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기준부터 바로 세워야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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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기준부터 바로 세워야
2018.08.13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은 정치 만화 평론가 조르주 볼린스키는 1981년에 프랑스 사회의 혼란한 상황을 보며, “이 나라는 마약중독자, 생각 없는 노동자, 노조 경찰, 미혼모, 팝아트 성직자, 빈정대는 저널리스트, 백만장자 외국인, 공산주의자 관료, 난교를 부추기는 성의학자, 재앙만 예견하는 미래학자, 너무 관대한 판사, 그리고 이혼한 부모들의 수중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볼린스키는 프랑스가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변하는 것이 왜 잘못된 거지?”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사람마다 가치 판단은 다 다르기 마련이어서 ‘나라꼴이야 어찌되든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어차피 이 나라에 품위라는 것이 있었더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소수자가 한번쯤 뒤집어엎는 통쾌한 사회적 반란이 필요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결국, 볼린스키의 말은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말속에 들어 있는 ‘뼈’를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요즘 우리나라의 모습이 비슷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선 세대를 이어가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준은 명문화된 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유전처럼 몸과 마음에 배어있는 공통된 윤리, 도덕, 가치관을 말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기준이 흔들리고 비뚤어져버린 것 같습니다. 적어도 필자의 눈에는 그렇게 비칩니다.드루킹 댓글 조작의 공범 의혹을 받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허익범 특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으러 들어가는 데, 지지자들이 분홍색 장미꽃을 길 위에 뿌렸습니다.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해석은 그럴듯하나, 꽃은 졸업식,입학식, 시상식 등 축하를 하는 일이 있을 때 쓰여왔습니다. 그런데 특검의 조사를 받으러 들어가는 정치인에게 꽃을 던지는 퍼포먼스는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었습니다. 죄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의혹의 중심에 선 사람과 주변인들은 일단은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적절한 처신이 아닐까요?이재명 도지사 역시 논란의 중심에 있는데 온몸으로 그 모든 논란에 일일이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 번 양보해서, 피치 못할 개인 사정이 있었더라도 자신이 한 언행이 없어지지는 않는 법인데 그는 더욱더 당당하게 역공을 펼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의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우리 사회의 기준이 두렵고 놀랍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말이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피부로 실감하고 있습니다. 지지 세력이 있고, 그 세력들이 인터넷과 SNS에서 언론플레이를 하면 이기기 쉬운 세상이 됐습니다. 문제는 지지자들이 이성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내 편은 언제나 옳고 네 편은 그르다.” 또는 “내 편은 그래도 네 편보다 덜 부패했다. 그러니 내 편이 더 옳다.”가 그들이 자주 쓰는 논리입니다.최근에는 젠더 이슈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워마드는 이슈를 생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센세이셔널한 주장과 범법적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슈를 키우고 세력을 모았습니다. 이들 역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윤리적 기준을 과감히 버리는 전략을 택했습니다.도대체 왜 이렇게 그악스러워졌을까요? 근본적인 원인은 지도층의 부패와 무능 때문입니다. 올해 상반기에만 세수가 19조 원이 더 걷혔습니다. 국민들의 피땀으로 번 돈 19조 원을 더 걷어 갔으면, 이 돈을 제대로 써야 하는데, 이 돈을 쓰는 높은 사람들은 사용 내역도 공개 하지 않고 펑펑 써댔습니다. 며칠 전에 국회는 특활비 내역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판결에 항소를 했습니다. 송사에는 돈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송사를 할 엄두를 못 냅니다. 그런데 항소해도 질 걸 뻔히 안다면서 시간을 벌기 위해 항소를 했답니다. 항소에 드는 비용을 자기들 주머니에서 십시일반으로 댈까요? 결국 또 한번 혈세가 낭비되게 생겼습니다. 물론 국회의원 중에 변호사가 많으니 따로 변호사 비용은 들지 않는다 해도 항소의 판결을 위해 세금으로 봉급 받는 판사가 한 번 더일을 해야 하니 얼마나 큰 낭비입니까? 이 뻔뻔한 사람들을 2년 전에 우리가 뽑아줬습니다. 뽑아 달랄 때는 간, 쓸개도 빼줄듯이 굴더니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하는 일이 매번 그 모양입니다. 국민들의 분노가 쌓여갈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업무추진비를 공개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정보공개를 요구하라는 답변을 했다고합니다. 청와대도 업무추진비 내역을 공개하는데 정부 부처의 예산을 승인하고 감시하는 국회가 정작 자기들이 쓴 돈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사법부는 또 어떻습니까?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이 마치 고구마 줄기처럼 파면 팔수록 나오고 있어서 당시 관련 법관들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는데 줄줄이 기각됐습니다. 기각되면 검찰이 할 수 있는 일은 재청구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구속 영장도 아니고, 압수수색 영장은 90% 이상 받아들여진다고 하는데 법관들은 치외법권지역에 사나 봅니다.얼마 전에는 왼쪽 무릎 연골 파열 환자의 오른쪽 무릎을 수술한 의사에게 무죄 판결이 있었습니다. 무죄를 판결한 근거는 마침 환자의 오른쪽 무릎도 파열되어 있어서 결과적으로 오른쪽도 수술을 받았어야 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환자가 서명한 수술동의서에는 왼쪽 무릎 수술이었는데 그러면 수술동의서는 왜 작성하는 걸까요? 의료사고의 경우 전문적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에 판사들은 법원에 전문가로 등록된 의사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데, 가재가 가재 편인 건 너무나 당연하겠지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켰는데 짬뽕을 줘도 우리는 할 말이 없게 생겼습니다. 배부른 건 뭘 먹으나 마찬가지니 중국집은 잘못이 없으니까요. 판결을 내린 판사가 똑 같은 꼴을 꼭 당해보기를 바랍니다.권력이 됐든 돈이 됐든 가진 사람들은 가진 사람들대로 서로서로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는 방법이 너무 노골적으로 뻔뻔하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힘없는 일반대중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펴는 방법이 점점 더 과격해지고 억지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빌미를 제공해 온 셈입니다.토머스 홉스의 <시민론>에 ‘사람은 사람에 있어서 늑대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만인(萬人)의 만인(萬人)에 대한 투쟁’이라는 말도 여기에 같이 나옵니다. 즉,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힘을 사용할 자유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는 이러한 혼란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말 그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소가 됐습니다. 그 결과 쎈 놈들만 살아남는 사회가 되었고, '쎈 놈들은 어떤 못된 짓을 해도 무조건 이기더라'라는 절망감과 분노만 대중들에게 남겨 놓았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이성과 품위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주장은 점점 더 억지스러워지고 과격해지게 되어있습니다. 홉스는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절대적인 주권을 갖는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문재인 정부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정권을 인수했습니다. 대내외적으로 너무나 많은 일이 구한말 시대처럼 밀려들고 있습니다. 잠시 한눈 팔 사이도 없는데 사회는 점점 더 혼탁해지고 있습니다. 이럴때 필요한 것이 기준을 잘 세우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기준, 용기와 만용의 기준, 정의와 불의의 기준, 관용과 비굴의 기준 등등 우리가 바로세워야 할 기준을 다시 살펴야 할 때입니다. 모든 기준이 ‘나 하나 잘사는 것’으로 귀결되는 사회는 결국 서로 죽도록 싸우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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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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