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 민자사업이 필요한 이유


SOC 민자사업이 필요한 이유

이재원 조선일보 부동산팀장


   2년 전 미분양을 겪은 파주의 한 아파트 단지는 최근 분양권 값이 크게 오르면서 8000만원의 웃돈이 붙었다. 정부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 노선의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며 사업이 탄력을 받은 덕분이다. 이 노선이 개통하면 파주에서 서울 강남 삼성역까지 30분이면 갈 수 있다. 투자목적의 자금이 몰린 영향이 없지 않겠으나, 파주가 한층 살기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결국 집값 상승의 근본적인 요인이다.


반면 경기도 김포 시민은 요즘 도시철도 문제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올해로 예정됐던 도시철도 개통이 내년으로 미뤄져서다. 김포에서 강남역까지 버스로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어림잡아 2시간이다. 출퇴근을 합해 4시간을, 그것도 대부분은 서서 다녀야 한다니 불만이 클 만하다. 더구나 지방자치단체가 약속한 교통망 확충을 믿고 거주지를 옮긴 사람이 느꼈을 분노와 상실감은 짐작코도 남는다.


교통 인프라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는 서민일수록 뼈저리게 느낀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출퇴근 시간 30분 단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GTX같은 광역 교통망을 확충하는 것은 물론 수도권 전철에 급행열차를 확대하겠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문 대통령은 당시 “한국 직장인 평균 통근시간이 58분이고 수도권은 1시간 36분이 걸린다”면서 “앉아서 가는 출근길, 쉬며 오는 퇴근길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약속이지만 어쨌든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사실 교통망 문제는 복지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부동산 정책에서도 필수적인 요소다. 강남에서 시작돼 강북 도심 근처로 번지는 집값 상승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쓸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은 공급 확충과 수요 분산이다. 서울 주요 지역에는 집을 지을 땅이 그리 많지 않아 공급 확대가 어렵다. 더구나 각종 부작용을 우려한 정부가 재건축을 틀어막고 있는 것도 주택 공급의 걸림돌이다.




결국 서울의 변두리 지역과 수도권에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쓰면서 수요도 분산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여기에 필요한 것이 교통망 확충이다. 아무리 서울과 가까워도 대중교통이 잘 갖춰지지 않은 논밭 한가운데 지은 집에 들어갈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집값이 오른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들리는 지금까지도 눈에 띄는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재원 조달의 어려움이 있어서일 테다. 정권이 바뀌면서 급격히 늘어난 복지지출에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막을 정책 자금에도 예산을 투입하다 보니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쓸 돈은 부족하다. 지난해 편성한 올해 정부 예산안을 보면 총지출이 7.1% 늘었는데, SOC 예산은 20.0%가 줄었다. 앞으로도 SOC 투자를 늘릴 여력은 별로 없어 보인다.


민간 자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긴 한데, 정부가 반기지 않는 방식이라 문제가 있다. 과거 정부가 외국계 자본에 특혜를 줬다는 이유로 ‘민자 금지’가 관가에서 일종의 도그마가 된 것이다. 최근 만난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재정 여력이 부족해 ‘수익형 민자사업(BTO)’이나 ‘임대형 민자사업(BTL)’을 활용하고 싶어도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라면서 “민자는 나쁜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돼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민간이 제안한 인프라 건설까지 직접 챙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GTX-A 노선의 절반을 민간 자본에 맡겼지만, 이 사업은 사실 10년 전 현대산업개발이 제안했던 프로젝트다. 민간이 할 일의 절반을 정부가 직접 하기로 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다른 예도 많다. 서울-세종 고속도로의 안성-세종구간은 애초 GS건설이 제안한 사업이지만, 정부가 가져갔다. 포스코건설이 준비하던 제2외곽순환도로 안산-인천 구간 역시 재정사업으로 바뀌었다.




SOC 예산을 줄인 마당에 민간이 알아서 하겠다는 투자까지 막는다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전체 인프라 투자 예산은 주는데, 안 써도 될 예산까지 끼어들며 예산이 더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과정에서 정부가 건설회사의 지적재산을 그냥 가져간다는 문제도 나온다. 사업을 제안한 건설회사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조사하고 연구를 했지만, 그런 기업에 정부가 용역 대가를 지급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교통망 투자는 필요하다. 서울 강북 지역과 수도권에 대규모 SOC 예산을 투입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민자라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민자 사업 자체가 문제의 소지는 아니다. 특혜는 없애고 위험과 수익을 정부와 민간이 적절히 나누도록 설계만 잘 하면 풀릴 문제다. 도덕성만큼은 이전 정권보다 우월하다고 자부하는 정부 아닌가.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1/2018060102374.html#csidxf0943ddf8cb5570b5a677e8bb712d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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