한 자산이고 경제는 미래를 낙관하는 자들의 몫입니다. 창의와 모험을 경시하는 듯한 혼란스러운 시대의 자(尺)를 들이대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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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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