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생폼사 정책보다는 십시일반 정책을 [허찬국]


폼생폼사 정책보다는 십시일반 정책을 [허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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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생폼사 정책보다는 십시일반 정책을

2018.07.20

지난 열흘 사이 정부는 굵직한 경제 정책을 이어서 내놓았습니다. 먼저 지난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10.9%로 정했고, 두 번째는 이틀 전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습니다. 필자는 전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하반기 경제정책의 저소득층 지원 방안은 상대적으로 긍정적이라 봅니다. 일견 두 가지 모두 경제 정책이 비슷해 보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최저임금은 정부가 시장에서 사용자가 사람을 쓸 때 지급해야 하는 임금의 하한선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조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인상의 규모와 시행 시점에서 이런 제약이 실제로 적용되는 인력이 많은 업종의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인상 폭이 크지 않거나, 큰 폭으로 인상되어도 관련 업계가 호황이면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은 제한적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집니다.

최저임금의 큰 폭 인상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올 초부터 16.8% 오르며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에 부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도소매, 요식업과 같이 최저임금 대상 인력이 많은 부문의 고용이 올 상반기 내내 줄었습니다. 전반적 경제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는 가운데 이 분야 자영업자들의 사정이 크게 나빠졌습니다. 이들에게 최저임금이 내년에도 큰 폭으로 오른다는 소식은 마치 수영이 서툰 물에 빠진 사람에게 큰 파도가 덮치는 공포감을 느끼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치적 성향으로 보면 지금의 정부가 지신들의 지지층으로 여기고 있었을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거센 항변에 놀라 청와대에 자영업 비서관을 신설한다는 반응까지 보였습니다.

자영업자들이 많은 부문의 사정이 올 들어 악화된 것을 보면서도 밀어붙였다는 것이 납득이 잘 안 갑니다. 일종의 오기가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면 최저임금 정책은 정부가 민간 사용자들에게 "일하는 사람들 돈 더 줘"하고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좀 예스런 시쳇말로 폼 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분을 우선시하는 폼생폼사의 정부에게 최저임금은 실속에 상관없이 든든한 정책수단이라 생각됩니다.

다음으로 며칠 전 발표된 정책방향과 관련 세간에 성장, 고용창출 등의 목표치를 낮춘 것에 대한 지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한편 향후 우리 경제의 여건이 어렵다는 현실감을 반영하는 듯하여 차라리 다행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전반적 경제상황 개선을 위한 방안들 중 취약계층 지원 정책이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근로자·자영업자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근로장려금(EITC)의 대상과 내용을 확대하는 방안과 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소득 지원정책이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부유한 지역의 편의점 알바는 그 지역의 유복한 가정의 자녀가 용돈벌이로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좁은 급여항목(기본급 등)만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을 제대로 받는지 시급계산을 하기 때문에 연봉 4천만 원의 근로자의 급여까지 올리는 사례를 언론 보도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수혜자의 63%가 중산층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EITC는 가구의 전체 소득을 바탕으로 지원되기 때문에 필요한 곳에 지원이 전달될 개연성을 높여줍니다. EITC 확대는 최저임금이 하고자 하는 저소득층 지원의 역할을 더 잘 할수 있기 때문에 이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경제학자들의 의견이 많습니다. 국제경제협력기구(OECD)도 최저임금보다 EITC 확대를 더 추천하고 있습니다. 이 정책의 재원은 정부의 주머니에서 나옵니다. 세금이기 때문에 국민이 십시일반(十匙一飯)하여 재원을 만드는 것입니다.

장년층 소득지원 정책은 우리나라에 절실한 것입니다. 장년인구의 빠른 증가추세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인구추세와, 그동안 55세로 정년을 정해놓고 칼같이 지켜왔으나 그 이후에 대한 사회적 대비가 매우 미흡한 현실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식자들에게 OECD 회원국 간 비교에서 아마 가장 부끄러운 일등(一等)이 노인 빈곤율, 자살률일 것입니다. 다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첫째, 일할 수 있는 팔팔한 청년장년(청년과 같은 장년의 줄인 말)은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최선책입니다. 이번 정부 발표에 이런 분야가 강화된 것이 돋보입니다. 그런데 고령화 추세가 조만간 더 빨라지고 오래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대비책도 더 긴 흐름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둘째, 자조(自助)가 어려운 장년층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합니다. 주거, 보건·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지원과 개선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끝으로 신생아가 지나치게 줄고 있는 문제가 인구와 관련해서 우리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비싼 양육비, 청년들의 구직난도 영향을 미치고 있겠지요. 하지만 출생을 결정하는 이성적 판단은 인생주기의 한 부분만을 고려하지 않을 겁니다. 어떤 노년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도 중요합니다. 경제 성장률이 높은 것이 좋겠지만 이는 시간이 지나면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사회가 십시일반의 자세로 자력자조를 못하는 사회 구성원들을 잘 돌보는 곳이 아이를 낳기에 더 좋은 곳일 겁니다. 북유럽 국가들의 양호한 출생률은 이런 것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개방 경제의 통화, 금융, 거시경제 현상이 주요 연구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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