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소양(隔靴搔癢)하는 교복 대책 [박상도]


격화소양(隔靴搔癢)하는 교복 대책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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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화소양(隔靴搔癢)하는 교복 대책

2018.09.07

광고 판매가 잘되던 시기엔 광고 수입만으로도 방송사는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20년 전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광고가 100% 팔렸으니 방송사 경영이라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광고가 아예 안 팔리는 프로그램이 매우 많습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광고가 없는 프로그램은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컬러바(정파시 내보내는 조정화면)를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협찬을 받아서 방송을 제작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주부들이 많이 보는 아침 방송을 진행하던 후배가 “제가 지금 방송을 하는 건지 광고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저희가 아로니아의 효능에 대해 방송을 하면 같은 시간에 홈쇼핑 채널에서 아로니아 분말을 팔아요. 심지어 쇼핑호스트가 '옆 채널에서 방송 나가는 거 보고 오셨죠? 아로니아가 얼마나 우리 몸에 이로운지 공중파에서 알려주고 있잖아요.'라고 한다고요.”라며 푸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알고 보니 협찬을 한 업체가 홈쇼핑에서 같은 제품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이후로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정확한 협찬 액수는 필자도 확인하지 못했지만 꽤 큰 금액으로 알고 있습니다. 홈쇼핑 채널에 배분해 주는 몫에 업자의 마진까지 합하면 도대체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원가는 얼마일까요? 대충 어림잡아 생각하기도 겁이 납니다. 그리고 이런 고비용의 먹이사슬에 방송이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께름칙합니다. 

현대인이 마트에 가는 목적은 필요한 것을 사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큰 과제입니다. 특히 시장에 제품을 처음 내놓을 때는 이 제품이 왜 필요한지 왜 좋은지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침 방송에서 MC와 패널로 나온 의사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제품에 들어있는 성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항산화 성분인 안토시아닌은 가지에도 있고, 검은 콩, 포도에도 있어서 밥만 잘 먹어도 굳이 가루로 만든 건강보조식품까지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방송과 홈쇼핑 채널을 보면 ‘이건 꼭 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홍보도 있습니다. 바로 아이돌과 연계된 제품들입니다. 이들이 입고 바르면 아이들이 죄다 따라 합니다. ‘좋다 나쁘다’라는 얘기도 필요 없습니다. 중학생은 당연하고 초등학생이 립스틱을 바르는 세상입니다. 엄마 화장품을 몰래 바르는 게 아니라 학원에 갈 때 버젓이 바르고 갑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방에서 립스틱으로 꺼내서 능숙하게 바르던 중학교 1학년 정도 된 여자아이를 보며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하는 한숨이 나왔습니다.

필자는 성인이 될 때까지는 학생들이 화장을 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더 나아가서 미성년자에게 담배나 술을 못 팔게 하는 것처럼 중고등학생에게 색조 화장품은 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TV에 출연하는 아이돌들도 미성년자일 경우에는 지나치게 선정적인 복장과 화장을 하지 않게 하면 좋겠습니다.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짧은 치마에 진한 화장을 하고 매체에 출연하는 모습을 보면 그대로 따라하고 싶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다보니 교복 치마는 더 이상 짧아지면 치마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짧아지고 상의 역시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꽉 낍니다. 오죽하면 점잖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교복을 좀 편하게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민주주의의 힘인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의 당부가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권력을 쥔 누군가의 한마디에 온 사회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지요. 그리고 그걸 바라는 지도자도 이젠 없을 겁니다. 하지만 교복을 좀 편하게 만들어 입히면 좋겠다는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라고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일본에 가면 학생들이 입는 교복이 헐렁합니다. 싱가포르 역시 교복이 헐렁하고 촌스럽습니다. 이들 나라가 우리만 못해서 학생들이 그런 교복을 입고 다닐까요? 학교는 멋을 부리러 가는 곳이 아닙니다. 방과 후 사복을 어떻게 입든 그것은 개인이 선택할 문제이고 부모의 지도에 의존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교복은 학교가 나서서 지도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을 보면 학교에서 생활지도를 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교육이 입시에 치중하고 인성은 단지 학교생활기록부용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으니 화장을 하든 짧은 치마를 입든 “웬 참견?”이라며 학생들이 콧방귀를 뀌기 때문에 지도를 못하는 것일까요?

학교의 생활지도가 어렵다면, 이런 유행을 만든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교육현장에서 아무리 단정한 복장과 진한 화장에 대한 생활지도를 하려고 해도 TV와 모바일에서 또래 아이돌들이 변장에 가까운 화장과 꽉 끼는 짧은 옷을 입고 나오면 그것이 대세가 됩니다. 대세를 거스르는 것이 터부(Taboo)시된 오늘날, “복장을 단정히 해라.” “립스틱은 아직은 하지 마라.” 같은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기가 오히려 거북한 세상입니다. 우리가 어떤 이유에선지 나이 어린 여자 아이돌들의 선정적인 복장과 율동에 지나치게 관대해졌는데 그 결과 우리 아이들이 연필을 잡는 손에 립스틱을 잡기 시작했고 꽉 끼는 교복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아이돌을 통한 마케팅으로 옷과 화장품을 팔아 돈을 버는 사람들의 탐욕이 자리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고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원인을 찾으면 해결이 쉬운데 변방만 어지럽히면 시간과 돈만 낭비됩니다. 의상과 화장은 유행입니다. 만약에 이를 바꾸고 싶으면 유행의 출발점을 바꾸면 됩니다. 유행은 공권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성년자와 관련된 문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야 하는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들 중 일부, 중학생들 상당수, 고등학생들 대부분이 립스틱을 바릅니다. 대다수의 어른들이 이런 모습이 좋다고 생각하면 필자의 오지랖이 넓은 겁니다. 하지만 보기 싫어도 대세가 그러니 어쩔 수 었다고 생각해 왔다면 그동안 우리는 무책임했던 겁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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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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