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빗물마을 사업, '녹물'만 남겼다
서울시 빗물마을 사업, '녹물'만 남겼다
45억 투입
물 아껴 쓰자고 만든 '빗물저금통'
불편해서 쓰는사람 없고
침수예방 시설은 물난리 못막는데
市 "22억 더 들여 확장"
'이름뿐인 빗물마을'
서울시가 3년간 45억원을 들여 조성한 '빗물마을' 사업이 지역 주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물을 아껴 쓰자는 취지로 만든 300만원짜리 '빗물저금통'은 사용하는 주민이 적어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 주민들은 "물 조금 아끼려고 밖에 나와 빗물을 퍼가야 하느냐"고 한다. 빗물을 땅속으로 스며들게 해 침수를 예방한다는 투수(透水) 시설 설치에도 수십억원이 들어갔지만 최근 폭우로 인한 물난리를 막지 못했다. 수십억 혈세가 들어가는 사업의 설계가 부실해 '이름뿐인 빗물마을'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빌라 담장 안쪽 ‘빗물저금통’에 먼지가 쌓여 있다. 오래 쓰지 않아 수도꼭지를 돌리자 녹물이 나왔다. 빗물저금통은 건물 옥상에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 주민들이 쓸 수 있는 시설물이다. 제기동 빗물마을에 14개가 설치돼 있다. /오종찬 기자
지난 1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빌라 담장 안쪽에는 먼지와 낙엽에 덮인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에 달린 수도꼭지를 돌리자 누런색 녹물이 쏟아져 나왔다. 옥상에 떨어지는 빗물이 관을 타고 상자에 모이면 주민들이 받아 쓸 수 있는 '빗물저금통'이다. 지난해 서울시가 제기동 일대를 빗물마을로 선정한 뒤 야외나 주택 옥상에 설치한 14개 중 하나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매년 성북구, 동대문구, 양천구 등 3~4곳씩 선정해 올해까지 총 10곳에 빗물마을 조성 사업을 벌였다. '모아 놓은 빗물을 활용해 물 절약을 실천할 수 있다' '빗물을 땅속으로 스며들게 해 침수를 예방할 수 있다'고 공고를 내 자치구로부터 신청을 받았다. 빗물저금통 50여개를 설치하는 데 1억6000만원 등 총예산 45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야외에 설치된 빗물저금통 대부분은 주민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다. 주민들은 구조적인 불편함을 호소한다. 제기동 주민 강모(63)씨는 "물 조금 아끼자고 건물 밖이나 옥상까지 가서 빗물을 길어 올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했다.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장마철 한때를 제외하면 '저금통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동대문구 주민 이규동(87)씨는 도로변 빗물저금통을 가리키며 "비 내린 다음 날에도 물이 나오지 않아 고장 난 줄 알았다"고 말했다. 면적이 좁은 주거용 건물 옥상에 떨어지는 빗물만 받다 보니, 웬만큼 많은 강수량이 아니면 물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지역 선정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대문구 제기동, 성북구 장위동 등 시가 지정한 빗물마을 10곳은 다가구주택이 밀집한 지역이다. 주로 면적이 넓고 개인 텃밭을 일굴 수 있는 단독주택에서만 빗물저금통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현재 장위동 빗물마을 총 170여 가구 중 넓은 마당을 보유한 단독주택이나 대형 빌라 9가구(5%)만 빗물저금통 설치를 신청해 주택 내부에서 사용하고 있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집 밖에서 물을 사용할 일이 적은 주거지 집중 지역에서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유지·관리는 주민들의 몫"이라며 "시에서 활용 현황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빗물마을 조성 연도별 예산 그래프
빗물을 땅속으로 쉽게 스며들게 하는 '투수블록' 등 투수시설을 설치하는 데에도 43억원이 들어갔다. 그러나 지난 8월 말 강북 지역에 쏟아진 비로 은평구 불광동 빗물마을에서 25가구가 침수됐다. 현재 빗물마을 전체 도로의 5%가 채 안 되는 면적에만 투수블록이 설치돼 있다. 주민들이 안전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면 노후 건물 지하에 이슬이 맺혀 내구도가 약해진다.
사정이 이런데도 서울시는 내년부터 관련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추가로 세금 22억원이 들어간다. 시에서는 "빗물을 순환시키는 것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널리 알리는 데 의의가 있어 사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빗물마을
빗물마을은 버려지는 빗물을 재활용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조성하는 지역이다. 빗물마을에는 건물 옥상에 떨어지는 비를 저장하는 ‘빗물저금통’과 일반 도로 포장재보다 물이 쉽게 통과하는 ‘투수(透水)블록’이 시 예산으로 설치된다.
구본우 기자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01/20181101002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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