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월드타워 설계한 '범건축', 법정관리에서 어떻게 회생했나
롯데월드타워 설계한 '범건축', 법정관리에서 어떻게 회생했나
울트라건설 등 고객사 부도 '직격탄'
220억 빚더미에 작년 법정관리行
임금삭감 등 혹독한 구조조정
핵심인력 남아 설계 수주에 총력
채권자들, 4.9% 현금변제에 동의
S&K파트너스에 인수되며 극적회생
"채권자·직원·법원이 함께 쓴 성공"
높이 555m의 국내 최고층(123층) 빌딩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사진 왼쪽)를 설계한 범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범건축)가 지난해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자 업계가 크게 술렁였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오른쪽), 이화여대 이화캠퍼스컴플렉스(ECC) 등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자랑하던 범건축의 몰락은 큰 충격이었다.
220억원 빚더미 탓에 법정관리 뒤 매각이 추진됐지만 관심을 갖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범건축은 가까스로 인수자를 찾아 재기에 성공했다. 채권자들은 채권의 5%가량만 현금으로 받기로 동의하면서 회생을 도왔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서울회생법원은 범건축에 대한 회생종결결정을 내렸다. 지난 2월 신풍석재와 부동산개발업체 키움엠엔디가 컨소시엄을 이룬 S&K파트너스가 범건축을 인수하면서 내놓은 회생계획안은 현금변제율이 4.9%에 불과했지만 채권자 75.26%의 동의를 얻었다.
국내 1세대 건축가 강기세 명예회장이 1984년 설립한 범건축은 초고층 빌딩과 병원 설계에 특화된 국내 대표 설계사무소다. 승승장구하던 범건축은 2014년 울트라건설 부도와 이듬해 경남기업 법정관리 등 고객사들이 무너지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지난해 10월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회생절차에 들어간 범건축은 30여 명이 있었던 영업조직을 과감히 정리했다. 공공 수주를 위한 접대비도 월 8000만~9000만원에서 1000만원대로 대폭 줄였다. 단 핵심 설계인력만은 그대로 유지했다.
법원은 대안회계법인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해 범건축 매각에 나섰지만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인수합병(M&A)에 실패하면 청산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법원은 최저입찰가격을 3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춰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법원 관계자는 “썰렁한 통상의 법정관리 기업과 달리 범건축에는 활기가 있었다”며 “직원들이 임금을 자진해서 깎는 등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두 번째 매각 시도에서 범건축은 S&K파트너스를 새 주인으로 맞는 데 성공했다.
회생채권의 4.9%만 현금변제되고 나머지 채무는 출자전환 뒤 모두 소각되는 조건이었지만 기업은행 등 금융회사와 외주 협력업체들로 이뤄진 회생채권자의 약 75%가 매각에 동의한 것이 컸다. 김기영 범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는 “범건축을 믿어준 채권자와 법원, 회사의 재기를 위해 희생해준 직원들 덕에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서울 강남 뱅뱅사거리를 떠나 문정동에 새 둥지를 마련한 범건축은 송도국제업무지구프로젝트와 청라국제도시 대형 고층 오피스텔 등 올 상반기 총 11건, 49억원의 수주 계약을 따냈다. 하반기 계약이 예정된 프로젝트 규모도 200억원에 달한다. 김 공동대표는 “과거의 실패 경험을 디딤돌 삼아 차근차근히 내실 있게 성장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범건축의 회생을 핵심 인력은 유지한 채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선 회사와 낮은 현금변제율을 감수한 채권자들의 고통 분담이 만들어낸 합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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