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소송 당할까봐 로펌 문턱 마르고 닳도록 찾은 '한수원'
'탈원전' 소송 당할까봐 로펌 문턱 마르고 닳도록 찾은 '한수원'
신규 원전 4기 백지화하기 전 7년 재산권 행사
제약당한 주민 손해배상 놓고 법률자문
산업부, 탈원전 보상 비용 전력기금 써도 되는지도 문의
'원전 건설을 취소하면 해당 지역 주민에게 보상해야 하나' '탈원전 비용을 전력 기금으로 충당해도 문제가 없나' '적자인데도 기획재정부 배당 요구에 응해야 하나'
신규원전 4기도 백지화…8700억 허공으로
http://news.mk.co.kr/newsRead.php?no=379072&year=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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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산업통상자원부 등 전력 당국은 최근 1년 넘게 법무법인을 찾느라 바빴다. 문재인 정부가 수십 년 이어온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다. 정책 추진 과정에 관련 법률 검토·자문은 필요한 절차일 수 있지만 "무리한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에 발생할 민·형사상 책임을 모면하려는 '자기 면피용'" "정책 추진 정당성을 뒷받침하려는 '맞춤형 법률 자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수원 "원전 짓겠다" 7년 재산권 행사 막아놓고 "책임 없어"
정부는 2012년 경북 영덕읍 일원에 원전을 짓겠다면서 '예정구역'으로 지정·고시했다. 이후 7년간 이 지역 주민들은 건물을 새로 짓거나 증축이 어려워졌고, 토지 사용도 제약을 받았다. 경북 울진 원전 예정지도 마찬가지였다. 한수원은 지난 6월 이사회를 열어 신규 원전 4기를 백지화했다. 앞서 한수원은 작년 8월 김앤장법률사무소에 자문을 의뢰했다. 지역 주민에게 재산권 행사를 제약했는데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것이다. 산업부도 다른 로펌에 같은 내용의 질의를 보내 지난 7월 초 회신을 받았다.
탈원전 정책 이후 전력 당국의 법률 자문 내역
한수원 등이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로펌 의견서를 보면 두 로펌 모두 "손해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김앤장은 "주민 재산권 행사를 침해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도 "정책 변경으로 발생한 일이어서 손해배상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정부가 별도의 특별법을 만들지 않는 이상 현행 법률에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질 법적 근거 자체가 없다는 게 로펌의 판단이었다. 한수원이나 정부만 믿고 자기 건물·토지 사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주민만 골탕 먹게 된 셈이다.
"우린 책임 없다" 면피성 자문에 '맞춤형 자문'도
전력 당국은 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법률 자문 결과를 바탕으로 각종 민·형사상 책임을 떠넘기려 한 정황도 보인다. 원전 사업 시행사인 한수원은 신고리 5·6호기 일시 공사 중단과 관련해 네 곳의 로펌에 자문해 "산업부의 공사 중단 지시는 강제력이 있어 정부에 1000억원의 손실 보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산업부는 정부법무공단으로부터 "공사 중단 명령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정부가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정반대 결과를 받았다. 정작 한수원 이사회는 법률 자문 결과와 무관하게 회사 예비비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따른 손해를 책임지기로 했다.
산업부는 탈원전 정책으로 발생하는 보상 비용을 전력산업 기반기금에서 빼내 써도 되는지에 대해 법무법인 영진에 자문을 의뢰해 지난 5월 답변을 받았다. 법률로 용도가 엄격히 정해진 기금을 국회의 법 개정 없이 시행령만 바꿔 수천억원에 달하는 탈원전 비용으로 충당해도 문제가 없겠느냐는 것이다. 로펌의 답변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답을 내놓은 변호사는 2013년부터 지난 7월까지 산업부의 고문 변호사였다. 결론을 미리 정해 놓은 맞춤형 법률 자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연한 절차" vs "방패막이 보험용"
잇따른 법률 자문에 대해 중앙 부처 고위 공무원은 "공무원이 가장 겁내는 게 절차나 문서 없이 결정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책임 전가가 아니라 당연히 필요한 절차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전력 관련 공기업 간부는 "한순간 적폐로 몰리는 최순실 사건 학습 효과로 기관 대 기관,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 책임 떠넘기기, 혹은 '내 살길은 내가 마련해 둔다'는 측면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서기관급 공무원은 "'무슨 근거로 했느냐'는 추궁을 받을 때 '최종적으로 법률 자문까지 했다'고 하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며 "그래야 정권이 바뀌어도 살아남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정욱 변호사는 "'로펌 자문을 했으니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책임을 면하기 위해 로펌 조언을 많이 받는 것"이라며 "자문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 입맛에 맞는 로펌에 맡겨서 정책 추진의 근거로 삼고, 사후 합리화하려는 목적"이라고 지적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률 자문 절차를 거쳤다고 민형사상 면책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법률 검토 결과를 비롯해 정책 추진 전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여러 불필요한 오해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수용 기자 안준호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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